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깨아빠 Mar 20. 2024

출발선에 선 아이들

23.09.23(토)

날씨가 아주 맑았다. 엄청 시원하기도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드디어 주말’이라고 하면서 출발선에서 총소리를 기다리는 달리기 선수처럼 ‘오늘 어디 갈 것인지’, ‘아빠가 어디를 가자고 할 건지’를 벼르고 있었다.


“소윤이, 시윤이가 가고 싶은 곳은 없어?”


시윤이는 또 대학교를 얘기했다. 가서 축구를 하자는 얘기였다. 나야 아이들 의견에 맞추면 되니까 그렇게 하려고 했다. 소윤이가 시윤이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저번에도 가서 지겹지 않냐고 하면서 둘이 속닥속닥거렸다.


“아빠. 저 00000공원 가고 싶어여”

“아 그래? 알았어”


레일 썰매가 있는 곳이다. 한 번 갔었는데 그때는 레일 썰매 가동을 안 하는 날이었다.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만 잔뜩 했다. 그 썰매가 타 보고 싶었나 보다.


나가기 전에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화장실 청소였다. 상대적으로 한계치가 높은 내가 느끼기에도 더러웠다. 화장실 청소 말고도 매일 해야 하는 주방 정리와 집 정리도 했다. 빠른 시일 안에 하고 싶지만 못하고 자꾸 미루게 되는 베란다 정리는 오늘도 못했다. 그래도 시간이 훌쩍 흘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얼른 나가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들썩했다.


아이들에게는 미안했지만 한살림부터 가야 했다. 이때는 아내도 동행했다. 다행히 아내는 두통이 많이 사라졌다. 함께 외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활력도 있었다. 장을 보고 나니 점심시간이었다. 아침 먹이고 나온 게 조금 전이었는데 언제 또 끼니 때가 됐나 싶었다. 한살림 맞은 편에 있는 피자 가게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작은 피자였다. 아이들은 두 조각씩 먹었고 아내와 나는 한 조각씩 먹었다. 아내는 배가 고픈 건 아니어서 괜찮았고, 난 배가 고팠지만 더 먹을 게 없었다. 아내는 더 시키라고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감수할 만한 배고픔이었다.


카페도 들렀다. 저번처럼 커피를 받는 데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간이 얼마 없겠다’, ‘많이 못 놀겠다’, ‘카페에서 기다리는 게 세상에서 제일 지루하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당당하게 얘기했다.


“엄마 아빠가 하루 종일 너희랑 시간 보내면서 힘든데 커피 받는 정도는 너네도 이해해야지”


생각보다 더 늦은 시간에 공원에 도착했다. 썰매가 별 건 아니었다. 길이도 짧고 엄청 스릴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거 타러 또 올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안 타면 계속 궁금했을 거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한 20분 타고는 서윤이와 내가 있는 모래밭으로 왔다. 썰매는 5세 이상부터 탑승이 가능해서 서윤이는 못 탔다. 언니와 오빠가 신나게 내려갔다가 달려오는 걸 조금 지켜보다가 모래놀이를 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오늘은 아예 모래놀이 도구까지 챙겨왔다. 그 말인즉, 옷과 몸이 더러워지는 것을 개의치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물까지 떠 가면서 제대로 모래놀이를 했다. 시윤이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가 함께 와서 어울렸다. 그 여자아이 말고도 몇 명의 어린아이들이 와서 관심도 보이고 합류하려고 했는데, 대체로 부모에게 제지를 당했다.


“어, 오늘은 모래놀이는 안 돼. 저쪽 가서 미끄럼틀 탈까?”


나도 대체로 그렇다. 오늘은 아니었지만. 함께 어울린 여자아이는 모래놀이를 마치고 그네를 탈 때도 계속 같이 놀았다. 꽤 늦은 시간에 가서 애초에 사람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지만, 해가 지고 나니 그나마 있던 사람도 모두 떠나고 우리만 남았다. 바람이 매우 찼다. 그 여자아이는 엄마와 함께 왔는데, 엄마가 몇 번이나 ‘이제 가자’는 말을 했지만 ‘조금만 더’를 몇 번이나 말하며 자리를 뜨지 않았다. 결국 엄마가 ‘엄마 갈게. 더 놀고 혼자 와’라고 하면서 진짜 떠나자 그제야 급히 엄마를 향해 뛰어갔다.


“우리도 이제 가자”


오늘의 저녁은 부추오징어전과 소시지야채볶음이었다. 물론 요리는 내가 했다. 집에 도착해서 아이들이 씻는 동안 저녁을 준비했다. 몸 상태가 많이 좋아진 것처럼 보이는 아내는 자꾸 자기가 하겠다거나 돕겠다고 하면서 주방에 왔다.


“여보. 그냥 쉬어. 괜찮을 때도 그냥 쉬어. 여보는 홀몸이 아니라니까”

“괜찮아. 이 정도는”


아내가 아프면 내 가사 실력과 요리 실력이 향상된다. 부추오징어전이 아주 성공적이었다. 팬에 눌어붙지도 않았고 아내와 아이들의 반응도 좋았다. 나도 맛있게 먹었다. 맛있는 요리를 했다는 건 그만큼 치워야 할 게 많다는 얘기기도 했다. 오늘은 세차도 해야 했다. 싱크대에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짓거리를 뒤로 하고, 일단 세차부터 하러 갔다.


3시간이 걸렸다. 오늘은 주방 정리를 미뤄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에 왔는데, 아내가 나를 보더니 얘기했다.


“여보. 오늘은 주방 치우지 말자. 어?”

“그래. 안 그래도 그러려고”


깔끔하지 않은 주방을 보는 게 내내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의지를 내기에는 이미 진이 빠질 대로 빠져서 움직일 수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팬티에 똥 싸서 미안해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