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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닿을 수 없었던 이유.

쿠알라룸푸르 타워에서

by 우동이즘

말레이시아 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쿠알라룸푸르(이하 KL)에서의 마지막 날 저녁이었다.

숙소에서 40분 정도만 걸어가면 KL타워라는 곳을 갈 수 있다길래 늦은 저녁,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멀리 보이는 KL타워는 도심 속 우뚝 솟은 알사탕 같았다.

외부조명으로 빛나고 있었고 웅장하고 특별해 보였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지저분한 도로에서 빨리 벗어나 탑 위로 올라가고 싶었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으로 달궈진 도로는 아직도 열을 머금고 있어 걸음을 여전히 힘들게 하고 있다.

이 길을 걷는 목적은 오직 하나. 멀리서 빛나고 있는 저 탑을 오르기 위함일 뿐.

KL타워 입구는 매우 구불구불하고 긴 언덕이었다.

필요이상으로 길고 높은 언덕을 오르자 이번엔 기나긴 대기 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입장권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시세로 약 110링깃, 3만 5천원 정도, 이 나라의 평균 물가를 생각하면 아주 비싼 가격이었다.

기나긴 대기줄과 비싼 티켓값,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순 없었다.

입장까지는 약 한시간 정도가 걸렸다.

땀과 갈증, 기나긴 기다림에 지쳐 바닥에 주저앉고 싶을 때쯤 겨우 타워로 올라갈 수 있었다.

KL타워 전망대 꼭대기는 예상보다 볼품없었다.

체감상 길이 30m도 되지 않는 좁은 통로가 끝이었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정도는 있지 않을까?

혹은 어쩌면 오사카-우메다 타워처럼 시원한 생맥주 정도는 마시며 야경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기다렸다.

그러나 흔한 간이매점조차 없어서 야경을 눈으로 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나 그 모든 실망감을 씻어줄 만큼 예쁜 야경이었다.

야경이 인상 깊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지금 감탄하고 있는 저 아래의 모든 예쁜 풍경은 타워를 오르기 전 내가 걷던 길이다.

올라 와 실망한 이 타워는 저 아래 예쁜 길에서 올려다본 꿈같은 풍경이었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언젠가는>


정말이다.

나는 내가 속해있는 곳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

특별함이 일상이 된 순간 빛이 바라듯, 멀리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은 가까이 다가가면 빛이 바랜다.

특별함을 특별함으로 계속 인식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관계를 다각도로 관찰하고, 현상이나 장소 역시 새로운 접근으로 대할 필요가 있다.

소중한 것이라면 그 정도의 노력 정도는 기울일 가치가 있다.

그 것이 일이든 사람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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