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29(화)
서윤이가 새벽에 깨서 서럽게 울며 안방으로 왔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엄마, 아빠가 있는 방에서 자고 싶었겠지 뭐. 더 정확히 하자면, 엄마가 있는 방에서. 곤히 자야 하는, 기상 시간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을 하면 더더욱 1분 1초가 아까운 시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옆으로 데리고 와서 눕히고 싶었지만 그렇게 열어 주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을 거다. 매일 올 거다. 지금도 계속 오는데.
서윤이는 다시 자기 방으로 갔다. 엄청 서럽게 울면서. 그러다 좀 조용해지길래 자는 줄 알았는데 마치 꺼진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처럼 울음소리를 키우며 다시 안방으로 왔다. 여전히 내 마음 속에서는 두 가지 생각이 치열하게 다퉜다.
‘얼른 옆으로 데리고 와서 눕혀’
‘얼른 돌려 보내. 계속 질 낮은 수면하고 싶어?’
결국 서윤이를 불렀다.
“서윤아. 이리 와. 왜 울어. 엄마, 아빠 옆에서 자고 싶어서?”
“네에”
서윤이를 아내와 나 사이에 눕혔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서윤이와 어딘가 살결이 닿아있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잠이 깊이 들었을 때는 손을 잡거나 볼을 만져도 가만히 있어서 좋다. 잠도 더 잘 오는 것 같았다.
귀가가 엄청 늦었다. 열한 시가 다 돼서 집에 돌아왔다. 의외로 아이들이 모두 안 자고 있었다. 거실 소파에 혼자 앉아 있던 아내가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았다. 아니, 마치 여러 마리의 맹수에게 공격을 당하다가 살아남은 톰슨가젤처럼 만신창이였다. 어느 정도로 뜨거운 하루를 보냈는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아무튼 아내의 얼굴이 창백해 보일 정도로 힘들어 보이기는 했다.
아직 자지 않는 아이들에게 가서 인사를 건넸다. 오늘의 첫 만남이자 마지막 이별(?) 인사였다. 그렇게 잠깐이라도 소통 아닌 소통을 하면 기분이 좋기는 하다. ‘못 봤다’와 ‘봤다’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야말로 잠깐 본 건데,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정서적 해소가 이뤄진다.
아내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다. 다만 친구가 ‘내 맘이 낙심되며’라는 찬송가를 보내줬다고 했다. 친한 친구가 위로를 건네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치열하게 하루를 살았나 보다. 요주(?)의 자녀인 시윤이가 어땠는지도 물어봤지만 마찬가지로 자세한 답변을 듣지는 못했다. 그래도 막 악을 쓰거나 떼를 쓰는 건 좀 줄어든 듯했다. 집요한 징징거림과 짜증은 여전한 듯했지만.
아, 아내가 육체적으로 힘든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서윤이가 똥을 다섯 번이나 쌌다. 무려 변기도 아닌 팬티에. 말이 다섯 번이지 10시간을 기준으로 잡아도 2시간에 한 번이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던가. 너덜너덜한 육체에 너덜너덜한 정신이 된 아내가 그래서 더 힘들어 보였나 보다.
요즘은 가끔 아내를 생각하면 ‘팀’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세상에서 가장 호흡이 잘 맞는 사람과 팀을 이뤄서 인생의 임무를 수행해 나가는 느낌이랄까.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역할에 책임을 다 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내일은 부디 두어 번의 똥만 마주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