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지중해로 떠나고 싶은 순간이 있다.
봄인가 싶을 만큼 3월은 추웠다.
그러다, 갑자기 약속이라도 한듯 벚꽃들이 일제히 피어나 거리에 흩날린다.
꽃이 피는 건, 순식간이었다.
봄이 오면 떠오르는 향수가 있다. 보통은, 봄이니까 플로럴계통인가? 하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 지금은 벚꽃의 계절이다. 벚꽃도 피기전부터 음원 차트에는 벚꽃 좀비, 벚꽃 연금이라 불리는 노래들이 상위권으로 먼저 올라오기 시작하는 걸 보면, 새삼스레 봄이 왔다는 걸 끼기도 한다. 그리고보니, 작년에는 아틀리에 코롱에서 ‘앙상 진해’라는 이름으로 진해 벚꽃을 미들 노트에 넣은 향수를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선보였다. 이러나 저러나, 역시, 봄하면 벚꽃인가 보다.
하지만 내 기억에, 벚꽃은 향이 없지 않은가? 물론 어떻게 꽃에 향이 없어요?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벚꽃의 향을 맡아본 기억이 없다. 물론, 벚꽃에도 나름의 향이 있는데, 내가 못 맡은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거리를 가득 채운 벚꽃들 틈에서 왜 나는 벚꽃 향기가 맡아지지 않는걸까?
거리에는 벚꽃이 피고, 날씨는 좋은데 나갈 수 없는 이 계절. 나를 위로해주는 건 늘 우리 곁에 미세먼지뿐.
미세먼지가 많아 밖에 나가봤자, 기관지만 나빠질 뿐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창밖에 벚꽃들은 왜이리도 예쁜지, 누군가는 빨리 비가 내려 벚꽃이란 벚꽃은 다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었다. 너무한데... 싶으면서도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한편으로는 이해했다. 심지어 "미세먼지가 나쁨이라는데 벚꽃이라니 이 독한 것들아"라는 제목의 노래도 나왔다. 그래, 미세먼지가 이렇게 심한데, 벚꽃이라니... 그럴싸한 제목이다, 현실 감각이 뛰어난 분이 만드신 곡인가 싶으면서도, 벚꽃이 빨리 져 버리길 바라는 사람이 세상에 한 명 뿐인 건 아닌가보다하는 생각까지 든다.
사실 그것보다 더 슬픈 사실은, 4월에는 공휴일이 없다는 것이다.
날은 점점 따뜻해지고, 창 밖은 화창하고, 거리에는 꽃이 핀다. 그리고 나는 졸린다. 나른하게 자꾸만 눈이 감긴다. 평범하던 일상들이 갑자기 권태롭게 느껴지고, 시간이 한없이 늘어진듯 지루하다. 춘곤증 때문일까?
이럴 때 필요한 향수. 산뜻하고 청량한, 그 이름, 아쿠아 디 파르마.
이름부터 얼마나 시원한가. 딕션 하나하나가 다 시원하게 느껴진다. 이름만 읽었을 뿐인데도 물을 끼얹은듯 시원해진다. 시원함을 부르는 마법의 주문인가?
아쿠아 디파르마하면 여름 향수 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다. 이건 분명 여름 향수로 많이 추천되긴 한다. 다들 아쿠아 디 파르마라는 이름 때문에 쿨워터의 향수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아쿠아 디 파르마는 그렇게 온리 쿨워터향만 취급하는 곳이 아니다. 게다가 여름 향수라고 하기엔 아쿠아 디 파르마는, 지금 계절에도 너무 찰떡인걸… 나는 지금만큼 아쿠아 디 파르마 향수들이 위력을 발휘하는 계절은 없다고 생각한다.
ACQUA DI PARMA, 파르마의 물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브랜드는 1916년 이탈리아 파르마 지방의 작은 향수 제조실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은 아쿠아 디 파르마하면, 모두 파란병부터 떠오를 것이다. 아쿠아 디 파르마의 상징처럼 각인된 파란병. 하지만 아쿠아 디 파르마의 첫 시작은 노란빛 콜로니아였다. 시칠리아 레몬과 앰버를 원료로 한 오 드 코롱 콜로니아는 독특한 블렌딩 향으로 금새 입소문이 퍼졌고, 오 드 코롱 콜로니아로 치장을 마무리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고 한다. 아쿠아 디 파르마는 오드리 햅번, 에바 가드너 같은 헐리우드 여배우들의 애장품으로 알려져,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아쿠아 디 파르마는 전통 제조방식을 그대로 따라 100% 수공업으로 증류하여 향수를 만들며, 라벨링 작업 하나하나도 수작업으로 한다. 콜로니아로 시작했던 작은 향수 공방이 지금은 콜로니아 외에도 르 노빌리, 블루 메디떼라네오 같은 다양한 라인을 갖춘 니치 향수 브랜드가 되었다.
