프라하의 도쿄바나나 (1)

<들어가기> 중에서

by UCI

##본 포스팅은 '프라하의 도쿄바나나 -오미야게 과자로 일본을 선물하다'(따비, 2018) 본문 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책에 다 담지 못한 사진들을 내용과 함께 소개합니다.



2017년 일본에서 가장 핫한 유행어는 ‘손타쿠忖度’였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남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리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한국어에도 발음만 달리한 ‘촌탁’이 있는데요. 촌탁이나 손타쿠나 한일 양국에서 자주 쓰이는, 흔한 단어는 아닙니다.


낯설기만 했던 이 말이 갑자기 유행한 건 2017년 2월 불거진 ‘모리토모森友 스캔들’ 때문입니다. 일본 오사카大阪의 학교법인 모리토모 학원이 2016년 국유지를 헐값으로 매입하도록 재무성이 특혜를 준 사실이 드러났는데요. 이 과정에 총리 내외가 연루됐다는 의혹이었죠. 일본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의 아내가 이 학교의 명예교장이었습니다.


아베 부부가 대놓고 비리를 지시한 결정적 증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재무성 공무원이 ‘윗선의 마음을 헤아려 알아서 기는’ 손타쿠로 아베 내외에게 특혜를 상납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이 연일 보도되면서 손타쿠는 유행어로 떴습니다. 얼마나 유행했냐면, 출판사나 포털사이트에서 연말에 발표한 2017년 최고 유행어까지 손타쿠가 죄다 휩쓸 정도였습니다.


그 중 34년 전통의 ‘신어·유행어 대상’은 이 말을 유행시킨 수상자를 선정해 발표했는데요.과자, 기념품 등을 만드는 오사카의 상품 기획사 대표 이나모토 미노루稲本ミノル가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수상 이유는 다름 아닌 오미야게お土産(토산 기념품) 과자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기획사는 2017년 6월 오사카 오미야게로 ‘손타쿠 만주忖度まんじゅう’를 선보였습니다.


과자는 딱히 별다를 게 없습니다. 일본에선 흔하디흔한 만주입니다. 만주 겉면에 한자로 손타쿠를 새기고, 포장지엔 이 말의 사전적 정의를 풀어써준 게 고작입니다.


그런데 ‘하필’ 문제의 모리토모 학원이 오사카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오사카 오미야게 과자 손타쿠 만주는 곧바로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킵니다. 신생회사(2014년 11월 설립)의 신상품인데도 반 년 만에 10만 박스나 팔렸습니다.


덕분에 직원이 아홉 명에 불과한 이 작은 기획사는 돈방석에 앉아 보너스 잔치를 신나게 벌였고, 손타쿠를 유행시킨 공로로 유행어 대상까지 수상한 것입니다.


손타쿠는 일본 권력의 심장부를 뒤흔든 정치 키워드였습니다. 이처럼 대단한 말의 유행 과정에서 야당 의원의 발언이나 언론 기사가 아닌, 지역 명물과자의 메시지 파급력이 가장 강했다고 인정받은 셈입니다.


정치와 과자라니,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싶은데, 이게 또 일본에선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닙니다. 의회 기념품점에서 아베 신조 등 극우 정치인을 미화시켜 캐릭터화한 오미야게 과자도 인기리에 팔리는 나라니까요.


손타쿠 만주가 한창 잘 팔리던 2017년 여름, 아베 내각 지지율이 뚝뚝 떨어지는 와중에도 ‘신짱 만주晋ちゃんまんじゅう(신짱은 아베 신조의 애칭)’는 오히려 판매가 급증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됐습니다. 오미야게 과자가 정치 스캔들에 휩싸인 총리에 대한 반발이나 지지의 상징적 수단으로 격렬하게 맞붙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오미야게 과자에 대한 유별난 애착은 정치뿐 아니라 일본인의 삶 전반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문학 작품, 애니메이션, TV 드라마, 영화 등을 보면 지역 명물과자를 주고받거나 먹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저 역시 일본을 드나들면서 공항과 기차역에 셀 수 없이 다양한 오미야게 과자가 한가득 쌓여 있는 모습을 늘 접하곤 했습니다. 한국인, 중국인 등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이 그 과자를 엄청나게 사들이는 모습도 곧잘 목격했습니다.


처음엔 그저 ‘일본에선 과자를 잘 만드나 보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여기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사샤 아이센버그Sasha Issenberg의 《스시 이코노미》(해냄, 2008)와 도미타 쇼지富田昭次의 《호텔》(논형, 2008), 이 두 권의 책입니다.


각각 스시와 호텔이라는, 미식가와 여행자에게 친숙한 소재를 미시적 관점에서 재조명하는데, 운송 혁명과 정교한 마케팅이 빚어낸 스시의 세계화 과정, 일본 호텔이 근대사에 끼친 영향 등 흥미진진한 내용이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덕분에 스시 맛이나 일본 호텔의 인테리어를 예전보다 한결 풍성하게 누리는 효과까지 얻었습니다. 일식집에서 비즈니스 미팅을 가질 때 “참치는 원래 고양이 사료로나 쓰던 싸구려 생선이었다는 사실 아세요?”라며 아는 척도 할 수 있었고 말이죠.


이 책들을 읽으면서 오미야게 과자의 탄생을 비롯해 성장 과정이 궁금해졌습니다. 일본의 지역 명물과자는 오늘날 일본인의 일상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니, 그 유래나 마케팅 전략에도 분명 남다른 뒷이야기가 있을 듯싶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미야게 과자의 역사와 산업 이야기를 아우르는 책은 일본에서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체코 프라하에서 호텔 직원에게 도쿄 바나나를 선물하던 일본인 투숙객의 말 한마디에 직접 책을 써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저도 (퇴근하면 아무것도 하기 싫은) 월급쟁이 회사원이었던지라 출간 준비에 완전히 몰두할 수 없었는데요. 약 3년에 걸쳐 틈틈이 자료를 수집해 정리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규슈에서 홋카이도까지 전국을 돌며 천 년 전통의 과자점, 과자의 신을 모신 신사 등을 비롯해, 성공한 오미야게 과자의 브랜드 스토리 공간들을 직접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보고 배우고 느낀 것들을 이 견문기에 담았습니다. 이 책을 통해 오미야게 과자의 역사, 그에 곁들여진 일본 근현대사, 일본의 지역 명소 이야기 등을 산책하듯 가벼이 맛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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