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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Apr 04. 2024

사랑의 마사지

23.10.04(수)

감사하게도 소윤이는 많이 좋아졌다.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좋아졌고 먹는 것도 평소와 같은 상태로 회복되고 있었다. 소윤이가 멀쩡해지는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새로운 고난(?)이자 익숙한 고난이 찾아왔다. 아내의 두통이 심해졌다. 보통 심한 게 아니라 극도로 심했다. 그나마 낮에는 조금 아픈 정도였는데 밤이 되면서 견디기 어려운 통증으로 변했다.


퇴근하자마자 가장 먼저 시윤이를 방으로 불러서 얘기를 나눴다. 낮에 아내와 있었던 일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요즘은 내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훈육이 필요할 때는 훈육을 하고 대화가 필요할 때는 대화를 하고. 어떤 방법이 됐든 ‘아빠 없는 공간’은 존재할 지 몰라도 ‘아빠없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심어주려고 한다. 그게 낮 시간의 시윤이의 말과 행동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기를 바라면서. 효과가 어떤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아무튼 오늘도 시윤이와 낮에 있었던 일에 관해 대화를 잘 나눴다.


저녁을 먹고 문구점에 다녀왔다. 시윤이와 서윤이가 엄마의 선물을 사야 한다고 했다. 시윤이는 자기가 미리 봐 둔 게 있다고 했다. 정기용돈은 없지만 특별용돈을 받아서 모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거라고 했다. 서윤이는 돈도 없으면서 자기도 선물을 사야 한다고 난리였다.


“서윤이 돈 없잖아?”

“아빠가 주면 되져”


시윤이는 문구점에 들어가자마자 빠르게 골라왔다. 다이어리였다. 정말 시윤이가 가진 돈으로 살 수 있는 가격이기는 했는데, 이미 10월이었다. 아내는 이미 사용하는 다이어리도 있었고. 시윤이의 그 갸륵한 마음을 해치지는 않으면서 기쁘게 다른 선물을 고를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시윤아. 이것도 좋은데 벌써 10월이라 다이어리를 사면 조금밖에 못 쓸 텐데? 엄마는 이미 쓰고 계신 것도 있고. 다른 거 더 필요한 걸 사는 게 어떨까?”

“그런가?”


시윤이는 민망할 때 보이는 특유의 귀여운 웃음을 보이며 다이어리를 갖다 놓고 다른 걸 찾기 시작했다. 마땅한 게 정말 없었다. 필요와 가격을 모두 맞추려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윤이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 내가 방석을 제안했다.


“시윤아. 이건 어때?”

“이거여? 어디다 놔여?”

“이번에 새로 가지고 온 식탁의자. 그거 딱딱하니까. 거기에다가”

“좋아여. 그거 사자여”

“시윤아. 근데 이거 9,000원이야. 시윤이가 4,000원 내고 나머지는 아빠가 낼 게. 어때?”

“좋아여”


시윤이의 거금 4,000원이나 쓰는 건데 기분만 내고 버려지는 선물보다는 두고두고 쓰며 기억할 수 있는 선물을 골라주고 싶었다. 9,000원 짜리 방석의 최후가 불 보듯 뻔하긴 해도. 서윤이는 풍선을 샀다. 내일 아내의 생일을 축하할 때 쓸 수 있는 거였다. 아이들은 집에 들어갈 때 엄마가 절대 모르게 해야 한다며 호들갑이었다. 다행히(?) 아내는 안방에 누워 있었고 아이들의 선물은 작은방에 무사히 숨겼다.


아내는 극심한 두통 때문에 일상이 멈춘 상황이었다.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누워있었다. 아내 없는 저녁 일상과 나 홀로 육아 및 가사는 점점 익숙해지는 듯하다가도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렵기도 하고 그랬다. 아이들과의 시간을 정신없이 마치고 푸른 소나무처럼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는 싱크대의 그릇들에게 갔다.


집안일까지 모두 마치고 소파에 앉아서 쉬고 있었는데 아내가 매우 고통스러운 몸부림과 함께 안방에서 나왔다. 사실 그 전에도 계속 소리가 났다. 아픈 사람이 내는, 매우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였다. 아내는 두통이 너무 심해서 어쩌지 못하고 울면서 나왔다. 사 놓기만 하고 먹지 않았던 타이레놀을 급히 한 알 먹었다.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안타까웠다. 급한 대로 유튜브에 올라온 마사지 영상들 몇 개를 보고 아내를 앞에 앉혔다. 머리와 목, 등, 허리까지 안마를 했다. 사실 아내는 며칠 전부터 비염도 엄청 심했다. 비염이 유발하는 두통일 가능성이 매우 컸지만 일단 열심히 주물렀다. 고통에 대한 역치가 낮은 아내는 매우 괴로워했지만, 오늘은 무시하고 강행했다. 꽤 한참 하긴 했는데 효과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아내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몇 분 후에 카톡이 왔다.


“두통이 진정됐음. 너무 고마워 여보”


뭐지. 나 화타인가. 아무튼 다행이었다. 내일이 아내의 생일인데, 생일날 그저 집에서 두통과 싸우며 지내야 하나 싶었는데 일단은 위기를 넘겼다. 다시 재발할 가능성도 농후했지만.


정신없어서 깜빡 잊을 뻔했는데, 미역국을 끓여야 했다. 영업 마감한 주방을 다시 열고 미역국을 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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