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치 코트, 그 젠틀함에 대하여
영국하면 어떤 브랜드가 떠오를까?
어떤 이에게는 영국의 펑크락을 떠오르게하는 비비안웨스트우드가 떠오를 수도 있지만, 아마 많은 사람들은 베이지색 트렌치 코트와 체크무늬의 버버리를 떠올릴 것이다.
영국이 낳은 것은 '의회 민주주의, 스카치 위스키 그리고 버버리 코트'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만큼 버버리 코트는 영국의 시그니처로 자리잡았다.
흔히 사람들에게 '바바리', '버버리 코트'라고 불리는 트렌치 코트, 브랜드가 얼마나 유명해지면 하나의 대명사로 불릴 수 있을까? 심지어 트렌치 코트라는 명칭조차 버버리에 의해 만들어진 이름이다.
1835년 영국의 작은 마을에서 토머스 버버리가 태어났다. 그는 꽤 어린 나이에 포목상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21살에 자기 가게를 오픈했다. 갈수록 세상살이가 힘들어지나 보다. 지금 시대는 아르바이트 좀 해봤다고 21살에 자기 가게를 여는 경우는 별로 없을텐데... 어쨌든 버버리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는 비범한 인재들이 그러하듯, 남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에게는 그것이 관찰력이었다. 그는 관찰력이 뛰어났다. 대게 관찰력은 관심으로 부터 시작된다. 그는 단순히 옷이나 직물을 판매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직물 소재와 신소재 개발에 관심이 많았다. 토머스 버버리는 농부나 목동들이 야외에서 일할 때 린넨 소재로 만든 스목을 즐겨입는 걸 눈여겨 보았다. 스목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소재였다. 그는 스목을 활용해, 비바람을 잘 견디면서, 통기성이 뛰어난 소재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수 많은 시도 끝에, 1879년, 이집트 솜(Egypt cotton)에서 얻은 실 자체에 직접 개발한 방수 코팅 기술을 더해 개버딘이라는 직물을 개발해냈다. 다른 사람들이 직물에 방수 코팅을 입혔다면, 토머스 버버리는 실에 방수 코팅을 한 후 직물을 직조하고, 다시 한 번 더 직물 자체에도 방수 처리를 했다. 이중으로 방수처리를 한 셈이다. 토머스 버버리는 개버딘을 트레이드 마크로 등록하고, 개버딘 소재로 레인코트를 만들었다. 우리는 버버리하면 체크무늬를 떠올리지만, 버버리의 첫 트레이드 마크는 민무늬의 개버딘이었다.
버버리 디자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체크 무늬는 스코틀랜드의 타탄 체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검정, 오렌지, 흰색, 밤색으로 만들어진 체크 무늬와 중세 기사 문양을 넣고, 코트 안감을 장식해, 코트 안쪽까지 신경쓴 섬세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스코틀랜드의 타탄 체크는 가문이나 신분을 나타냈는데, 신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색상이나 색의 가지 수가 정해져있었다. 단색은 하인, 2가지 색은 소작농, 농부, 3가지 색은 관리나 수령, 4가지 색은 낮은 귀족, 지방 행정관, 5가지 색은 높은 귀족, 재판관, 6가지 색은 현인, 시인, 7가지 색은 왕족, 8가지 색은 성직자를 나타냈다.
그 당시 이미 런던에서는 아쿠아스쿠텀(라틴어로 '방수'라는 의미)의 레인코트가 유행하고 있었다. 런던 리젠트 거리의 존 에머리가 만든 브랜드로, 1853년에 울 소재에 방수 코팅을 하여 세계 최초로 방수 원단 특허를 받았다. 아쿠아스쿠텀은 자사 레인코트를 영국 왕실에 납품하기도 했었다. 문제는, 당시 영국 왕이었던 에드워드 7세가 버버리의 레인코트를 사랑했다는 점이다.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에드워드 7세는 레인코트가 필요할 때면, "내 버버리 가져오게"라는 말을 하여, '레인코트 = 버버리'라는 인식에 쐐기를 박았다. 그 덕분인지 버버리는 옥스퍼드 사전에도 등재될 만큼, 레인코트의 대명사가 되었다. 영국 국왕이 입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버버리는 영국 상류층, 영국 신사들이 즐겨입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디자인을 떠나서, 버버리는 실제로 실용성이 매우 높은 옷이었다. 개버딘 소재는 가벼우면서 보온성과 방수 기능이 뛰어났기에 모험가들이 즐겨 입은 브랜드였다. 남극 지도를 그렸던 프레데릭 잭슨(Frederick George Jackson), 남극을 3번이나 탐험했던 어니스트 섀클턴(Ernest Shackleton), 남극점을 탐험했던 로알 아문센(Roald Amundsen), 런던에서 케이프타운까지 왕복 45시간의 신기록을 세웠던 비행사 베티 커비 그린(Betty Kirby-Green) 등 수 많은 사람들의 도전에는 늘 버버리가 함께 했다. 특히 개버딘 소재로 만든 텐트가 얼마나 뛰어났던지, 1911년 남극점 탐험을 정복한 아문센은 노르웨이 국기와 버버리 개버딘 텐트를 남극점에 남겨 두고 돌아왔다. 아문센은 직접 버버리 회사로 개버딘 원단의 우수성을 칭찬하며, 감사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물론 개버딘 소재가 뛰어났던 이유도 있지만, 버버리가 아문센의 탐험을 지원했기 때문에 감사 편지를 보낸 걸지도...
