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커밍아웃 하려다 공황 오겠네

압박 면접 보다 더 긴장했던 그날의 기억

by 리효

연애를 시작한 기쁨도 잠시.

나에겐 크디큰 숙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남자친구(현 남편)에게 공황장애를 고백하느냐 마느냐…


이제 막 시작하는 관계이고 아직은 서로를 알아가는 시기인데 섣불리 고백했다간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을까… 아니 그보단 이 관계가 깍둑 썰리듯 단칼에 썰려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늦은 나이에 연애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누굴 만나기가 지독히도 어렵고 무엇보다도 순수한 욕구가 끓어오르지 않는다. 한마디로 귀차니즘과 높아진 안목을 핑계로 실제 연애보단 방구석 연애프로그램 전문가가 돼버리기 십상이다.


내가 이렇게 고민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내 인생의 프로 참견러 부모님 때문이기도 했다. 공황장애가 마치 교도소를 다녀온 것처럼 크나큰 죄도 아니고 몇 개월 남지 않은 시한부의 삶도 아닌데 부모님은 내 병력을 쉬쉬했다. 부모님은 한마디로 남자친구에게 공황장애를 꼭꼭 숨기라며 당부했고 별 거 아닌 걸로 가볍게 여겼던 난 마치 과거 있는 여자처럼 그 앞에선 절대 들켜선 안 될 것처럼 애쓰며 행동했다.


하지만 만남이 지속될수록 가슴 한편이 무겁고 답답스러웠다. 이건 들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에 대한 진실된 가치관의 문제였다. 상대가 공황장애 하나로 나에 대해 부정적으로 판단한다면 그건 뒤 돌아볼 것도 없이 거기까지인 인연인 것이고 그 이상은 발전이 어려운 관계라고 판단 내렸다.


마치 나라를 구하러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처럼 결연을 다지며 나만의 공황장애 커밍아웃 디데이를 잡았다. 이제는 진짜 말할 때가 왔다. 이 관계가 결혼까지 갈지도 안 갈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진지하게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사람한테 털 끝하나 속여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신념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기어코 말하고 만다. 필승!!!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픽-하고 새어 나온다. 공황장애가 뭐라고… 마치 이 남자가 아니면 이번생엔 결혼은 물 건너갔고 정신 차리고 꼿꼿이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못해 절망적이었다. 아니 결혼 못하면 누가 잡아가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땐 왜 이렇게 나약해 빠졌었는지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달려가 정신 교육을 좀 시켜주고 싶을 정도였다.


나 혼자 공황장애 커밍아웃 날을 잡고 방구석에서 덜덜 떨며 매일 비슷한 시간에 걸려오는 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뭐 간절히 가고 싶은 회사의 합격 전화를 기다리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결혼에 대한 자그마한 희망을 바랄 수 있을지 아니면 평생을 백수 노처녀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일생일대의 중요한 순간이었다..


통화하는 내내 타이밍을 보다가 힘겹게 입을 떼었다. 정말 중요하게 할 말이 있다고, 힘들게 고민하다 꺼내는 얘기라며 밑밥을 엄청 두둑이 깔기 시작했다. 한 번도 이렇게 무거운 분위기를 잡아본 적이 없기에 남자친구(현 남편)도 꾀나 긴장하는 공기가 귀에 느껴졌다.


“사실은 나 공황장애가 있어”


나 이 거참… 공황장애 커밍아웃하려다 공황증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무슨 살인사건을 취조당하다 죄를 시인하는 범죄자도 아니고… 아무튼 그의 반응을 기다리는 몇 초간은 조금 오버해서 심장이 한두 번 튀어나왔다 제자리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난 또 뭐라고…그래서 뭐…? 헤어지기라도 하자는 얘기야?”


처음 들어보는 냉랭하고 단호한 말투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따스운 말투


“그 말하기가 그렇게 힘들었어? “


멀리 떨어져서 휴대전화로 통화 중이었지만 목소리로 날 따뜻하게 안아주는 느낌이었다. 아이처럼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어느새 진정이 되었는지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고 있었다.


아마도 연애 초기에 남편에게 공황장애 커밍아웃을 결심한 이유는 본능적으로 짧게 끝날 인연은 아닐 거라는 묘한 촉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냥 예쁘게 겉모습을 꾸미고 누구나 좋아할 만한 털털한 성격의 여자로 포장하고 싶지 않았다. 나 이렇게 별로야, 이 정도로 나약해, 어때? 실망했어? 그냥 막 작은 단점부터 치부까지… 크나큰 상처까지도 오픈하고 싶었던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은 체구와 달리 큰 마음의 품으로 뭐든 감싸 안아줄 것 같은 직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황장애 커밍아웃 이후, 첫 데이트는 극장이었다. 공황장애 환자에게는 엘리베이터, 극장, 지하철, 비행기와 같은 갇힌 공간은 마치 시험을 보듯 힘겨운 공간이다. 하지만 그 시험대에 같이 올라가 보기로 했다. 마침 또 재난 영화였고 숨을 옥죄어 오는 긴장감이 맴도는 씬이 많았다.


남편은 내 얼굴을 한번씩 살피더니 살포시 손을 잡아주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무슨 정신으로 봤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냥 그 손이 따뜻하고 평온했던 감촉만 기억난다.


그 후론 뭐만 조금 힘들면 난 공황이 올 것 같다는 핑계를 대었고 내가 불리할 때마다 공황장애를 팔아먹는 거 아니냐며 서로 장난기 어린 대화를 주고받았다.


연애하는 한 동안은 마음이 정말 평화로웠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안정감이었던가. 익숙함에 속아 당연한 듯 살고 있는 남편에게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내일은 맛있는 거 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