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5(월)
“여보. 아이들은 괜찮나요?”
“뭐. 그럭저럭. 왔다 갔다”
“여보는?”
“의지를 열심히 내고 있으나 한 번씩 화가 나려고 하네”
“여보의 속은?”
“음식 먹고 나니 좋지는 않고”
요즘 아내의 하루를 보여주는 대화였다.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입덧이 지금보다 더 심했던 초기에는 어떤 상황에도 아내의 웃음을 보기 어려웠는데 요즘은 나의 개그나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에 환하게 웃을 때도 많다는 거다. 아내가 웃기만 해도 좀 살 만하다.
소윤이는 우체국에 가야 한다고 했다. 매달 큐티를 하고 나면 관련된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서 응모하는 게 있나 보다. 당첨이 되면 뭔가 선물을 받는 것 같은데 아직 당첨된 적은 없다. 그래도 소윤이는 꾸준하게 응모하고 있다. 그걸 오늘 부쳐야 한다고 했다. 퇴근하자마자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를 데리고 우체국으로 갔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함께 가야 할 이유(목적)가 없었지만, 어떤 기회로든 바깥에 나가는 건 언제나 환영하는 일이니까 당연히 따라나섰다. 소윤이는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그것도 부쳤다. 소윤이 또래에도 휴대폰을 가진 아이들이 많아서 다들 실시간 소통을 하는 시대에 어떤 아이들은 경험도 못 해 봤을 편지로 소식을 나누다니. 열심히 주소를 쓰는 소윤이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흐뭇했다.
저녁은 돈까스였다. 냉동 돈까스를 오븐에 익혀 먹었다. 없을 때는 몰랐는데 잘 되는 오븐이 있으니 편하다. 오븐이 없었으면 얕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서 계속 뒤집어 가며 구워야 했을 텐데.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하는 게 아니라 장비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 밥이 조금 모자라서 난 어제 Y가 준 치킨을 먹었다. 아이들은 돈까스가 풍성했는데도 밥이 부족해서 배가 덜 찼는지 뭔가 더 달라고 했다. 복숭아 두 개를 깎아줬다. 알이 꽤 커서 양이 많았다. 물론 순식간에 사라졌다. 원래 아이들은 알맹이를 먹고 껍질은 내가 먹었는데 이제 아이들도 껍질을 잘 먹는다. 그럼 아예 껍질을 까지 않고 먹으면 되지 않냐고 했더니 그건 또 싫다고 했다. 알맹이는 알맹이대로, 껍질은 껍질대로 먹는 게 좋다고 하면서. 음식물 쓰레기가 줄어서 좋기는 한데, 가끔 새삼스럽게 놀랍다. 이 녀석들의 엄청난 먹성이.
요즘은 대부분 아이들 방에서 잔다. 가뜩이나 힘든 아내가 혹시나 새벽에 나 때문에 잠을 설칠까 봐 그러는 건데, 자꾸 바닥에서 자다 보니 허리가 아팠다. ‘오늘은 허리가 아파서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안방 문을 열어도, 아내가 침대 한가운데서 자고 있을 때가 많았다. 오늘은 허리 통증이 너무 심해서 도저히 바닥에서는 못 잘 것 같았다. 시윤이 옆에 누웠다. 시윤이는 내가 옆에 눕는 걸 좋아하지만 불편해한다. 아빠와 함께 자는 게 좋은 것과는 별개로 내가 너무 움직이니까 좁은 거다. 자다 보면 항상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을 때가 많다.
오늘도 시윤이는 새벽에 깨서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다.
“시윤아. 왜?”
“어. 엄마한테 가려고여”
“왜. 아빠 옆에서 자자”
“너무 좁아서어”
“여기 누우면 되지”
시윤이는 다시 내 옆에 누웠고, 몇 분 뒤에 서윤이도 깨서 올라왔다.
“서윤아. 아빠 옆에서 잘래?”
“아니여. 거긴 너무 좁아서 싫고 여기서”
서윤이는 내 발 밑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