봄은 봄이니, 플로럴 계열 향수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아쿠아 디 파르마에도 플로럴 계열 향수가 있다! 놀랍게도!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플로럴 계열 향수가 없는 브랜드는 거의 없다
아쿠아 디 파르마의 '르 노빌리'는 이탈리아 귀족들의 정원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진 향수라인이다. 르 노빌리는 오 드 코롱으로 나오는 다른 라인과 다르게 오 드 퍼퓸, 오 드 뜨왈렛으로 향수가 나온다. 르 노빌리에는 로사 노빌레, 피오니아 노빌레, 매그놀리아 노빌레, 아이리스 노빌레, 젤소미노 노빌레 등 각각 다른 다섯 종류의 꽃을 테마로 한다. (노빌리는 라인을 총칭할 때 부르는 이름이고, 노빌레는 노빌리 라인에 있는 향수 각각을 부를 때 쓰는 명칭이다.)
아이리스 노빌레는, 아이리스 꽃을 재해석한 향수인데, 메디치가 출신의 카트린느 여왕은 아이리스를 무척이나 사랑하여, 아이리스로 만든 향수는 여왕의 물이라 불렸다고 한다. 카트리나 여왕에게 영향을 받아 많은 귀족 여성들이 아이리스로 만든 향수를 즐겨 뿌렸다고 하나, 사실여부는 확인할 수 가 없다. 사실 메디치 가문과 관련해 향수를 만들었던 건 산타마리아 노벨라이다. 여왕의 물이라 불릴법한 향수, 카트리나 메디치가 프랑스의 앙리 2세와 결혼할 때 선물로 준비했던 향수는 지금도 산타마리아 노벨라에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젤소미노 노빌레는 자스민을 메인으로 하였는데, 자스민은 16세기 코시모 데 메디치 1세가 직접 이탈리아로 들여왔다고 한다. 아이리스 노빌레도 그렇고, 젤소미노 노빌레도 그렇고, 메디치 가문과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메디치 가문이 번성했던 때에는 아쿠아 디 파르마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엮은 것 뿐이다. 실상 관련은 1도 없다. 하지만 이렇게 엮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메디치 가문은 이탈리아의 역사에서, 아니 유럽 역사에서 결코 뗄레야 뗄 수 없는 가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르 노빌리 라인이, 귀족의 이미지를 추구하기에, 이탈리아에서 가장 귀족적인 느낌을 주는 가문이 메디치 가문이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1916년 만들어진 콜로니아의 이름을 딴 콜로니아 라인 안에는 수 많은 라인이 존재하는데, 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인그리디언트 컬렉션이다. 인그리디언트 컬렉션은 말 그대로, 원료를 중점으로 만들어진 향수라인이다. 갈색병에 담긴 인그리디언트 라인, 색상 만큼이나 진하고 딥한 향수를 느낄 수 있다. 아쿠아 디 파르마라고 다 파란병인게 절대 아니다. 우드, 레더, 앰브라, 에바노(흑단나무), 미르 등 원료 이름을 향수 이름으로 내세울 만큼, 최상급 원료와 그 본연의 향을 담아낸 것을 자부한다.
그 외에도 다른 매력적인 라인이 많은데, 가장 인기있는 건 역시 콜로니아 클럽이다. 승마 클럽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향수로, 모던하고 중성적이면서, 숲에 온듯, 잔디밭 위를 걸어다니는 느낌을 준다. 그리너리한 향에 어울리는 영롱한 초록색 향수 보틀이 참 매력적인 라인이다.
개인적으로 콜로니아 라인에서 가장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건 콜로니아 에센자. 시트러스와 자스민, 은방울꽃에 파츌리 그리고 앰버, 머스크, 우디한 향들이 환상적으로 블렌딩되어 있다. 까만 보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력보다 더 멋진 건, 에센자의 향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 향기를 남자 비누향의 끝판왕, 세제향 향수의 최종 진화형이라고도 한다. 에센자는, 멋진 슈트를 차려입고, 여유롭게 미소지을 줄 아는듯 어른스러운 모습에 은은한 비누향이 가미된 느낌이 든다. 마치 소년과 어른의 경계선에 서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소년과 어른의 경계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매력이 느껴진다.
