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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크림 May 07. 2018

페라가모

한땀 한땀 이태리 장인 정신

" 이 옷은 댁들이 생각하는 그런 트레이닝 복이 아니야.
이 옷은 
이태리에서 40년 동안 트레이닝복만 만든 장인이 한땀한땀 만든... "



시크릿가든에서 현빈이 이 대사를 칠 때마다 떠오르는 브랜드가 있었다. 페라가모.

패션이나 브랜드에 큰 관심이 없다면, 페라가모라는 브랜드 자체에 큰 감흥이 없을지도 모른다.
바라슈즈라던가 말발굽 모양을 본뜬 간치니(Gancini)도 관심이 있어야 예뻐보일터... 

그렇다면 이 사진은 어떨까?




이 장면이 어떤 영화에서 나왔는지는 잘 모르더라도, 이 장면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지 않을까?

우리의 머리 속에 마릴린 먼로를 각인시킨 영화 <7년만의 외출>에서 마릴린 먼로가 신었던 스텔레토 힐이 바로 페라가모 구두다. 나는 처음 이 사진을 흑백으로 보았다. 그래서 당연히 사진 속 구두는 빨간 하이힐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그녀가 신었던 건 하얀색 구두였다. 막상 이 영화를 보았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그녀의 구두를 기억하지 못하곤 한다. 물론 구두는 화면 밑단에 나오는 데다가 마릴린 먼로의 얼굴이나 몸짓에 더 많은 눈길이 가서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질문을 할 때마다 올리비아 핫세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올리비아 핫세딘 폴 마틴과의 결혼에 대한 인터뷰를 하던 중, 딘 폴 마틴과 사랑에 빠지게 된 계기를 말했었다. 그녀는 종종 사람들에게 그녀의 눈동자색에 대해 질문을 하곤 했는데, 딘 폴 마틴만이 유일하게 그녀의 눈동자가 초록색임을 맞췄다.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가슴에 눈을 둘 때, 그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 색을 기억해주고, 그녀와 눈을 맞춰 대화하는 그와 그녀는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이처럼, 무엇이든 관심을 가지게 되면, 더 자세히 보이는 법이다. 나도 마릴린 먼로의 구두를 본 건 아니었지만.. 좀 더 구두에 관심을 두고 영화를 보다보면, 우리는 꽤 많은 명작 영화 속 여배우의 발 끝에서 페라가모가 빛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사브리나>에서 오드리 햅번이 신었던 납작한 플랫 슈즈, 영화 <에버애프터>에서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를 대신했던, 드류 베리모어가 소중히 여겼던 엄마의 웨딩 슈즈도, 영화 <에비타>에서 열연했던 마돈나의 발 끝에도, 항상 페라가모가 함께 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수 많은 영화 속 여배우들이 페라가모 슈즈를 신고 나타났다.






