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 다르고 속 다른 아빠

22.11.30(수)

by 어깨아빠

새벽에 자다가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 자다가 바닥으로 떨어진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꿈에서 어딘가를 걷고 있었는데 발목 쪽에 따끔한 느낌이 났다. 뭔가 하고 보니 뱀이었다. 깜짝 놀라서 발을 들어 옮겼는데 거기도 뱀이 있었다. 계속 물렸다. 현실 세계에서는 허공에 대고 발을 휘두르는 모습이었을 테고. 그러다 떨어졌다. 따끔한 느낌이 너무 생생해서 혹시 집에 지네가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바닥에는 서윤이가 자고 있었다. 언제 와서 누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자고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서윤이 위에 정통으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서윤이에게 약간의 타격은 있었는지 서윤이가 잠에서 깨서 서럽게 울었다. 30초 정도 토닥였더니 금방 울음을 멈추고 다시 잠들었다.


아내와 하루 종일 연락을 주고 받지 못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수요예배를 드리고 오후 늦게까지 교회에 있었다. K의 아내와 자녀들도 함께 있었다. 일을 마치고 K와 함께 교회로 갔다. 언제 어디서나, 환영받는 남편이자 아빠라서 감사하다.


“아빠. 조금만 더 늦게 오지 그랬어여”

“왜?”

“조금 더 놀게여”


아주 가끔은 예외도 있다.


아내는 저녁에 성경 공부가 있어서 다시 교회에 가야 했다. 시간이 엄청 촉박한 건 아니었다. 저녁 반찬이 마땅치 않아서 떡국을 끓여 먹기로 했다.


“여보. 좀 쉬어. 내가 끓일 게”


저녁 준비를 내가 맡을 때는 항상 아내에게 쉬라고 하지만 정작 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뭔가를 한다. 해야 할 일은 언제나 존재하고. 떡국의 최대 장점은 ‘간단함’이다. 간단하다는 건, 시간도 적게 걸린다는 거고 그만큼 식사 후 시간의 확보가 용이하다. 밥을 먹고 나서도 아내에게 그냥 두고 좀 쉬다 가라고 얘기했지만 아내는 사양했다.


“여보. 여보 너무 피곤하니까 내가 좀 해 주고 가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아내는 결국 거의 다 하고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보드게임을 하자고 했는데 오늘은 응하지 못했다.


“소윤아, 시윤아. 진짜 미안해. 아빠가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못하겠어. 하다가 졸 거 같아”


책도 못 읽어줬다. 밥 먹자마자 씻고 누운 덕분에 취침 시간은 매우 빨랐다. 몇 분 안 지나서 서윤이가 슬며시 나왔다.


“아빠아. 쉬 마려워여어”


팬티가 조금 젖어 있었다. 소변을 보게 하고 팬티를 갈아입혀서 다시 눕혔다.


“서윤아. 혹시 응가 마려우면 그냥 팬티에 하지 말고 아빠한테 얘기해. 알았지?”

“네에”


잠시 후 서윤이가 다시 나왔다.


“아빠아. 응가했떠여어”

“어?”

“응가했다구여어”

“하아. 서윤아. 아빠가 팬티에 하지 말고 말하라고 했잖아”


몸이 너무 피곤하니 마음에서도 짜증이 일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다정한 태도가 나오지 않았다. 서윤이는 일부러 더 밝게 얘기하고 장난을 쳤다. 콧노래도 흥얼거리고. 다시 새 팬티를 꺼내서 입혔다. 엉덩이를 드러내고 천진난만하게 웃는 서윤이를 보니 마음이 누그러졌다.


“서윤아. 똥 싸도 괜찮아. 근데 말 할 수 있으면 팬티에 하지 말고 아빠한테 얘기해. 알았지?”

“네에”


서윤이는 진한 뽀뽀를 건네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내 침이 묻은 부위를 격렬하게 팔로 닦으면서. 그 뒤로는 똥 사태가 없었지만 소윤이와 서윤이가 엄청 안 잤다. 아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도 안 잤다. 서윤이야 낮잠을 늦게 잤으니 그렇다고 해도 소윤이는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소윤이는 조금 더 늦게 잠들 나이가 됐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덟 시도 안 돼서 누웠으니 너무 이른 시간이었나 싶었다. 보통 여덟 살 정도면 몇 시쯤 자는 거지. 나만 해도 엄마, 아빠가 보는 드라마 같이 다 보고 늦게 잤던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