하지만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선명한 파란색 보틀의 블루 메디떼라네오다. Mediterraneo는 지중해라는 뜻으로, 블루 메디테라네오는 지중해의 휴양지 7곳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향수이다. 향수 이름에도 휴양지의 이름이 들어가, 아란치아 디 카프리, 베르가못 디 칼라브리아, 피코 디 아말피, 지네프로 디 사르데냐, 만도를로 디 시칠리아, 미르토 디 파나레아, 세드로 디 타오르미나라고 불린다. 이 계절에 딱 맞는, 지루한 일상에 상큼한 레모네이드 한 잔이 생각나는 순간에 딱 필요한 향수다. 파란색 보틀하며, 블루 메디따레네오 라는 이름만 보면 모두 쿨워터를 떠올리겠지만, 블루 메디따레네오는 상큼한 시트러스에 부드러움이 감미된 향수 라인이다. 이 라인 향수들은 모두 탑노트에서 지중해의 시트러스 향을 담아냈다는 것이다. 지중해의 햇빛을 강렬하게 담은 느낌이라고 할까, 가끔 몇몇은 파란 보틀보다 오렌지나 노란색 보틀에 담는게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카프리 섬의 이름을 딴 아란치아 디 카프리, 아란치아(Arancia)는 이탈리아어로 오렌지를 의미한다. 탑노트에 오렌지, 만다린, 레몬, 하트 노트에는 페티그레인, 카르다몸, 베이스 노트로 카라멜과 머스크가 쓰였다.
베르가못 디 칼라브리아는 칼라브리아 지역의 특별한 베르가못을 탑노트로, 하트 노트로 레드 진저와 시더우드, 베이스로 베티버, 벤조인, 머스크를 사용해 만든 향수이다. 블루 메데떼라네오 라인에서 가장 베르가못 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베르가못은 거의 모든 블루 메디떼라네오의 탑노트에 들어있지만, 베르가못 디 칼라브리아는 이름부터 베르가못이 나와있든, 다른 향수보다 더 베르가못의 상큼해고 톡톡 쏘는 새콤한 향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톡쏘는 느낌이 날아가고 나면, 금새 부드러운 머스크 향이 올라온다.
피코 디 아말피는 아말피의 무화과(fico)라는 뜻으로, 아말피 해변은 1999년 네셔널지오그래픽에서 죽기 전에 꼭 가봐야하는 곳 1위로 선정할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탑노트는 베르가못, 자몽, 레몬, 시트론. 하트 노트에 무화과 꿀, 핑크페퍼, 자스민, 베이스로 무화과 나무, 시더우드, 벤조인이 들어있다. 첫향부터 달다. 신기하게, 상큼한 가운데 달달한 향이 느껴진다.
지네프로 디 사르데냐, 샤르데냐 섬의 분위기를 담은 이 향수는 탑노트에 넛맥, 베르가못, 페퍼. 하트 노트에는 쥬니퍼 베리, 세이지, 시프레, 베이스 노트에는 시더우드로 구성되었다. 스파이시하면서도 우디한 느낌을 주는데, 베르가못 디 칼라브리아와 비슷한듯 다른 청량함이 느껴진다. 베르가못이 좀 더 가볍고 상큼한 청량함이었다면, 지네프로는 좀 더 숲 속, 풀잎들이 떠오르는 청량함이라고 할 수 있다.
만도를로 디 시칠리아, 그 유명한 시칠리아섬의 아몬드를 형상화한 향수로 탑노트는 오렌지, 베르가못, 스타 아니스, 하트 노트에는 그린 아몬드와 일랑일랑, 베이스 노트로 시더우드, 바닐라, 화이트 머스크가 담겨져있다. 블루 메데떼라네오 라인이면서도 탑노트부터 무게감이 느껴진다. 분명 바닐라와 머스크는 베이스 노트인데, 탑 노트에 오렌지, 베르가못이 들어가있음에도 첫 향부터 부드러운 무게감이 느껴진다. 누군가는 진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떠올릴 것이고, 또 누군가는 감기약 냄새?를 떠올릴 수 있어 호불호가 나뉠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감기약을 연상시키는 냄새는 날아가고, 가벼운 머스크 향만 남는다.