1898년 이탈리아 보니토의 페라가모 집안에 14남매 중 11번째로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가난한데다, 자식이 14명이나 되니 얼마나 살림이 빠듯했겠는가?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9살이 될 무렵, 성찬식 예배에 신고갈 구두가 없는 여동생을 위해 처음으로 구두를 만들었다. 그 후 페라가모는 작은 구두방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며 구두 만드는 법을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16살이 된 페라가모는 미국 보스턴에서 구두 수선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1919년 산타 바바라 지역으로 이주하여 구두 수선일을 하던 중 우연히 아메리칸 필름 컴퍼니(The American Film Company)라는 제작사에 구두를 납품하게 된다. 아메리칸 필름 컴퍼니는 서부극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그 영화 속에서 배우들이 신을 카우보이 부츠가 필요했던 참에 살바토레 페라가모를 만난 것이다. 그 후 그는 영화 속 소품 구두들과 배우들의 구두를 제작하며 제법 유명해진다. 하지만 이에 안주하지 않고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대학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야간 대학에서 인체해부학을 공부하며 사람의 발에 대한 연구를 거듭했다. 그는 이탈리아에 있던 시절부터 사람의 발모양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 당시 미국은 공장에서 신발을 대량생산하던 시기였다. 공장에서는 획일적으로 신발을 찍어냈다. 개개인의 발모양에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지만, 그는 수제화를 만드는 사람이었고, 개개인의 발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었다. 그에게 수제화 전문가로서의 열정의 불을 지핀 건, 배우들이었다. 배우들은 촬영장에서 잠깐 쉬는 시간이 생기면신을 벗고 쉬곤 했다. 그가 본 배우들의 발은 모두 퉁퉁 부어있었다. 그가 만든 신발을 신고, 발이 부은 것이다. 배우들은 예쁜 모습으로 만들어진 구두를 신어야 했다. 그들은 발이 아픈 걸 참으면서, 걷고, 뛰고, 때로는 춤까지 춰야만 했다. 그는 인체해부학을 배우며, 신체의 무게와 발의 구조에 대해 연구했다. 사람들의 발은 아치형으로 중간이 텅빈다. 아치형으로 인간의 발이 발달하게 된 건 무게를 분산하기 위함인데, 사람들이 굽이 있는 신발을 신게 되면 아치의 구조가 비틀어져 무게 중심이 제대로 분산되지 못하게 된다. 그는 사람들이 움직일 때 변화되는 발의 하중에 대해서도 연구하며, 사람 서있을 때, 체중이 가해지는 지점을 발견했다. 그는 이런 연구를 토대로 신발을 만들었고, 이에 관한 특허를 취득하기도 하였다.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굽이 있는 신발을 신어도, 무게 중심이 제대로 잡히도록 신발 중앙에 철심을 박아 체중을 지탱할 수 있는 신발을 만들었다. 게다가 사람들의 발을 측정하는 방법을 새롭게 개선하여, 사람들의 발모양을 새로운 방식으로 측정하여 신발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구두를 만드는데 인체 해부학적 지식을 활용한 것은 페라가모가 처음이었다. 무게 중심을 지탱하기 위해 철심을 박는 방법은 그 후 다른 구두 제작업체들에게 영향을 주어,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원리가 적용되어 신발이 만들어지고 있다. 알고보면 페라가모 덕분에 지금의 나이키 스포츠 리서치 연구소(NSRL)처럼 과학적인 지식을 활용해 구두나 옷을 만드는 풍조가 생겨난 게 아닐까...


왼쪽, 오드리 메리제인 슈즈와 오른쪽 바라슈즈


미국은 1920년대 대호황의 시기였다. 정부는 기업들의 경제 활동에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그 덕에 기업들은 나날이 성장했으나, 노동자의 실질적 소득은 증가하지 않았다. 기업들은 공장을 가동하며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기 시작했고, 점점 소비 시장이 움츠려들더니 어느새 수요보다 더 많은 생산을 하게된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우리가 잘 아는 경제 대공황이 펼쳐진다. 더 많은 실업자들이 생겨났다. 미국의 경제 성장과 호황은 거품, 사상누각이었던 것이다. 1929년 10월 the Wall Street Crash를 기점으로 시작될 경제 대공황의 전조를 미리 읽었던걸까? 페라가모는 1927년 이탈리아로 돌아와 피렌체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살바토레 페라가모를 런칭한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명품 브랜드 페라가모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는 시장에 나와있는 구두들과 달리, 다양한 컬러의 구두들을 제작하여 유럽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다. 



팔라조 스피니 페로니 건물과 내부


1938년, 페라가모는 피렌체 중심가인 토르나 부오니 거리에 위치한 팔라조 스피니 페로니 건물(Plazzo Spini Feroni)을 사들이고, 회사를 이전하며 승승장구하게 된다.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오래 전부터 팔라조 스피니 페로니 건물을 마음에 들어했다. 그는 팔라조 스피니 페로니의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했고, 이 건물이야 말로 피렌체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라고 생각했다. 팔라조 스피니 페로니는 지금도 살바토레 페라가모 컴퍼니의 본사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이탈리아의 예술, 문화, 영감의 상징으로 피렌체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페라가모 브랜드의 역사와 정체성에 피렌체의 이미지가 결부되길 바랬다. 그래서인지 페라가모는 피렌체 문화 복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왼쪽 넵투누스 분수와 오른쪽 우피치 미술관