버버리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건 두차례 세계 대전 때문이었다. 군인들에게 비바람을 막아주고, 추위와 더위로 부터 보호해줄 군복이 필요해지자 연합군은 버버리에게 군인들을 위한 군복을 제작해줄 것을 의뢰했다. 그 당시에는 전쟁을 통해 세계적인 규모로 성장한 회사들이 많았다. 큰 규모의 전쟁을 치루기 위해서는 수 많은 물자가 필요했고, 이 물자를 동원하기 위해 산업체가 발달했던 시기였다. 휴고 보스는 2차 대전에서 독일의 나치 군복을 납품했었고, 종전 후 재판을 통해 벌금과 선거권 박탈 처분을 받았다. 휴고 보스는 사실 나치 군복을 디자인한 적은 없었다. 단지 주문 받은대로 생산했을 뿐이다. 즉, 자신의 재능은 1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군복하면 휴고 보스의 디자인을 떠올린다. 실제 디자인은 카를 디비치(Karl Diebitsch)와 발터 헤크(KarlDiebitsch) 장교가 디자인했었다. 휴고 보스는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나치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었고, 전쟁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에게 강도 높은 노역을 시켰기 때문에 그가 나치 부역죄로 처벌받은 것은 재판부의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숨길수 없는 재능으로 인해 역사에 휘말린 예술가의 비애는 아니었다.
버버리는 연합군의 군복을 남품하기 전부터 추운 극지방 등의 일부 장교들에게 버버리의 코트가 제공하고 있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금광을 둘러싸고 네덜란드계 보어인과 영국군 사이에서 일어난 보어 전쟁(Boer War) 때부터는 버버리가 영국군의 공식 레인코트로 지정되기도 했다. 영국군의 우수한 레인코트를 본 연합군은 버버리에 대량으로 레인코트를 주문했다. 버버리는 군인에게 필요한 허리띠, 계급장을 달기 위한 견장, 탄약을 보관하기 위한 D링 등을 달고, 전장에서 활동하기 편하도록 개량하여 연합군 군인들에게 납품하였다.