이 라인에서 가장 유명한 미르토 디 파나레아는 에게해에 있는 파나레아라는 섬의 이름을 따왔다. 비누향으로 유명한 미르토 디 파나레아는 탑노트로 바질, 머틀, 레몬, 베르가못을, 하트노트로 자스민, 다마스쿠스 장미, 그린라일락, 블랙커런트 그리고 Sea accord를, 베이스노트로 렌티스크, 앰버, 주니퍼, 시더우드가 들어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이들의 조합에서 시트러스 향이 가미된 비누 냄새가 난다. 블루 메디떼라네오 특징인 시트러스 계 탑노트를 지나고 나면, 어딘지 모를 소금기 있는 바다향, 소금이 가미된 레몬향이 느껴진다. 그리고 나면 정말 순하고 부드러운 비누향이 은은하게 난다.
세드로 디 타오르미나는 타오르미나 지역의 시트론, 페티 그레인, 바질을 탑노트로, 하트 노트에 라벤더와 블랙 페퍼, 베이스노트로 시더우드, 베티버, 씨스트가 들어있다. 세드로 디 타오르미나는 시트러스 계열의 시트론에 바질 허브의 특유의 톡 쏘는 느낌을 탑노트에 담았다. 게다가 하트 노트에서 올라오는 블랙 페퍼의 스파이시한 향이 독특하게 어우러지다 잔향으로 시더우드의 잔잔한 부드러움이 올라온다. 타오르미나 지역이 화산암, 바위가 많은 지역이라 거친 느낌을 주는데, 페퍼가 아마 이런 이유로 들어간 게 아닐까 싶다.
이 향수를 맡을 때 마다 생각나는 노래들이 있다. 바로 트로피컬 하우스. 특유의 느릿한 BPM과 흥겹고 밝은 사운드로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과 chill한 감성이 어우러진 장르이다. 딥하우스의 하위 장르였던 트로피컬 하우스는 2015년을 기점으로 하나의 장르화를 이루며,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섰다. Kygo가 전세계적으로 트로피컬 하우스를 유행시킨 선구자라면, 한국에는 2017년 4월, "널 좋아해" 한마디로 전국민에게 청량 음료를 건냈던 Winner의 really really가 있었다. 아쿠아 디 파르마에게는 really really 보다는 위너가 2017년에 낸 Our twenty for 앨범의 노래들이 더 잘 어울린다는 게 함정. Our twenty for 앨범에는 디스코풍의 LOVE ME LOVE ME, 트로피컬하우스에 댄스홀을 얹은 Island가 들어있다. 최근 발매한 EVERY D4Y(에브리데이)에서도 산뜻한 칠트랩 장르를 선보였다. 감사하게도 위너는 전국민에게 주기적으로 청량 음료를 건넨다. 잘 마실게요! really really 역시 4월에 나온 노래다. 청량함이 필요한 건, 역시 나른한 4월인가보다...
그 미소를 내가 다 갖고 싶어
"그 미소를 내가 다 갖고 싶어"로 시작하는 위너의 LOVE ME LOVE ME,
"널 좋아해"라고 했던 그들이 이젠 시종일관 날 사랑해달라고, 럽미 럽미를 외친다.
"아마 내가 널 더 좋아하나봐." "넌 까만 밤의 별. 다른 건 안 보여.", "난 너의 것"이라니...
사랑스럽기가 이루말할 수 없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미르토 디 파나레아가 떠오른다. 산뜻하고 청량한 느낌을 주면서 상큼한 사운드,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부터 월급의 마지막 숫자까지, 내가 가진 모든 걸 사랑해달라는 구구절절한 가사.
현실적인 이야기의 구구절절함은 이상하게도 구질구질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달달하게 느껴진다.
솔직함에서 나오는 순수함은 사람을 기분좋게 하는 매력이 있기 때문일까? 미르토 디 파나레아도 그렇다.
이상형을 말할 때, 비누향이 날 것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비누향이라는 메타포 속에 숨겨진 순수한 느낌. 왜 우리는 비누향에서 순수함을 떠올릴까?
아마 깨끗이 씻고 나온 느낌이 들어서, 아니면 프루스트 현상처럼, 샤워하면서 우리가 맡았던 비누향 때문에, 비누향을 맡으면 샤워할 때의 깨끗히 씻어내는 듯한 느낌이 생각나서 일까?
