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향기

19.04.08(월)

by 어깨아빠

별 다른 일은 없었다. 당분간 처치홈스쿨은 화요일, 금요일에만 하게 되어서 다른 날은 집에서 쉴 수 있다. 물론 아내에게 집에서 쉬는 건 단지 문자의 표현일 뿐, 실제로는 쉼과 완전히 동떨어진 치열한 육아와 집안일의 향연일 테지만. 그래도 아내에게 희망이 있는 건, 월요일은 프리데이니까.


낮에 장모님이 오셔서 애들이랑 스타필드에 갔다고 했다. 아내에게 뜬금없는 카톡이 하나 왔다.


[진짜 시윤이 응가 냄새 지독하다]


사실 뜬금없는 건 아니다. 지독 이상의 표현을 찾을 수 있다면, 사용하고 싶다. 끔찍하다, 넌덜머리가 난다, 숨 쉬고 싶지 않다. 어느 것 하나 과한 표현이 아닐 정도로 정말 심하다. 여러 종류의 똥냄새를 맡아본 건 아니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심한 편인 것 같다. 뭐랄까 본능적으로 거부 반응이 일어난다. 얼굴은 일그러지고, 온몸은 경직되고. 적어도 소윤이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오늘 세 번째]


거기에 세 번이라니. 집도 아닌 밖에서.


[유산균 먹이면 나아질까?]

[유산균이랑 냄새랑 상관이 있어? 냄새 많이 나는 게 안 좋은 건가?]


냄새 많이 나는 게 내 코에는 안 좋을지언정, 시윤이가 어딘가 불편해서 그러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내는 장이 안 좋아서 그런가 싶다고 했다. [대변 냄새 심하게 나는 아이 이렇게 해주세요] 라는 제목의 인터넷 정보를 캡처해서 보내줬다. 거기에 [유산균 꾸준히 섭취하기]가 있었다. 더 어렸을 때 몇 주식 똥을 못 싸서 걱정했던 적도 있고, 유산균은 꾸준히 먹여서 나쁠 게 없으니 그러라고 했다.


난 시윤이 똥 싸서 닦아줄 때, 원래 비누칠을 했었다. 어린아이들의 생식기에 비누가 닿아서 좋을 게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강하게 남는 잔향을 없애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요즘에는 시윤이의 건강을 생각해 물로만 닦았다. 아내에게 시윤이 엉덩이 세척용 비누를 별도로 비치할 것을 건의했다.


퇴근할 때까지도 스타필드에 있다길래 가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

"나. 이제 강매 IC"

"아니, 시윤이가 자꾸 배가 아프다고 그러네"

"그래?"

"어. 그러면서 한 번씩 힘주고 그래. 아프긴 아픈가 봐"

"똥꼬가 아픈 게 아니라?"

"어. 배 아픈지 똥꼬 아픈지 물어보면 배가 아프다고 얘기해. 병원에 가볼까?"

"병원에 가도 뭐 별 다른 게 있을까?"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그래 그럼"


주차장에서 만난 시윤이는 정말 어딘가 불편한지 얼굴이 안 좋았다. 계속 징징거리고. 그렇다고 심각한 상황을 예상하지는 않았다. 그냥 배가 더부룩해서 불편하거나 똥꼬가 아파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어른도 하루에 세 번을 싸면 아프니까.


우왓. 병원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우리가 다니는 병원의 최대 장점이 사람이 없다는 건데, 오늘은 월요일이라 그런가. 딱 봐도 한 시간은 걸릴 것 같았다.


"여보. 어떻게 하지? 그냥 갈까?"

"그럴까? 너무 많다"


마침 시윤이도 점점 괜찮아지는지 살살 장난도 치고, 웃음도 많아졌다.


"가자. 소윤아, 시윤아"

"아빠. 왜 그냥 가여?"

"아. 사람이 너무 많기도 하고, 굳이 진료 안 받아도 될 거 같아서"

"아, 난 그래도 시윤이 진료받는 게 좋은데"


얘는 왜 이런 이상한 지점에서 고집을 부릴까. 비타민(소아과 및 약국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는 비타민 사탕의 공식 명칭을 얼른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진 것에 비해 호칭이 너무 호사스럽다. 비타민의 탈을 쓴 설탕 덩어리 정도가 적당하겠다) 때문인가. 아무튼 다시 병원에서 나왔다.


"여보. 여보는 여기서 가"

"여보는? 여기서 버스 타고 가게?"

