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드라마

by 어깨아빠

출근했는데 사장님(이자 형님)이 나와 있었다. 난 어떤 공간에 흐르는 기류, 누군가가 내뿜는 기운을 아주 신통방통하게 파악하고 느끼는 재주가 있다. 오늘도 뭔가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왠지 형이 곧 입을 뗄 것 같았다. 내 예감이 틀리길 바랐다.


아니나 다를까 한동안 입을 닫고 일을 하던 형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일부러 한껏 가벼운 톤으로. 골자는 회사 사정이 많이 어려우며, 그로 인해 새로운 수익원을 모색하고 지출은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익 창출이라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형은 일단 임시방편을 꺼내들었다. 개인이 하면 알바, 회사가 하면 외주라 칭할만한 일을 새로 시작하기로 했다. 단순반복입력 작업이 필요한 일이었고 내게 그 일을 맡겼다. 지출을 줄이기 위한 첫 번째 방안은 사무실 이전이었다. 조금 더 좁고 싼 곳으로. 감사하게도 지금 쓰고 있는 건물에 더 작고 싼 곳이 빌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건 해결됐다.


회사 사정이 어려운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2-3년째 매출이 감소하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오늘처럼 특단의 조치가 취해졌다는 건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얘기였다. 마음이 착잡했다. 심란하다. 사실 오너의 입장에서 지출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인원 감축이다. 마음 같아서야 당장이라도 결단을 내려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이제 나에게 그런 용기는 없다. 그런 용기가 생겨서도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스물여덟에 처음 회사라는 곳에 들어갔다. 7년 동안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두 번의 이직. 모두 내 결정이었다. 나름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따랐다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아니었나 싶었다. 가치를 쫓는다는 그럴싸한 포장 뒤에 숨어서 사실은 더 편한 현실을 쫓아 도망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래도 분에 넘치는 욕심을 많이 내거나 그러지 않고 소시민스럽게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만약에 회사가 망하거나 망하기 직전이라 내가 그만두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상상을 했다. 상상이었지만 현실처럼 두려웠다. 당장 할 수 있는 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 준비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한편으로는 다시 과거로 보내준대도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서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아직 닥치지는 않았으니까 뭐라도 대비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브런치와 블로그에서 실직한 사람들, 퇴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봤다. 제각각이었다.


이렇게 이뤄 놓은 게 없는 것 같은데 주민등록등본을 떼면 내 이름 밑으로 이름이 세 개나 더 있다. 하루 종일 머리는 복잡하고 가슴은 두근거리고.


아내는 아이들과 스타필드에 있다고 했다. 아내는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거기서 바로 아내에게 차 키를 넘겨주고 난 애들이랑 저녁 먹고 버스 타고 집에 오기로 했다. 스타필드에 가서 아이들을 만났다. 하필 오늘따라 둘이 커플룩을 입었다. 아내를 보내고 애들이랑 셋이 돌아다니는데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힘들다고 안아 달라고 그러고, 무섭다고 손 잡자고 그러고. 엄마가 없으니 오로지 아빠만 쳐다보고 얘기하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보니 뭉클했다. 얘네를 생각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우리가 타야 하는 버스가 막 도착하는 게 보였다.


"소윤아. 저거 우리 타야 되는데"


라고 외치면서 시윤이를 안아 올렸다. 소윤이가 전력 질주를 하며 외쳤다.


"잠깐만여!!!"


소윤이는 나와 시윤이를 향해 소리쳤다.


"아빠. 빨리여!!! 어떻게 해여!!!"


그 정도로 급박하지는 않았다. 다른 손님들도 있어서 충분히 탈 수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자리에 앉히고 나니 웃음이 나왔다.


"소윤아. 못 탈 뻔했다. 그치?"

"아빠 제가 빨리 달려와서 다행이었져?"

"그러게"


소윤이와 시윤이는 서 있는 나를 올려다보며 쉴 새 없이 쫑알댔다. 묘했다. 책임감인가. 부담감인가.


집에 와서 애들을 재우고 노트북 앞에 앉았는데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런 기분은 참 오랜만이었다. 어떻게 해도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야구나 볼까 싶어서 야구를 틀었지만 소용없었다. 그냥 마비되고 싶었다.


아내가 돌아왔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아내가 화장실에 들어갔다. 한참을 있다가 나와서는 아내가 날 보며 말했다.


"여보. 대박사건이야"


사실 이 순간 느낌이 왔다. 애써 모른척했지만.


"왜? 뭔데?"

"뭘 것 같아?"

"왜?"

"이거 봐 봐. 두 줄이야"


머리에서는 연기로라도 아내를 향해 축하와 환영을 건네라고 명령을 내리는데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머리는 텅텅 비어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옆에서 언제 생긴 건지, 예정일이 언제인지 말해주던 아내가 자꾸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슬픈 건 아닌데, 이걸 뭐라 설명해야 하지. 누가 셋째 임신해 본 사람이 대신 설명 좀 해주면 안 될까요.


소윤이, 시윤이 생각도 나고. 오늘 있었던 일도 생각나고. 그 와중에 이러다 혹시라도 잘못되면 얼마나 미안할까 이런 생각도 들고. 마음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언젠가는 세 아이의 아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다. 그 언젠가가 너무 준비 없이, 빠르게 찾아와서 당혹스러울 뿐이다.


망치로 맞은 것 같다는 게 이런 말이었구나. 뭔가 어울리면 안 되는 두 가지 현실이 내 안에 스미는 느낌이다. 도무지 정리, 혹은 진정, 혹은 비워지지가 않는다. 다 비벼진 전통식 전주비빔밥처럼 온갖 게 다 섞여 있다.


하아.


아직 이름 없는 우리 집의 셋째야. 이걸 뭐라고 기록해둬야 니가 나중에 조금이라도 이해를 할 수 있을까. 아무튼, 오늘은 좀 미안하네. 처음 만난 건데 너무 반갑지 못했네.


금방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기다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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