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3년, 깨닳은 건 '스트레스'의 필요성 이었다.
제주 살이 첫해, 스트레스 제거를 목표로 잡았다.
첫째, 조금이라도 긴장하며 만나야 하는 인간관계를 정리했다.
내려놓고 만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면 일절 만나지 않았다.
피치 못할 경우 둘 혹은 셋을 숙제하듯 묶어 만났다.
그러다 보니 만나는 사람이 어느샌가 5명 이내로 줄어있었다.
둘, 일에서의 스트레스를 정리했다.
제주생활은 많은 돈이 필요치 않았다.
‘생활할 수 있는 정도의 소득, 그 거면 된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자 당장 많은 일을 정리할 수 있었다.
글을 쓰고 좋아하는 영상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가끔 특강일이 들어오면 하기도 했지만,
일이 조금이라도 몰려 마음이 흐트러질 땐 단번에 거절했다.
에너지가 많이 빼앗기는 일은 모두 정중히 거절했다.
삶이 단순해졌다.
하루가 길어졌다.
스트레스가 없는 삶, 유토피아 같은 환경.
꿈에도 그리던 낙원이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삶의 긴장감과 스트레스가 사라지자 일상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코르티솔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아서일까.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이 사라졌다.
좋은 의미로 순수한 감정을 마주할 수 있었고,
나쁜 의미로 관계의 기술을 기억할 수 없었다.
나는 야금야금 외부자극에 무력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매트릭스> 세계관에 비슷한 내용이 기억났다.
기계가 지구를 지배한 아포칼립스 세계.
모든 인간은 기계의 연료로 사용되고 있었다.
기계는 인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인간들을 위한 세계관을 만들어 준다.
잠든 인간들의 세계. 그게 매트릭스다.
인간들은 잠이든 채 기계가 만들어준 가상의 세계에서 꿈을 꾸며 살아간다.
매트릭스는 처음에는 완벽한 세계였다.
질병도 범죄도 스트레스도 없는 그야말로 인간들이 꿈꾸던 유토피아 세계.
그러나 그 세계는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인간들이 일찍 죽어나가는 것이다.
병으로 죽는 것도 아니고, 전쟁이나 범죄로 죽는 것도 아니다.
‘왜 인간들이 오래 살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걸까?’
원인은 끝끝내 찾을 수 없었다.
기계들은 결국 세계관을 수정하기로 한다.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넣어주는 방향이었다.
범죄가 벌어지고, 세계 곳곳에서 질병이 생기기 시작했다.
해결할 수 없는 모순과 불평등이 즐비한 세계.
놀랍게도 그제야 인간들의 수명이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제주살이 2년 차, 올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것은 유토피아 제주 삶에 투여한, 일정량의 바이러스였다.
크고 작은 변수와 작은 스트레스들, 그들이 일상의 항체가 되어주었다.
스트레스에 기대어 자유가 다시 몽글몽글 차올랐다.
무소유를 위한 소유.
불 필요한 것의 필요성.
정말 좋아하는 것을 얻기 위해 좋아하는 감정을 작게 만드는 행위.
인간은 어쩌다 이렇게 모순적인 존재로 진화한 것일까?
참 다행인 것은, 인간의 모순을 이해하자 안 보이던 것들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인간은 인간이었고, 말은 말일뿐이었다.
바다는 바다였고, 올레길은 올레길이었다.
일은 일이고, 제주도는 제주도였다.
제주생활 3년 차쯤,
더 이상 제주도에 있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