왜 사람들이 버버리 코트를 트렌치 코트라고 부르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 전까지 버버리 코트는 그냥 레인 코트라고 불렸다. 트렌치 코트라는 이름이 만들어진 계기는 1914년 9월부터 4년간 서부 전선에서 지속된, 지옥의 참호전이라고도 불리는 전쟁 때문이다. 서부전선에서 프랑스군과 독일군이 대치하면서, 포탄을 피하기 위해, 깊게 도랑을 파고 그 안에서 버티면서, 전쟁을 이어갔다. 그들이 판 도랑에는 물이 차오르기 때문에, 방수 기능을 갖춘 옷이 필요했다. 참호전을 치루는 군인들에게 방수, 통풍, 보온 기능을 함께 갖춘 버버리 개버딘 소재의 레인 코트가 보급되었다. 이로 인해 도랑, 해자, 참호라는 의미를 가진 트렌치(trench)라는 수식어를 붙여 트렌치 코트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세계 1차 대전이 끝난 후, 연합군은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전리품처럼 트렌치 코트를 가지고 돌아갔다. 이들이 가지고 간 트렌치 코트는 뛰어난 기능성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디자인 적으로도 훌륭했기에,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계속 트렌치 코트를 입거나, 자식들에게 물려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버버리 트렌치 코트를 입다보니 자연스레 버버리는 대를 이어 물려 입는 좋은 옷이라는 이미지까지 가지게 되었다. 세계 2차대전이 일어난 1940년대에는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이 버버리를 즐겨입는 모습을 보여, 지적인, 상류층이 즐겨입는 브랜드라는 이미지까지 심어준다. (처칠은 낙제생 이미지가 있지 않나요? 어째서 지적인 이미지가 여기서 파생될 수 있죠?라고 묻는다면, 물론 학창 시절 처칠이 낙제생이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긴 하다. 하지만 처칠은 영문학 과목은 매우 뛰어난 성적을 보였으며, 처칠의 연설문을 보면 그가 얼마나 타고난 달변가인지 알 수 있다. 게다가 그는 1953년 헤밍웨이를 제치고 노벨 문학상을 받을 만큼 글을 잘썼다. 물론 헤밍웨이는 그 다음해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헤밍웨이는 처칠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영국의 압박에 의한 것이라며 항의했지만, 처칠이 쓴 2차 대전 회고록은 사실적이면서도 유려한 문체로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은 작품이었다. 학교에서는 낙제생이었을지 몰라도, 사회로 나온 처칠은 지금까지 명연설로 회자되는 명연설가였고, 수 많은 명언을 제조한 명언제조기였다. 영국인들이 존경하는 인물 1위로 손꼽히는 처칠이 버버리를 즐겨입었다는 것만으로도 버버리 코트 이미지가 꽤나 근사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아님 말고...)
1955년, 버버리는 영국왕실로부터 왕실 인증 마크(Royal Warranty)를 받게 되면서, 영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잡게 된다. 그 후 1960년대에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햅번이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입고 나오면서, 여성들 사이에서도 유행하는 아이템이 된다. 1970년대에 들어 버버리에서 여성들을 위한 빨간색 트렌치 코트를 출시하기도 한다.
물론 이렇게 버버리가 계속 사랑받기만 했다면, 이 글은 써지지 않았겠지... 버버리 역시 시련의 시기가 있었다. 브랜드마다 너도 나도 트렌치 코트를 선보이기 시작하면서, 버버리만의 느낌은 많이 퇴색되었다. 여러 브랜드에서 트렌치 코트를 선보이는데 굳이 비싼 돈 주고 버버리의 트렌치 코트를 구매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이런 버버리를 구원하기 위해 나타난 건, 버버리의 구원투수라 불리게 될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베일리였다. 그는 학창시절 도나카렌에 의해 발탁되어 디자이너로 일을 하던 중, 구찌의 톰포드(또 다시 톰포드가!!!)에게 스카웃되어 구찌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일했던 실력파 디자이너였다. 하지만 그는 늘 영국적인, 영국을 모태로 하는 브랜드에서 일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그 소식을 들은 버버리는 그를 스카웃해간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는 게 사실일까? 톰 포드의 뒤를 이을 디자이너, 제2의 톰 포드로 불렸던 그지만, 그는 톰 포드처럼 자기 이름을 걸고 브랜드를 런칭하지 않았다. 버버리를 떠날 때 까지 그는 버버리에만 집중했던 순정파였다.
트렌치 코트는 성별도 나이도 없어요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버버리에 입성하자마자 트렌치 코트를 재해석하기 시작한다. 그는 버버리의 트렌치 코트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1890년 토마스 버버리가 디자인한 트렌치 코트는 성별도 나이도 없어요. 젊은 아가씨가 입어도 어울리고, 노년기의 신사가 입어도 어울리죠. " 트렌치 코트의 가장 큰 매력은 어떤 사람에게나 잘 어울리며, 어떤 복장에도, 어떤 상황에도 쉽게 융화된다는 점이었다. 트렌치 코트는 캐쥬얼하게 입을 수도 있고, 격식을 갖춘 정장이나 화려한 복장에도 잘 어울린다. 트렌치 코트가 어느 의상에나 어울리고, 누가 입어도 잘 어울리는 건 트렌치 코트의 젠틀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젠틀함은 배려에서 나온다. 트렌치 코트는 입는 사람을, 그리고 그 사람이 입은 옷들을 배려한다. 스스로를 뽐내지 않는다. 다른 옷들의 기를 죽이고 혼자 튀고자 하지 않는다. 멋을 내지 않은 듯한 자연스러움에서 멋이 느껴진다. 존재감이 없는 듯 하지만 존재감이 있다.