페라가모는 우피치 미술관(Uffizi Gallery)의 8개 홀을 복원하는데 자금을 지원했다. 우피치 미술관, 지금은 미술관으로 불리지만, 우피치는 원래 16세경 메디치 가문이 사용했던 궁전이었다. 피렌체 대공, 피렌체의 상징이었던 메디치 가문이 몰락하고,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었던 안나 마리아 데 메디치의 유언에 따라 우피치 궁은 미술관으로 탈바꿈된다.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피렌체 대공이 숨을 거둔 그 날 오스트리아에서 6000여명의 군대가 피렌체로 쳐들어왔다. 홀로 남은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미 메디치가는 너무 몰락해있었고, 명성은 남아있었지만, 알맹이는 텅 비어있었다. 그녀는 마지막 유언장에 메디치 가문의 모든 재산을 넘기되, 그 모든 건 피렌체에 남아있어야 한다고 유언을 남긴다. 그녀는 피렌체 밖으로 단 하나의 예술 작품도 내보내지 않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가문이 모으고, 지켜온 예술품들을 피렌체에 남겨두려고 했다. 그녀는 세계 모든 사람들이 피렌체에 와서 메디치 가문의 유산을 보고 즐길 수 있도록 단 하나의 작품도 피렌체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녀의 유언에 따라 우피치 궁은 메디치 가문의 예술품들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피렌체의 상징같은 우피치 갤러리 중 25~32번째 홀을 복원하는 것을 페라가모에서 경제적으로 지원하였다. 2016년에는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의 넵투누스 분수를 복원하는 작업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위) 웨지힐, (아래) 인비저블 구두



2차 세계 대전은 많은 브랜드에게 위기이자 기회의 시기였다. 전쟁 중 더 이상 악어 가죽 등의 피혁, 철제 금속 등을 구하기 어렵게 되자 페라가모는 다른 대안책들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그는 악어 가죽 대신 나일론, 합성 라피아를 사용하거나, 가죽 대신 낚싯줄을 활용해 구두를 만들었다. 페라가모는 낚싯줄을 이용해 만든 구두인 인비저블 구두로 니먼 마커스 패션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가 한 혁신 중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건 역시 웨지힐일 것이다. 지금도 여름이 되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웨지힐은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최초로 만든 것이다. 구두 굽을 재료를 공수하기 힘들어진 페라가모는 라피아 코르크(Raffia cork), 즉 코르크  마개를 이용해 새로운 신발 굽을 만들어낸다. 구찌도 그렇고, 이 당시 전쟁으로 부족한 물자를 대체하기 위해 사람들은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통해 혁신을 이룬다. 역시 필요가 있으면 방법은 어떻게든 찾게 되는 걸까?



(좌) 오드리햅번과 살바토레 페라가모 (가운데) 소피아 로렌, 그레타 가르보 등의 이름이 쓰여진 목각 발본과 살바토레 페라가모


1948년, 페라가모는 다시 미국으로 진출하였다. 과거 영화 배우들의 구두를 만들어주며, 친분이 있었던 그는 배우들의 지지를 받으며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넓힌다. 마릴린 먼로, 오드리햅번, 그레타 가르보, 소피아 로렌 등 당대 유명 여배우들이 페라가모 구두를 착용하며 브랜드 인지도는 점점 높아졌다. 특히 오드리햅번은 페라가모 구두를 무척이나 좋아하였다. 오드리 햅번은 275mm의 발 사이즈를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녀의 발사이즈에 잘 어울리는 예쁜 구두를 찾기 힘들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그녀의 발은 너무 커보였다. 페라가모는 그녀의 발에 잘 어울리면서, 그녀가 어린 시절 발레리나를 꿈꿨던 사실에 영감을 얻어 그녀를 위해 스웨이드 소재의 낮은 플랫 슈즈 오드리 메리제인을 만들어주기도 했었다.




아름다움은 모방할 수 있지만 편안함은 모방할 수 없다



페라가모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말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신발을 신은 사람들의 발이 편안해야한다는 마음으로 늘 신발을 만들었다. 그는 사람들의 발 모양을 본뜬 목각 발본을 소중하게 보관해왔다. 다양한 발본을 보며 어떤 식으로 신발을 만들어야 사람들이 편안하게 신발을 신을 수 있는지 연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페라가모가 오랜 세월 사랑을 받는 건 마법이 아니라, 이런 장인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향수 제조업에 있어서 페라가모는 그리 긴 역사를 자랑하지 않는다. 페라가모는 1997년 페라가모 그룹과 불가리 그룹이 제휴해 각각 50%의 지분을 가지며 향수 사업을 시작했고, 2001년부터는 불가리와 독립하여 자체 향수 회사를 차렸다.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페라가모 향수는 꽤나 매력적인 향수들을 런칭했다. 


