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과 연초를 강타한 독감의 서슬퍼런 칼날을 아내가 먼저 맞았다. 한 주 동안 친정에서 요양하는 아내를 보며 내심 ‘그러게 평소에 운동을 좀 하지’ 라며 우쭐대고 있었다. 아내가 친정에서 요양하며 독감을 떨쳐낸 지, 딱 2주 뒤에 나도 선고를 받았다.
“A형 독감이네요”
아내가 그랬던 것처럼 약을 먹는 대신 주사를 맞았다. 확실히 약효가 더 빠른지, 그날 밤부터는 조금 살 만해졌다. 덕분에 이틀 내내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주말이나 휴일에도 그런 날이 있었지만, 큰 차이가 있었다. 이번에는 육아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완전한 관찰자였다는 것.
내심 아내에게 눈치도 보이고 미안하기도 했다. 애 둘을 챙기기에도 바쁠 텐데, 나까지 신경 써야 하니 얼마나 성가실까 싶었다. 내 걱정과는 다르게 아내는 이렇게 얘기했다.
“그래도 여보 있으니까 좋은데. 주말 같고”
“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기만 하는데 뭐”
“그래도. 그냥 여보가 같이 있기만 해도 뭔가 좀 낫다”
뭐가 좀 나은지 알 것 같기도 하면서, 또 모르겠고. 그냥 입에 발린 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내가 막 신나 보이거나 에너지가 넘치는 건 또 아니었다. 소윤이가 정신 공격을 담당한다면 시윤이는 육체 공격이었다. 시도 때도 없는 울음과 안아달라는 몸짓. 내가 보기에 아내는, 내가 있어 ‘낫다’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오히려 평소에 알던 모습보다 더 지쳐 보였다.
일단 삼시 세끼가 일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 챙겨 먹이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먹고 돌아서면 또 밥때]라는 말은 단지 표현을 위한 문장이 아니었다. 현실로 다가왔다. 그 밥때의 공백을 메우는 두 아이의 끊임없는 요구와 자잘한 사건, 사고의 연속. 뫼비우스의 띠가 따로 없었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눈에 보이는데 당장 도움을 보탤 수 없는 것도 그렇고. 도움은커녕 몸은 장성했으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셋째 아들이 된 것도 그렇고. 몇 번이고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괜찮아?”
아내는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나? 괜찮은데?”
라고 대답했다. 물어볼 때마다. 내 눈에는 분명히 평소보다 힘들어 보이는데 아내의 대답은 그렇지 않았다.
“나 때문에 더 힘든 거 아니야?”
“아니라니까. 여보 있으니까 오히려 낫다니까”
아시안컵 축구 대회가 한창이다. 우리나라는 꾸역꾸역 승리를 챙기고 있다.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것보다는 훨씬 못 미치는 경기력이지만, 어쨌든 이기고 있고 다음 단계로 진출하고 있다. (내일이 카타르와의 8강전이다) 거의 모든 경기를 다 보고 있다. 만족스러운 경기는 거의 한 경기도 없었다. 함께 일하는 형은 애들 재우느라 실시간으로 보지 못하고, 항상 다음날 하이라이트를 보곤 한다.
“오. 어제는 좀 잘했나 보네”
“아니에요. 드럽게 못했어요. 이기긴 했지만”
“그래? 잘한 것 같은데”
“그거야 뭐. 잘한 것만 모아 놨으니까”
맞다. 이거였다. 나름대로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남편이지만, 그래 봐야 출근 전 30분, 퇴근 후 한두 시간이 전부일 뿐이었다. 나머지 8-9시간의 삶은 그저 전해 들을 뿐이었다. 그건 어쩌면 밖에서 일하느라 피곤하고 지쳤을 나를 위해, 아내가 엄선한 ‘명장면’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내가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던 건, 그게 아내의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힘들지 않아서 괜찮은 게
아니라, 인이 박히고 근육이 단단해져서 진짜 아무렇지 않았던 거다. 다만 내가 생각했던 일상 보
다 더 치열해서, 내가 놀랐던 거다. 육아를 분담하는 동지의 입장이거나, 전해 듣는 게 아닌
전지적 관찰자 시점으로 하루 종일 본 건 나도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아내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높은 경지에 오른 육아의 고수가 되어 있었다.
이 세상에 ‘고상한 육아’라는 건 없을 것 같다. 뜯기고, 찢기고, 울고, 웃고. 이런 육아만 있을 뿐. 그래도 박수받아 마땅한 이유는 꾸역꾸역 버텨내고, 살아내고 있으니까. 그게 진정한 강자니까.
“애 키우는 거 다 그래요. 오늘도 힘냅시다. 꾸역꾸역"
* 이 글은 리드맘 공식 포스트(https://goo.gl/btFcAS)에 포스팅 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