"어. 애들 밥 먹이고 버스 타고 가지 뭐. 여기 버스 몇 번 있지?"

"075B"

"아. 그래?"


075B는 배차 간격이 길다. 움찔했다. 아내도 간파했는지 바로 대답을 이어갔다.


"여보. 그냥 동네에 가서 먹어. 난 거기서 가나 여기서 가나 별 차이 안 나니까"

"그럴까 그럼?"


나랑 애들만 내리고, 아내는 자유를 향해 떠났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랑 밥 맛있게 먹고, 말 잘 듣고"

"엄마 안녕"

"안농"


단골 죽 집에 갔다. 소윤이가 새우죽이 먹고 싶다고 했다. 이때쯤 시윤이는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와서 활발하게 장난도 치고, 웃고 그랬다.


"시윤이 이제 아파 안 아파?"

"안 아쁘"

"이제 괜찮아?"

"네에"


자리에 앉아서 새우죽을 시키고, 시윤이도 아기의자에 앉혔는데 소윤이가 얘기했다.


"아빠, 쉬 마려워여. 그런데 밥 먹을 때까지는 못 참고 밥 나올 때까지는 참을게여"

"왜?"

"아빠가 또 하아(표정도 리얼하게 따라 함) 이렇게 할까 봐여"

"아니야. 쉬 마려운 건 어쩔 수 없지. 가자 얼른"


소윤이에게 좀 미안하고 창피했다. 평소에 내가 얼마나 그렇게 반응했으면, 그걸 그대로 따라 하고 그것 때문에 참는다고 할까. 반성해야지. 소윤이랑 시윤이는 죽을 시원시원하게 잘도 먹었다.


"아빠, 우리 밥 먹고 롯데슈퍼 갈까여?"

"롯데슈퍼는 왜?"

"맛있는 거 사게여"

"맛있는 거 뭐?"

"뭐 그냥 과자나 그런 거여"

"소윤아, 그럼 우리 그냥 편의점 갈까?"

"왜여?"

"편의점에 가서 맛있는 거 사서 앉아서 먹고 가면 되잖아"

"그러자여"


편의점으로 가는 길에도, 편의점에 가서도 모두 기분이 좋았다. 화목했다.


소시지 하나씩과 우유, 과자를 사서 나눠 먹었다. 오징어 해씨볼이라는, 오징어 땅콩과 모양도 비슷하고 맛도 비슷한데, 알맹이 크기가 작고 땅콩 대신 해바라기씨가 들어있는 과자를 샀다. 둘이 다람쥐처럼 어찌나 잘 집어 먹는지. 그래도 오늘은 경쟁과 탐욕 대신 양보와 배려가 넘쳤다.


편의점에서 모든 일정은 종료했다. 집에 가면 '바로' 씻고, '바로' 자는 거라고 세뇌했다. 다행히 둘 다 기분 좋게 나의 지침을 따랐다. 밥도 밖에서 먹고, 편의점에도 들렀더니 시간이 꽤 늦은 상태였다. 아내는 집이 들렀다가 나갔는지, 아내의 흔적이 느껴졌다.


소윤이, 시윤이는 금방 잠들었다. 소윤이는 손 잡아 달라고 하더니 바로 곯아떨어졌고, 시윤이는 어둠 속에서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길래


"시윤아. 얼른 눈 감고 자. 안 그러면 아빠 나간다"


그랬더니 두 손으로 눈을 가리더니 그대로 잠들었다.


거실에 나와 보니 세탁을 마친 젖은 옷들이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다. 건조대에 널기 직전, 말 그대로 딱 그 직전의 상태였다.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옷은 말이 없지만 말은 하고 있었다.


'얼른 날 널어라. 가만히 쳐다보지만 말고'

'여보. 이것 좀 널어요'


왠지 모를 짜증이 솟구쳤다. 차라리 말하고 나가면 될 걸, 이렇게 두고 가는 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지적으로 원래 '나의 일'이며 내가 하게 되었다고 해서 '짜증 낼 권리'가 애초에 없었음을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열심히 빨래를 널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아내는 집에 돌아와서 먼저 얘기를 꺼냈다.


"아, 맞다. 여보. 빨래는 내가 갔다 와서 널려고 한 건데 깜빡하고 말을 못 한 거야. 여보한테 널라고 그럴 생각은 없었어. 오해하면 안 돼"

"알았어. 누가 뭐랬나"


태연한 척했다. 티 났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