보통 페라가모 향수하면 제일 먼저 인칸토 시리즈를 떠올리기 쉽다. 그 이름만큼이나 무척 매력이 넘치는 페라가모 인칸토(Incanto) 시리즈에는 매우 다양한 향수들이 있다.




인칸토 라인에서 제일 유명한 건 청포도 향보다는 청포도맛 사탕향으로 유명한 페라가모 인칸토 참.

하늘색 보틀과 만화경을 모티브로 한 디자인, 이국적인 해변가를 떠올리게 한다는 페라가모측 설명보다 확 와닿는 포현이다. 청포도맛 사탕향, 정말 그런 향이 난다. 인칸토 참은 탑 노트에 허니써클과 패션후르츠, 하트 노트로 장미와 자스민, 베이스 노트는 화이트 머스크와 아이리스 우드가 들어있다. 진짜 아이러니하게도 청포도는 1도 들어있지 않다. 청포도 맛 사탕향이 나는 건 그래서일까...청포도맛 사탕에도 청포도는 1%도 들어있지 않겠지... 청포도향은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옅어지지만 프루티 플로럴 계열답게 상큼한 잔향이 이어진다. 베이스 노트에 머스크와 우드가 들어가있지만, 그럼에도 무겁지 않고, 매우 가볍게 느낄 수 있는 플로럴 프루티 계열 향수다. 아마 프루티 70%, 플로럴 30%로, 청포도맛 사탕향이 날아간 후에는 패션후르츠 특유의 상큼한 향에 자스민, 머스크, 우드의 부드러움이 가미된 잔향이 느껴진다.


페라가모 인칸토 헤븐은 탑노트에 시링가, 자몽, 사과 하트 노트에 살구, 히비스커스, 핑크 피오니, 베이스 노트로 머스크, 바이올렛, 오리스루트(아이리스 뿌리)가 들어간다. 프루티 플로럴 계열로, 살구와 사과가 들어있어 인칸토 참보다 조금 더 달달한 향이 난다. 베이스 노트를 보면 생각나는 향수가 있다. 베이스 노트만 보면 산타마리아 노벨라에서 소개한 아이리스 향수와 비슷하다. 하지만 둘은 향이 많이 다르다.  가격 때문이지 않을까요? 물론 가격이 불러온 기분탓일 수도 있지만, 산타 마리아 노벨라 아이리스의 은은한 파우더리함은 페라가모 인칸토 헤븐에서 느끼기 힘들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아이리스는 기본적으로 단일 노트로 구성된 향수이고, 인칸토 헤븐은 매우 다양한 원료들이 혼합되어 있다. 베이스 노트가 마지막 잔향이라고 해서, 그 앞에 있던 다른 노트들이 완전히 제로(zero, 0) 수준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베이스 노트가 마지막에 제일 강하게 남는 향이긴 하지만, 그 앞에 노트들에 섞인 채 향을 낸다. 만약 잔향이 베이스 노트만 느껴지는 거라면, 대부분의 향수는 머스크 또는 앰버, 시더 우드같이 비슷한 향일 것이다. 대부분 향수의 베이스 노트는 인간과 유인원의 유전자 차이 만큼이나 차이가 없다. 대부분 비슷하다. 그럼에도 향수의 잔향이 모두 다른 건 그 앞에 있던 다른 노트들의 향과 섞여서 베이스 노트 향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인칸토 헤븐은 파우더리한 베이스 노트의 바이올렛과 오리스루트가 살구, 자몽 같은 상큼하고 달달한 과일향과 만나, 파우더리한 과일향이 나는 매력적인 향수이다.