베일리는 버버리의 창립자 토머스 버버리와 트렌치 코트의 정신을 생각했다. 최초의 버버리는 분명 모험적이고 발명가의 느낌이 있었다. 실험적이고 크리에에티브했던 버버리가 어느샌가 그런 DNA를 모두 잃어버리고, 여기저기 라이센스를 남발해, 수건에도 버버리가 찍혀있는 상태까지 되었던 걸까? 그는 토머스 버버리가 개버딘을 처음 발명했던 것처럼, 혁신적인 버버리 DNA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이런 점에 착안해서, 트렌디한 감각으로 트렌치 코트를 재해석했다. 트렌치 코트의 소재나 패턴, 디자인에 변화를 주면서 버버리 트렌치 코트 특유의 젠틀하고, 영국적인 분위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버버리 상위 브랜드인 버버리 프로섬을 론칭하고, 낡고 올드한 중년의 분위기를 탈피새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버버리를 선보이며 버버리를 부흥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디자인적 측면에서 버버리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지만, 전방위적으로 버버리를 한 층 더 성장시킨 건 안젤라 아렌츠였다. 좀 과장을 보태 말하면, 구찌를 살린 게 톰 포드였다면, 버버리는 안젤라 아렌츠가 살렸다고 할 수 있다. 차이점은 톰 포드는 디자이너였고, 안젤라 아렌츠는 경영인이라는 것. 2006년 부임한 그녀는 회사 임원들 중 버버리 트렌치 코트를 입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곧바로, 버버리에서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제품 라인 35개를 과감하게 정리하고, 트렌치 코트에 집중한다.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살릴 수 있는 시그니처 라인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는 스티브 잡스가 애플 CEO로 복귀하면서 제일 먼저 했던 행동과 일치한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현재 애플 수석 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다...그래서 버버리 매출이...
베일리는 시크하고 트렌디하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이 드러나는 모델, 케이트 모스를 전면에 앞세웠다. 케이트 모스 외에도 영국 출신의 핫한 모델들을 기용하여, 트렌치 코트 중심으로 화보를 찍으며, 버버리=영국=트렌치 코트=세련됨이라는 인식을 부활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노력이 통한걸까? 버버리는 부활의 신호탄을 화려하게 쏘며 주가가 최고치를 찍었다.
하지만 버버리 부활의 주역인 안젤라 아렌츠가 애플로 이직하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CEO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2가지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게 된다. 슬프게도, 디자인에는 뛰어났던 크리스토퍼 베일리였지만, 경영까지 함께 하는 건 무리였는지, 버버리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된다. 물론 그 당시 중국 시장이 침체기를 겪으며 전반적으로 모든 명품 브랜드들이 성장에 어려움을 겪긴했지만... 계속되는 적자에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CEO에서 물러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업무에만 집중하지만 좀처럼 버버리는 부활하지 못하고 있다. 재고율이 높고, 회전율이 낮은 상태인데다, 브랜드 포지셔닝마저 애매해지며 버버리는 수렁에 빠지는 듯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올해 2018년 2월, 마지막 쇼를 준비했다. 17년간 몸담았던 브랜드를 떠나게 된 것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보여준 건 무지개색이었다. 요새 모든 브랜드가 다 그러하지만, 지나치게 화려한, 투머치, 나쁘게 말하면 과한, 산만해진 분위기의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 모든 건 구찌때문인 걸까... 구찌의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영향을 받지 않은 명품 브랜드가 없을 만큼 -없는 건 아니다. 있긴 하지만 정말 극소수, 그들은 이미 자기만의 아이덴티티가 아주 강하게 구축되어 있거나, 어나더 레벨쯤 되는...H사, L사, C사들- 구찌는 모든 패션 디자이너에게 영향을 미쳤다. 크리스토퍼 베일리의 디자인은 특유의 차분함이 담겨있어, 펑크한 감성을 버버리에 입혀도 여전히 그 만의 차분함 남아있었는데, 이번 마지막 쇼에서는 사람이 유행에 휩쓸려 자기 자신을 잃는 것도 위험하구나라는 생각이 들만큼, 그답지 않은 느낌이었다. (이건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나의 뇌피셜...)옷과 무대만 보지말고 그 안에 담긴 의도를 읽는다면, 다 이유있는 선택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긴한다. 그는 마지막 무대에서 사람들에게 옷만 보여주고자 했던 게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했다.
