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과 스물여섯이 본, 만화 <오디션>
2010년 열여섯, 동경했다
천계영의 만화 <오디션> 속 소년들은 모두 '먼치킨'이다. ‘달봉’은 한 번 들은 곡도 바로 악보에 옮길 수 있는 절대음감이고, ‘미끼’는 1초를 균일하게 32개까지 쪼갤 수 있는 미친 박자 감각을 가졌다. ‘래용’은 먼바다에서 소리를 질러도 해변까지 들리는 성량을 가지고 있으며 ‘국철’은 해박한 음악 지식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레코드에 녹음된 음악만 들어도 연주자의 몸 상태까지 파악할 수 있다.
능력만 출중한가? 심지어 잘생겼다! 저마다 다른 매력을 가진 미소년들은 ‘이 중에 네 취향이 한 명쯤은 있겠지’라고 말하는 듯하다. TMI를 덧붙이자면 츤데레였던 ‘국철’이 내 최애였다.
열여섯의 나는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듯 그들을 동경했다. 화려한 외모와 천재성, 패션… 나에게 없는 걸 가지고 있어서 좋았다. 하고 싶은 건 없는데 공부는 하기 싫었던 중학생의 눈엔, 꿈을 향해 직진하는 네 소년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열여섯의 나에게 <오디션>은 나와 달라서 재미있는 만화였다.
2020년 스물여섯, 공감하다.
십 년 만에 다시 본 <오디션>은 새로웠다. 오빠였던 재활용밴드가 이젠 한참 어린 동생들이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10년 전엔 보이지 않던 소년들의 궁상맞은 간절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년들은 ‘먼치킨’이기 전에 ‘언더독’이었다.
소년들은 고된 삶 속에서 천재성을 잃은 채 소매치기, 조울증 환자 등으로 성장했다. 이들을 쓰레기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있어도 천재라 불러주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러나 이들 앞에 ‘명자’가 나타났다. 쓰레기 같던 아이들에게 '천재'라고 말해주고, ‘재활용’ 해주겠다고 말하는 명자가.
<오디션>에서 중요한 건 천재성이 아니다. 중요한 건 믿어주는 사람의 존재다. 소년들은 송송회장에 의해 천재성을 인정받았고, 명자를 만나 천재로 다시 태어났다. 누군가 자신을 믿어주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아이들은 제 삶을 내팽개치고 주저 없이 음악으로 뛰어든다. 방음벽 대신 스티로폼을 벽에 붙이고, 쪽방에 모여 새우잠을 자며 꿈을 꾼다.
중학교 3학년에서 대학교 6학년(ㅠ)으로 성장한 나도, 이제는 소년들처럼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오디션> 속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드럼 스틱을 손에서 놓지 않는 모습에서, 덜덜 떨며 예선 결과를 확인하는 모습에서 내가 보인다. 그렇게 스물여섯의 나에게 <오디션>은 나와 비슷해 재밌는 만화가 됐다.
서른 여섯엔 무엇이 보일까
열여섯의 나와 스물여섯의 내가 보는 ‘오디션’이 달랐던 것처럼, 서른여섯의 나에겐 또 다른 이야기가 보일 것이다. 재활용 밴드에 기회를 준 심사위원들에게 눈이 갈지도 모르고, 딸을 성장시키기 위해 오디션을 기획한 송송 회장의 부성애에 감동할지도 모른다.
10년 전에도 이미 <오디션>은 완결된 지 한참 지난 오래된 만화였다. 그때도 촌스럽지 않던 <오디션>은 여전히 촌스럽지 않다. 여전히 TV에서는 <오디션>같은 토너먼트식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오디션> 속 두드러지는 패션 트렌드는 지금과 같은 ‘젠더리스’다. 과연 십 년 뒤 <오디션>은 촌스러워질지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