어쨌든 우리는 자주 순수한 분위기를 떠올릴 때 비누향을 떠올린다. 미르토 역시 그렇다.
풋풋하고 상큼한 시트러스향이 느껴지는 은은한 비누향에서 연상되는 순수함, 위너의 LOVE ME LOVE ME에서 느껴지는 순수함은 자연스레 미르토 디 파나레아를 떠오르게 만든다.
회색 빌딩 감옥 안에서 널 구해줄게
파란 하늘 모래 위에서 그냥 쉬어 가면 돼
위너의 아일랜드는 파도소리와 새소리가 들리며 시작되는 청량함 그 자체인 곡이다. 거기다 가사까지,
대놓고 아일랜드로 떠나자고 말한다. 전화기는 비행기모드로 해놓고서, 파도처럼 나에게 다가오라고 속삭이는 노래 가사는 피코 디 아말피를 연상시킨다. 답답하고, 팍팍하고,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일들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바람 결에 실려온 무화과향을 맡았을 때의 느낌. 잠시나마 회색 빛 도시를 벗어나 파란 하늘과 모래가 펼쳐진 아말피 해안에 머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있다.
혹시 지금 무슨 색 옷을 입고있는지 아는가? 그럼 내 옆 사람은,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앉아있는 곳의 벽은 무슨 색인가? 우리는 언제부턴가 색깔에 무뎌지고, 감각에 무뎌졌다. 온통 회색빛. 그런 회색빛 세상이 색깔을 입기 시작한다. 답답하던 일상에서 피코 디 아말피는 잃어버렸던 색깔들을 돌려준다. 총 천연색으로. 회색빛 세상에서 탁 트인 지중해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아말피 해변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그 해안에는 바람에 무화과 향이 실려온다.
네 마음에 불을 지를래
최근 발매한 EVERY D4Y 앨범 8번 트랙 Special Night 역시 시원하고 신나는 느낌의 곡으로, "한여름 바다 위처럼 불꽃이 튀고 있어", "네 마음에 불을 지를래"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여름밤에 펼쳐지는 불꽃놀이를 떠올리게 만든다.
파란 바다 위 불꽃놀이, 푸른 지중해의 오렌지. 이쯤되면 위너와 아쿠아 디 파르마는 콜라보해야하지 않을까?
카프리 섬의 오렌지라는 이 향수, 아란치아 디 카프리도 내 마음에 불을 지르고 지름신을 소환한다. 이 향을 맡고 있으면, 카프리 섬로 떠나고 싶다는 느낌이 든다. 블루 메데떼라네오 라인의 향수를 맡고 있으면 지중해로 나를 데려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시트러스 특유의 상큼하고 산뜻한 향이 내 코를 간질간질 거린다. 오던 졸음도 함께 날아가 버린다고 까지하면 좀 뻥이지만..
왜 우리는 이렇게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걸까? 여기가 싫은 걸까? 아니면 그 곳이 더 좋아보여서?
우리는 늘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무언가를 원한다. 어쩌면 그렇기에 인간은 발전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마음을 무조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이런 마음이 들 때, 가끔씩은 나 자신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여기 말고 더 좋은 곳,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곳이 있지 않을까?하고. 그럴 땐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진지하게 들어야한다. 그냥 익숙해져 지겨워진 건지, 아니면 이 곳이 더는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는 곳이 된 건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도 한다.
밖에는 지중해의 오렌지나 레몬이 아닌 벚꽃이 잔뜩 피어있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길어진다라는 말처럼, 봄의 벚꽃을 보며 즐거워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더 외로워지는 사람들도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심심치 않게 건네줄 수 있는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것은 다 때가 있고,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지금 이렇게 위세를 자랑하며 흐드러지게 핀 벚꽃도 언젠가는 다 떨어지고 만다. 모든 건 다 한 때일 뿐이다. 토닥토닥.
알리바바의 마윈은 이런 말을 했다.
" 우리는 살기 위해, 인생을 경험하기 위해 태어났다.
우리는 일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인생을 즐기기 위해 태어났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무언가를 경험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닐까?
함께 걸을 사람도 없는데 눈치 없이 예쁘게 핀 벚꽃도, 나른하게 찾아오는 졸음도,
좋건 싫건, 모든 건 다 결국은 우리가 경험해야 할 삶의 일부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오는 봄의 나른함도, 흐드러지게 핀 벚꽃도 마냥 싫지만은 않다.
지금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