저는 버버리 제품의 맥락을 창조해내야만 합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저 옷걸이, 바닥, 벽, 조명, 그리고 지금 이 음악까지. 이 모든 게 있어야 저 코트가 ‘저 코트’일 수 있어요. 저는 버버리가 선보이는 제품이 존재하는 맥락을 창조해내야만 합니다.”라는 말을 했다. 그에게 있어 패션은 단지 하나의 사업이 아니라, 여러가지 의미와 맥락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섬세한 종합 예술이었다. 단순하게 웃감과 실로 만들어진 옷이 아니었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신념을 나타내는 표현이자, 다음 세대에 전해질 역사였다. 그는 자신이 만든 패션에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았다. 그는 마지막 버버리 무대에서 성소수자를 위해, 상징적인 무지개 색을 들고나왔다. 무지개 패턴이 들어간 버버리 체크 무늬부터 무대 위 무지개빛 레이저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무지개를 등장시켰다. 그는 우리의 힘과 창의력은 다양성에서 나온다며, 성소수자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는 멋진 메시지를 남기고 떠났다.
한동안 세간에서는 크리스토퍼 베일리를 대신해 누가 버버리를 책임질 것인가에 대해 소문만 무성했다. 셀린느 CEO 출신 마르코 고베티를 영입했던 전적이 있었으니, 셀린느를 여성들의 워너비로 만들었던 디자이너, 셀린느의 영혼이라 불리는 피비 파일로를 영입한다는 말이 많았다. 지난 3월, 버버리는 고딕의 황제로 불리는 리카르도 티시를 버버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한다고 인스타에서 깜짝 발표를 했다. 리카르도 티시는 지방시에 고딕 이미지를 입혀 네오 고딕 장르를 개척한 개성적인 디자이너로, 버버리에서 어떤 생각으로 그를 영입했는지 알 수 없지만, 다시 한번 새로운 버버리를 선보일 거라는 기대감이 증폭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누가 디자이너로 오든 버버리의 심장은 역시 토마스 버버리가 만들었던 '트렌치 코트'일 것이다.
이런 트렌치 코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버버리 향수가 바로 마이 버버리 시리즈이다. 마이 버버리는 크리스토퍼 베일리와 조향사계의 아이돌인 프란시스 커졍(메종 프란시스 커졍,MFK으로 유명한 그 커졍)이 함께 만들었다. 향수 보틀 역시 트렌치 코트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향수의 캡은 코트의 단추에서, 보틀에 묶여진 리본은 개버딘 소재로 만들어 버버리만의 감성이 담겨있다.
마이 버버리는 EDP, EDT 두 종류가 있다. 부향률이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인 노트는 동일하다. 트렌치 코트에서 영감을 얻은 마이 버버리는 꽤나 다양한 향료로 만들어진 향수이다. 그래서 자칫 복잡한 향을 싫어하는 나같은 사람들은 머리 아프다라고, 좀 더 나쁘게 말하면 방향제 냄새가 난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탑노트에는 스위트피, 베르가못, 만다린, 자몽, 레몬이 들어있고, 하트 노트에는 제라늄, 프리지아, 퀸스, 패션후르츠, 복숭아, 그린노트, 가드니아, 베이스 노트에는 패츌리, 다마스크 로즈, 레더, 바이올렛 머스크가 들어있다. 미들노트에만 무려 7가지 향료가 들어가는데 여기 들어있는 퀸스가 모과의 종류이다. 퀸스 때문일까? 아무리 봐도 비싸지만 모과향 방향제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혹시 어린시절 엄마가 유기농, 오가닉, 자연주의에 심취한 시절이 있어, 차 뒤에 모과를 장식 삼아 방향제 삼아 겸사겸사 놔둔 적이 있다면 더더욱 어디선가 맡아본 적있는 비싸지만 차량 방향제스러운 추억의 냄새를 느낄 수 있다.
마이 버버리는 전체적으로 시트러스 계열이 정말 듬뿍, 아낌없이 들어있다. 베르가못, 만다린, 자몽, 레몬에다 퀸스, 패션후르츠까지... 이렇게 다양한 향을 블렌딩하면, 매우 블렌딩이 잘 된 경우 정말 미묘하고 독특한 향을 맡을 수 있지만, 가끔은 머리만 아프기도 하다. 나에게는 마이 버버리가 그랬다. 물론 향수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크게 나뉘다보니 나만 그런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모과향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럴지도...