페라가모에서 가장 묘한 향수라고 느껴지는 건 페라가모 아모(Amo)이다. 탑 노트에 캄파리, 블랙 커런트, 로즈마리, 하트 노트에 자스민 삼박, 마테, 루바브, 베이스 노트에 바닐라, 샌달우드, 암브록산이 들어있다. 매우 특이한 구성이다. 먼저 캄파리, 감도 잘 잡히지 않는 이 캄파리는 술이다. 캄파리는 매우 씁쓸한 맛이 나는 리큐어로, 향수에서 잘 쓰이지 않는 원료이다. 캄파리가 들어간 향수가 많지 않아, 페라가모 아모에서 특별함이 느껴진다. 여기다 자스민 중에서도 향이 좋다는 자스민 삼박에, 마테차의 그 마테, 로즈마리, 루바브가 들어간다. 루바브? 루바브는 우리 나라에서는 대황으로 불리는데, 모둠 쌈채소 중에 줄기가 빨간색인 그 식물이다. 씁쓸한 캄파리향에, 로즈마리가 들어간다. 로즈마리가 들어가면 그 산뜻함은 이루말할 수 없는데 거기다 마테까지 들어가 굉장히 초록초록한 느낌의 허브향이 나는데, 이 모든 걸 블랙 커런트가 특유의 베리향으로 균형을 잡는다. 안 어울릴 것 같은 이 조합에 중심을 잡는건 블랙 커런트 향이다. 페라가모 아모는 베이스 노트가 꽤나 매력적인 조합인데, 바닐라의 달달하면서 씁쓸한 가운데, 샌달우드의 파우더리함과 암브록산이 무척 잘 어울린다. 암브록산은 앰버그리스라고 불리는 향유 고래의 향과 구조가 닮은 천연 향료로 머스크처럼 베이스로 무게감을 잡아주는 원료이다. 제일 쉽게 맡아지는 건 블랙커런트와 바닐라향이라 달달한 가운데 톡톡 튀는 베리향의 파우더리한 향수처럼 느껴진다. 텍스트로만 보았을 때는 어떤 향인지 잘 상상이 가지 않을 조합으로 느껴지지만, 막상 향을 맡으면 이들의 조합이 꽤 잘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브랜드의 향수와 브랜드의 가치관, 아이덴티티는 무척이나 깊은 연관이 있다. 페라가모 특유의 장인 정신이 향수에서도 느껴지면 좋겠지만, 페라가모 향수는 이제 겨우 런칭한지 10년차를 넘겼을 뿐이다. 페라가모가 처음 구두를 만들고, 인체해부학을 배우며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는 시간이 들어갔다. 페라가모 향수도 이러한 장인 정신이 담기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충분히 페라가모 향수는 매력적이다. 10년차에 벌써 이 정도까지 올라왔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의 페라가모 향수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크다.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가졌던 자부심을 느낄 있는 향수가 나오길 기대한다.

자부심이란, 스스로에 대한 확신에서 나온다고 한다. 

자신이 만든 신발의 편안함은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다는 그의 단호한 발언은 그의 자신감과 긍지는 그의 열정에서 나온다. 그는 열정은 그가 신발에 대해 세상 그 누구보다 더 깊이 연구하고, 더 오래, 더 많은 생각을 하게했다. 이런 노력이 쌓여,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출 수 있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노력으로 쌓여진 능력은 그 무엇보다 든든한 빽이되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 자신감의 원천이 된다. 


나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해준 것은 내 안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었다



페라가모는 그의 자서전(shoemaker of dreams)에서 이런 말을 했다.

" 나는 구두 제작자(shoemaker)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

내 인생에서 나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해준 것은 내 안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었다."


그도 인생을 살며 수 없이 많은 장애물과 시련을 마주했을 것이다. 그때마다 그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했던 건 신발에 대한 열정이었다. 그것은 곧 그의 자긍심이 되었다. 나에게도 그런 열정이 있을까?

내가 넘어진 순간에 나를 일으켜 한 걸음 더 걷게할 열정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그렇게 강렬하게 열망할까? 나에게도 그런 것이 있을까?


소프트뱅크의 손정의는 인생에서 올라야할 산을 정하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살바토레 페라가모에게는 이 산이 사람들이 편안하게 신을 수 있는 신발이었을 것이다. 그럼 나에게는 그 산이 무엇일까?

나는 이번 생에서 그 산을 찾을 수 있을까? 향수에 대해 고민해야하는데,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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