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함께 있으면 마냥 편안한 이유

토요일 오후 익숙한 소파에 늘어져 TV를 보는 듯 편안함을 주는 사람

by 리효

20대에서 30대 중반까지 나의 유일한 행복은 계획하고 욕심부렸던 목표를 달성했을 때였다. 회사에서 성과를 내고 인정받아 높은 연봉을 받는 것. 아직도 이런 성향이 좀 남아있지만 지금의 행복은 전혀 다르다. 첫째도 마음의 안정, 둘째도 오로지 마음의 안정이다. 공황장애를 매콤하게 한번 겪고 나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일상만큼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은 없다.


마음의 안정은 주변 상황이나 남이 만들어 준다기보단 스스로 어떻게 다듬어나가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주변의 가까운 사람에게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서 온전히 혼자 도를 닦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나같이 쿠크다스 멘탈이거나 불안이 높아 걱정을 사서 하는 사람은 가장 가까이, 함께 사는 이에게 정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가족이라고 함께 있으면 항상 편안한 건 아니다. 오히려 쌩판 모르는 남보다 더 불편한 사이일 수 있다. 내 안의 불안과 화를 깨워 나를 미치게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잔잔한 바다 위 편안한 자세로 보트 위에 누운 것 같은 안식을 주는 사람이 있다. 안타깝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전자는 아빠고 후자는 남편의 이야기이다.


가장 친한 지인에게 우스개 소리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남편과 싸우지 않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엄청 고 난이도의 예민한 아빠를 미리 예습했기 때문에 내 남편 정도는 우습게 느껴져서 화가 나지 않는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연애를 막 시작하는 시점에는 마치 예전부터 알았던 사람 같았고 결혼을 하고서는 몇 년 같이 살아봤던 사람 같았다. 설렘이나 애틋함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몇 년 동안 앉았던 익숙한 소파에 가장 편안한 옷차림으로 누워 리모컨을 만지작 거리는 주말 오후 같은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남편이다.


직업 탓인지 성향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전의 널뛰기하듯 출렁거렸던 연애와 다르게 남편과의 연애에서 느껴지는 이 안정감에 대해 나름 곰곰이 분석해 본 적이 있었다. 분석 결과는 별 거 아니지만 가까운 사이에서 생각보다 실천하기 힘든 것.


그는 나에게 절. 대. 아무 요구를 하지 않는다.


요즈음에는 이제 막 돌을 지난 쌍둥이를 함께 키우느라 하루에도 몇십 번 욱하는 승질이 올라오는 남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랑 같이 있을 때 가장 편해?”라고 물어본다면 망설임 없이 “남편”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서로 결혼 얘기가 솔솔 나올 때였었나? 결혼할 때 조언을 구한답시고 주변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결혼식 비용부터 혼수까지 자잘한 것들로 대판 싸우고는 극단적으로 파혼까지 갔던 얘기를 들었다. 나름 긴장이 되면서도 또 할 말은 해야 하는 성격이라 남편 눈치를 슬쩍 보면서 혼수 얘기를 막 꺼내기 시작했는데 내 말이 끝나고는 그냥 간단한 그의 답변으로 대화는 끝이 났다.


“아무것도 해오지 마. 우리 형도 결혼 할 때 그랬어”


결혼할 때 집은 남편이 살던 집으로 들어가기로 해서 양심상 혼수는 채워야 하지 않냐며 고민하고 있었을 때였다. 막상 살림을 합치고 보니 서로 쓰던 물건들로 채워져서 인지 신혼의 느낌은 하나도 없이 10년은 같이 산 부부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결혼 비용은 정말 많이 아낄 수 있었다.


외식을 할 때에도 내 가까이에 수저나 냅킨, 물이 있어도 굳이 굳이 본인이 멀찍이 떨어져 있는 걸 직접 가져간다. 집안일도 마찬가지로 여기가 더럽다 저기가 더럽다는 말은 일언반구도 없이 그냥 본인이 하고 마는 성격이다.


그리고 내 나름 가장 신기하고도 좋았던 부분은 다이어트에 대한 언급이 지금까지 1도 없었다는 거다. 물론 남의 몸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가까운 사이에서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과거의 남자친구들이나 부모님은 항상 내 몸에 대해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통제하려고 했었다. 어렸을 때부터 과체중과 비만을 왔다 갔다 했던 나로서는 그 부분이 항상 큰 콤플렉스였다.


결혼 준비 중에 엄마는 뜬금없이 남편에게 나한테 살 좀 빼라며 잔소리 좀 하라고 해도 남편은 시큰둥하게 “괜찮은데요?”라고 답했다. 이상하게 쾌감이 들었다. 나중에 남편에게 전해 들은 것이지만 웨딩플래너도 남편에게 한소리 했었다고 한다. 그 당시 난 뭔 자신감인지 늦은 결혼이라 많이 내려놓은 것인지 살은 안 빼고 드레스를 보러 다니고 있었다. 웨딩플래너가 남편에게 신부 살 좀 빼라고 잔소리 좀 하라고 했었는데 그때도 똑같이 “괜찮은데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물론 사람 보는 눈이 다 거기서 거기이고 남편에게 대단한 콩깍지가 씌었다는 착각은 하지 않는다. 그냥 날씬하던 뚱뚱하던 별소리 없이 지켜봐 주는 남편이 자신감 없는 나에게는 든든한 내편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남들이 몰랐으면 하는 것이 있는데 부끄럽지만 내가 가진 다양한 불안의 유형 중에는 상대방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불안이 있다. 그게 사람일 수도 있고 상황일 수도 있는데 왜 이런 불안이 어렸을 때부터 슬금슬금 자리 잡았는지 명확한 원인은 모르겠으나 한 장면이 머리에 스쳐 지나가기는 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95점을 맞은 수학 시험지를 한 손에 잡고 펄럭이며 엇박자 깽깽이로 신나게 집에 오고 있던 날이었다. 내가 원했던 건 단 한 가지. 엄마에게 폭풍 칭찬을 받고 싶었다. 그러나 엄마에게 시험지를 보여줬을 때 돌아온 건 무미건조한 한마디였다. “다른 애들도 다 이 정도 맞았나 보네?”


아직도 그 장면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걸 보면 어린 마음에 꾀나 상처가 컸나 보다. 그 뒤로도 부모님은 내가 뭔가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해도 굳이 부족한 구석을 찾아내서 그 구멍을 채우란 잔소리가 다였다. 칭찬에 목마른 아이가 아직까지도 가슴에 남아 있는지 상대의 말 한마디에도 꾀나 감정이 휘청거리는 아직은 미성숙한 어른이다.


그런데 남편 앞에서는 뭘 하든 어떤 어려운 요구나 날 선 평가가 없기 때문에 그냥 마냥 마음이 편안하다. 그래서 나 역시 남편에게 무언가 요구하거나 옆집 아줌마처럼 아무렇게나 평가하려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하냐고 물어본다면 난 망설임 없이 함께 있을 때 마음의 안정을 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마 나처럼 불안이 순식간에 공포가 되는 사람은 알 것이다. 혼란스럽고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안락함과 편안함을 주는 그 누군가가 가장 가까운 곁에 있다는 건 드러나지 않는 일상의 선물이라고.


앞으로 나 역시 꾸준히 그런 사람으로 존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