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지 못할 나무에 애쓰면서 오르다간 가랑이 찢어진다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남는 게 시간 밖에 없었던 천하태평 백수 시절.
방구석에 가만히 누워 눈만 꿈벅거리며 천장을 바라보다 몇 날 며칠을 생각으로만 흘려보낸 적이 있었다.
왜 하필 내가 그것도 공황장애에 걸렸을까? 심각하게 몇 개의 자아와 토론을 하며 생각의 꼬리를 물고 또 물었다. 물론 이 토론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처음에 문득 들었던 생각은 그릇에 비해 가지고 있는 욕심이 지나쳐 스스로를 지치게 하지 않았나였다. 내가 하는 일은 서비스 기획. 쉽게 말하면 브런치나 카카오톡 같은 웹, 앱 서비스를 기획하는 일이고 주로 신규 서비스를 기획하는 포지션에 있다 보니 뭘 항상 새롭게 다르게 기발하게 뭔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했다.
일을 처음 시작하고 2년까지는 내가 동기들보단 뭔가 좀 튈 정도로 능력이 있다고 스스로 으쓱거렸다. 지금 같아선 그 말도 안 되는 경솔함에 꿀밤을 한대 날려주고 싶다. 왜냐고? 10년 넘게 일해 본 직장인이라면 알겠지만 오래 버티는… 즉 존버하는 직장인이 진짜 옥석이지 뭐 초반에 찔끔 성과가 좋다고 해서 절대 잘난 맛에 취할 필요가 없다는 건 말 안 해도 사실이니까.
나의 이런 어깨 뽕은 대리 끝물에서 과장이 될락 말락 할 정도의 연차 때 시도했던 이직에서 어느 정도 주저앉았다. 한 껏 차오른 어깨 뽕은 대기업 최종 면접의 큰 벽에서 푸식-하고 사그라들었다. 어정쩡한 인서울 4년제 졸업장과 중소기업에서 진행했던 자그마한 프로젝트, 대기업과 어울리지 않는 뭔지 모를 나의 에티튜드로 광탈의 연속이었다. 물론 탈락의 이유는 소심한 나의 추측성 분석과 나를 잘 아는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긴 토론 끝에 얻은 결론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대기업이란 곳은 스펙도 스펙이거니와 특정 대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상이 워낙 굳건하다 보니 들어가기 힘든 게 당연지사인데 그땐 크고 작은 돌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높디높은 대기업의 벽을 기어코 기어올라가지 못하는 나를 갈기갈기 책망했다.
또 한 가지 예상되는 원인은 아빠였다. 아빠의 열등감을 대신 치료해 줄 자식이 돼야만 했었다. 시골에서 나름 날아다녔던 아빠는 서울로 상경해서 똑같이 날아다닐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완 다르게 격렬하게 아이들에게 치이며 배고픈 학창 시절을 보냈다. 물론 대학도 돈이 없어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항상 아빠 친구분들의 자녀 중 인서울 좋은 대학에 대기업, 전문직 이야기를 귀에 고름이 앉히도록 들었다. 아빠는 아직도 누구를 설명할 때, 무슨 대학을 나오고 무슨 일을 하며 심지어 그들의 조상까지 소개하며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배경을 가졌는지 주저리주저리 떠든다. 한 사람의 어린 시절에 조용히 쌓인 열등감은 평생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그래서인지 인서울 하위권 출신에 중소기업을 떠돌았던 나는 뭔지 모를 위축감에 바람 빠진 튜브처럼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였다. 어디 앞에 서게 돼도 쭈뼛쭈볏, 중요한 회의 자리에서도 어딘가 쭈굴미를 풍기는 소심하기 짝이 없던 나였다.
어쨌든 공황장애를 겪으면서 깨달은 점은 누구나 가지고 태어난 그릇의 크기는 다르고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다 다르다는 것이다. 무조건 애쓴다고 노력한다고 원하는 일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나처럼 마음의 병을 얻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건 주제파악을 하란 소리가 아니다 자기 객관화가 무엇보다 삶에서 중요하다는 것!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내가 잘하는 건 무엇이고 좋아하는 건 무엇이며 많은 사람과 두루두루 친할 수 있는가. 무거운 자리에서 가식을 떨 수 있는가. 얼굴이 두꺼운 가. 무언가 진득이 오래 끌고 갈 수 있는 지구력이 있는가. 크고 작은 자극이 있는 도파민이 자주 필요한 가. 등등 다각도로 나라는 사람을 샅샅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삶을 더 현명하게 영위할 수 있고 크고 작은 행복을 느끼며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꼭 인서울 4년재, 대기업이나 전문직, 서울의 자가 소유, 30대 초반에는 결혼해서 애는 둘 낳기가 성공한 인생의 표본은 아니란 말이다.
공황장애를 겪으며 솔직히 내 한계를 맞닥뜨리기까지 힘겨웠다. 난 왜 이것밖에 안되는가 왜 이렇게 나약한가 수십 수백 번 수천번 스스로 잡도리를 했다. 하지만 반면에 내 한계를 인지하며 진짜 내 모습을 덤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대기업에 못 들어가는 내가 아닌 작은 조직에서도 인정받으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고, 남들 앞에 서서 무엇을 진두지휘 하는 걸 즐기는 사람은 못되지만 조용히 침착하게 뒤에서 철저하게 준비하며 꼼꼼히 일하는 사람이며 살갑거나 애교가 많진 않지만 진득하고 은은한 사람이다.
남들이 잠시 보기에 빛이 나고 튀는 조건들이 절대적인 매력이 아니란 말이다. 이걸 30대 중반,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스스로 내면의 고요한 나를 들여다보며 깨닫게 되었다.
뱁새가 황새를 쫓을 필요가 없고 뱁새는 그 나름의 매력을 다듬으면 된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계속 쳐다보다 목만 아프다. 오를 만한 나무로 훈련하다 보면 언젠간 그 나무에 오를 수도 있고 재미있게 오를 만한 다른 나무를 선택하면 된다. 남들의 관점에 껴맞추다 나처럼 공황장애로 고생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자신만의 빛나는 매력을 다듬으며 외면과 내면 모두 건강한 게 사는 게 무엇보다 최고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온 나 자신을 남편이 알아봐 준 거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