하지만 사실 트렌치 코트와 시트러스 향의 연관성을 나는 전혀 느끼지 못하겠다. 왜 시트러스 계열로 뽑았을까? 트렌치 코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살짝 쌀쌀한 날씨, 비가 올듯 말듯한 흐린 가운데, 그 속에 스며들어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 비올듯한 흐린 풍경 속에서 튀지 않으면서, 차분하고 부드럽게 자신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느낌인데, 시트러스는 딱 냄새를 맡자마자 나 여기있어요!! 하고 손을 번쩍든 느낌이다. 이는 오히려 이번에 버버리에서 선보인 무지개 옷들과 잘 어울리는 느낌이 든다.
감명받았던 건 오히려 마이 버버리 블랙이었다. 마이 버버리 블랙은 검은색 트렌치 코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향수이다. 마이 버버리 블랙은 마이 버버리에 비해 노트들이 매우 단순하다. 자스민 단독 탑노트에, 복숭아, 장미로만 이루어진 하트 노트, 베이스로 패츌리와 앰버가 들어있어 매우 깔끔한 조합이다. 자스민은 차로도 많이 접하다보니, 사람들의 호불호를 크게 타지 않는다. 익숙하면서 무난한, 그러면서도 특유의 부드러운 자스민이 제일 먼저 맡아진다. 그 후 복숭아와 장미의 향이 잘 섞여 달달한 장미향이 느껴지면서도 패츌리 특유의 시원한 향이 느껴진다. 보통 트렌치 코트를 떠올리면 베이지색을 많이 떠올린다. 이처럼 검은색 트렌치 코트는, 특유의 차분하고 부드러운 트렌치 코트 분위기를 가졌으면서도, 남과 차별화된 색상인 블랙 때문에 어딘지 더 시크해보이고, 검은색 특유의 시원한, 서늘한 분위기가 가미되어진 느낌을 향으로 잘 표현한 것 같아 역시 커졍인가(=b)하는 감탄사가 나오게 된다.
마이 버버리 블러시는 위 두 향수들과 다르게, 트렌치 코트가 아닌, 런던의 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향수이다. 공식적인 홍보 문구는, 화사한 프루티 플로럴 계열 향수, 아침을 깨우는 싱그러운 런던의 정원을 느껴보세요. 사실 싱그러운 정원은 잘 모르겠다. 이상하게 마이 버버리와 향이 비슷한데 좀 더 플로럴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탑노트에는 레몬과 석류, 하트 노트에는 장미꽃잎, 사과, 제라늄, 베이스로 자스민과 등나무가 들어가있다. 시트러스 계열이 많이 줄어들고 자스민이 베이스로 들어가 마이 버버리보다는 덜 과한 느낌, 좀 더 꽃향기가 느껴지지만, 이 역시 머리가 아프다. 이상하게 레몬과 장미가 함께 들어간 향수를 맡으면 나는 머리가 아프고 방향제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등나무가 들어가 좀 색다른 향이 느껴질 수도 있을 법한데, 장미와 레몬향이 너무 과한 탓인지 차량용 방향제스럽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그래도 모과향 방향제보다는 괜찮다...
커졍은 마이 버버리라는 향수로 버버리 트렌치 코트를 표현해냈다.
버버리에게 있어 트렌치 코트는 자신들의 뿌리이자 아이콘일 것이고,
영국인들에게 트렌치 코트는 그들의 역사 속 일부이자 자부심일 것이다.
한 때 다른 브랜드도 그러했지만, 브랜드를 성장시키기 위해 라이센스를 남발해, 수건이나 각종 잡다한 물건에 브랜드 상표가 붙어 나왔었다. 구찌도 그랬고, 버버리도 그랬다. 라이센스로 돈을 받긴했지만, 그 댓가로 그들은 저렴한 브랜드 이미지, 여기저기 흔하게 널린 브랜드 마크가 널린 이미지가 생겨났다. 돈을 벌기 위해 했던 일들이 오히려 자신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버버리는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라이센스 사업들을 정리하고, 그들의 시그니처, 그들의 뿌리인 트렌치 코트에 집중했다. 그들이 제일 잘하는 것,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을 한 것이고, 그 방법은 먹혀들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트렌치 코트는 버버리의 영혼인 것이다.
버버리에게 트렌치 코트가 있다면, 나에게는 무엇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