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견례 때문에 하마터면 결혼 못 할 뻔했잖아

내 자식 소중해서 남의 자식에게 상처 주는 건 파국이다

by 리효

여름에 만나서 6개월도 안 되는 시점에 상견례가 덜컥 잡혀버렸다. 둘 다 혼기가 꽉 차다 못해 터져 버리기 직전이라 양가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상견례를 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우리의 의사가 가장 먼저였고 연말에 상견례라… 올해의 마무리와 내년이 한 껏 기대되었다.


그러나 마냥 좋지만은 않았던 이유가 있었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나 같이 불안이 높은 사람은 아직 있지도 않은 걱정을 모락모락 새로 피워서 없던 걱정도 만들어 내는 재주가 있는데 이번 상견례 자리는 마치 그 무엇인가가 크게 터질 것 같은 걱정의 촉이 발동했다.


그것은 바로 뭔지 모르겠지만 예상되는 아빠의 말실수


아빠는 상대방을 내리 깔고 무시하기와 묘하게 듣기 거북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특기를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가난한 집에서 생존만을 위해 성장해서 그런지 알 수 없는 열등감과 피해의식 때문에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강약약강의 표본이다.


상견례를 며칠 남겨놓고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오글거리지만 아빠에게 보내는 당부의 편지를 메모장에 끄적였다. 주제는 단순했다. 내 자식 소중한 만큼 남의 자식도 소중하니 제애애애애발 상견례 자리에서 예의를 지켜달라고. 아빠 때문에 노처녀 졸업 못하면 책임지라는 가벼운 듯 나름 귀여운 협박도 포함시켰다. 몇 번을 확인 후 메모장의 편지를 복사하여 카톡에 붙여 넣기 후 카톡 전송 버튼을 눌렀다. 딸이 이렇게 까지 했는데 만약 실수를 한다? 그럼 진짜 아빠도 아니라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혼자 발끈했다.


상견례날 남편 집안의 가족분들은 벌써부터 일찍 와 계셨다. 그래서인지 긴장의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양가 어른들께서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누셨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 아빠와 아버님의 존함이 같다. 그리고 고향도 같은 지역이라 그런지 정치색도 같아서 상견례 시작의 분위기는 이미 결혼식장에 둘이 손잡고 들어가는 분위기였다.


사람의 마음이 너무 풀어지면 꼭 실수를 한다지 아마? 아빠와 아버님께서 혼기 꽉 찬 자식들이 결혼을 서두른다는 소식에 기쁨이 넘치셨는지 소주 3병을 빠르게 비우셨다. 이제 뭐 슬슬 좋게 좋게 마무리하면 되겠다는 찰나. 다 된 밥에 아빠가 큰 재를 냉큼 뿌리고 말았다.


“혼주석엔 누굴 앉히 실 예정이신 가요?”


올게 오고야 말았다. 그렇다. 남편의 어머님은 상견례 시점을 기준으로 돌아가신 지 약 2년 정도 되었었다. 암 말기, 너무 늦은 시기에 발견했고 남편이 가족 돌봄 휴가를 쓰면서 어머님이 떠나시기 전까지 옆에서 돌 본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사실만으로도 어머님과 남편의 관계는 예상한 건데 꽤 애틋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사실을 상견례하기 전 아빠에게 분명히 전달했었다.


불안과 분노가 차 올랐으나 꾹 참고 화재 전환을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를 막 굴리 던 순간…!!!


“고모님이나 이모님 안 계신가요? 안되면 첫째 며느님이라도…”


당시에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진짜 호적에서 파이고 싶을 정도였다. 저게 무슨 말인가 대체? 내가 정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토해내고 싶었던 이유는 왜 별로 친하지도 않은, 그저 예식날 밥이 맛있었는지 교통이 편했는지 정도만 기억할 하객들 때문에 가족이 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냔 말이냐고!!!!!


진짜 감정을 누르고 또 누르면서 낮은 목소리로 아빠를 불렀다. 그러자 아버님이 편안한 목소리로 말씀을 이어가셨다.


“원하시는 거 있으시면 이 자리에서 다 편하게 말씀하시죠“


난 차라리 서로가 언성을 높여가며 속마음을 솔직하게 터놓고 사과할 건 사과하고 지나갔으면 했지만 어색해진 자리의 분위기를 아버님께서 말끔하게 정리하셨다.


“첫째 따님 시집보내는데 얼마나 마음이 쓰이시겠습니까? 원하시는 부분은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했습니다. 다만, 그 부분은 저희가 알아서 하는 방향으로 이해해 주심이 어떠실까요?”


상견례는 무사히 끝났지만 집에 도착해서 난 아빠와 한바탕 할 생각으로 전투력을 끓어올렸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내 마음을 가장 불편하게 했던 건 남편의 마음에 상처를 주진 않았는지였다. 잘 도착했냐는 전화와 함께 사과의 말을 전했고 남편은 평소와 같은 덤덤함으로 괜찮다며 얼른 쉬라는 말을 전하고 끊었다.


술기운 때문인지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뒤늦게 깨달은 건지 아빠는 안방에 들어가 빠르게 잠을 청했다. 난 안방 문을 걷어차고 들어가 당장 나와서 얘기 좀 하자고 했지만 어설프게 잠든 척 자리를 피하고 싶은지 답변이 없었다. 아빠는 한 참이 지난 후에 그 일을 나에게 사과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난 아빠에 대해 그 어떤 기대도 그 어떤 실망도 하지 않고 진짜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몇 개월이 지나고 대망의 결혼식날, 결혼식의 거의 마지막 순서인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올릴 때, 우리가 아버님 자리로 다가가는 순간부터 아버님은 울고 계셨고 남편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마음이 뭔지 짐작은 되었으나 상견례날 아빠의 실언이 떠올라 너무나 사무치게 미안한 마음이 또 들었다.


출산 후 아기들을 키우면서 항상 생각한다. 내 자식이 소중한 만큼 남의 자식도 진심으로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 잘못하면 나같이 이미 마음속에서 천륜을 끊고 싶을 만한 결심이 서게 된다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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