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해도 안 해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
대중교통만 이용하면 발생하는 공황 증상 때문에 어쩔 수없이 사직서를 쓰고 방구석 바닥을 벅벅 긁고 있던 어느 날.
퇴직금을 야금야금 까먹으면서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지켜보고 있으니 또 한 번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아직 퇴직금도 한 참 남아있고 몇 년간 야근에 찌들어 돈 쓸 시간도 많지 않았기에…그리고 내가 당시에 남편이 있나 애가 있나? 통장 잔고는 그다지 빈곤하진 않았다.
그러나 내가 누구냐. 뭐 손톱만큼이라도 기준치에 어긋나면 평화로운 현실도 불안 가득한 지옥 넝쿨로 만들어 버리는 남다른 공황장애 환자가 아닌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야근 아니면 칼퇴 후에도 업무처리 할 생각에 전전긍긍했던 내가 사회생활 후 처음으로 주어진 천국 같은 한량의 시간을 전혀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난 왜 이렇게 생겨먹었나 대체. 아니 무슨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가장의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벼랑 끝에서 누군가 채찍질로 일 안 하면 반신불구를 만들어 버린다는 것도 아닌데. 이것도 일종의 병 아닌 병 같이 느껴졌다.
어쩌란 말인가 이렇게 생겨먹은 것을.
병원에 다녀와서 운동을 하고, 명상도 하고, 청소에 집안일에 보고 싶은 넷플릭스 시리즈까지 다 보고 치워버린 후에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심심함이 있었다.
‘아냐 너 추우우우웅분히 쉬어야 해. 약속했잖아!!! 네 몸과 정신을 위해 최소 3개월은 한량처럼 지내기로!!!‘라고 혼잣말을 되뇌면서도 나도 모르게 누군가 체면을 건 것처럼 채용사이트에 접속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채용사이트 공고를 보자마자 나름 10년 이상의 고인 물 경력직 스킬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일단 지인들에게 전해 들은 블랙리스트 회사들은 패스. 5년 차 이하 때는 가고 싶은 회사를 꿈꿨지만 이제는 닳고 닳아 나를 뽑아 줄 만한, 내 경력을 바탕으로 쓰임새 있을 회사들을 천천히 리스트업 해 나갔다. 그리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사 분위기와 문화를 직접 다녀본 이들의 리뷰로 확인하고 건너 건너 지인에게까지 회사를 한번 알아봐 달라는 부탁까지… 순식간에 촥촥촥 진행해 버렸다.
‘어쭈? 너 일하고 싶은가 보다?’
그냥 심심해서 채용 사이트 한번 들어가 본 것뿐인데 벌써 새벽 시간이 가까워졌다. 또 또 욕심부린다고 스스로를 책망했지만 그래도 솔직한 내 속마음을 끄집어 내봤던 날이었다. 기세를 몰아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재점검하고 최종 2개 회사를 선택하여 이력서를 넣었다.
물론 최종 두 회사에 지원한 가장 큰 이유는
재. 택. 근. 무. 가 가능하다는 것.
지하철은 못 타지만 일은 하고 싶은 공황장애 환자의 현실 타협이라고 해야 할까? 연봉도 네임 벨류가 낮아도 다시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주는 그 두 회사가 나한테는 삼성전자고 네이버 같이 생각되는 회사였다.
뭔가 큰 방학숙제를 끝낸 개운함으로 잠이 들었다가 백수의 가장 큰 혜택인 늦잠을 실컷 누렸다. 며칠 동안 지원한 회사에서 연락이 오나 안 오나 신경 쓰며 일상을 흘려보내던 바로 그때. 두 회사 모두에게서 면접을 봤으면 한다는 연락이 왔다.
‘그럼 그렇지 너 아직 안 죽었어 히히‘
이 기쁜 소식을 나 혼자만 알고 있긴 벅차서 전 남자 친구이자 현 남편에게 후다닥 알려버렸다. 그는 소식을 듣자마자 축하한다는 말 보단 왜 벌써 이렇게 빨리 다시 일하려고 하냐는 물음이 먼저였다. 좀 더 쉬는 게 어떻겠냐는 그의 말에 난 이상하게 꼭 합격하고 싶다는 옹골찬 고집이 느슨해졌고 뜨끈한 온천물에 들어가는 것 같은 노곤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원래 가지고 있던 조급증과 빡빡하게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건 뒤로하고 이성적인 모드로 전환했다.
반드시 합격해야지가 아니라 면접에서도 내 불안과 공황이 올라오는지 만약 그런 상황에 부딪힌다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그냥 연습 삼아 본다는 마인드로 임하게 되었다.
결과는 한 곳은 불합격.
나머지 한 곳은 합격.
세상에!!!!
나 아직 시장에서 버림받지 않았어!!!
옴마나 나 다시 일할 수 있는 거야? 그런 거야?
한 달 남짓 출근일은 남겨두고 마음이 이렇게 홀가분할 수 없었다. 백수 졸업 예정에 재취업 성공이라. 아마 혼자였으면 또 바들바들 떨면서 합격에 목매달고 있었겠지만 남편 특유의 시큰둥한 태도로 더 쉬라는 한마디에 나름 차가운 심장을 가진 사람인 마냥 담담하게 면접을 잘 볼 수 있었다.
나중에서야 남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는데 결혼하는 마당에 신부가 아무 직업이 없으면 좀 그렇지 않냐며 그런 이유 때문이라도 재취업에 신경이 쓰였다고 말했다. 남편은 그게 뭐 대수라고 아무렇지 않다고 그게 왜 신경 쓰이냐며 역시나 시큰둥하게 답했다.
엄마가 항상 인생살이를 논할 때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게 있다. 사람은 살아가는 데 비빌언덕이 반드시 있어야 삶이 힘들지 않다고. 엄마가 말하는 비빌언덕은 경제적인 측면을 말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 정신적인 비빌언덕은 남편인 것 같다.
내 좁은 시야와 작은 그릇을 넓혀주는 비빌언덕.
내면의 불안이 고조되어도 편안하게 돗자리 깔고 누울 수 있는 언덕.
쌍둥이 육아 스트레스에 티격태격 날이 선 대화를 가끔 주고받는 요즈음이지만…그렇지…내가 정말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그가 조용히 옆에 있어줬지라고 다시금 되뇌며 지금 무엇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그에게 어설프지만 작은 비빌언덕이 돼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