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19(금)
처치홈스쿨에서 식물원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오늘도 새벽기도에 나갔고,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한 끝에 택한 방법은 이랬다.
새벽기도가 끝나고 밥을 먹지 않고 바로 나를 백석역에 내려준다. 아내와 아이들은 곧장 집으로 돌아가서 애들은 따로 재우지 않는다. 아내는 그 사이 도시락을 비롯한 소풍 준비를 한다. 아예 조금 일찍 나가서 차에서 재운다. 즐겁게 식물원 소풍을 즐긴다.
아내와 내가 세운 계획이었다. 계획은 함께 했어도 실패하면 그 대가는 아내 혼자 짊어져야 했다. 9시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헉. 아내의 목소리가 마치 지난 수요일처럼 바싹 말랐다.
"어디야?"
"이제 나가려고"
"애들은 잤어?"
"아니. 여보 내가 이따 전화할 게"
"어, 아침에 힘들었어?"
"어. 그냥 뭐 똑같지. 참담한 심정이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싶고"
뭐라 말을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아내는 이따가 전화하겠다며 통화를 종료했다. 원래 8시 30분쯤 나갈 계획이었는데, 9시가 넘어서 나가려고 한다는 것만 봐도 뭔가 꼬이긴 꼬인 모양이었다. 난 당연히 이 사태의 원인 제공자가 소윤이라 생각했다. 아내에게 장문의 카톡을 썼다. 위로와 격려, 지난 수요일의 다짐을 기억하자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신중하게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 여보. 식물원이야?"
"응 지금 보고 있어"
"애들은?"
"아, 지금 저기 단체로 있어서 내가 잠깐 없어도 되거든"
"아, 그래? 아침에는 왜? 소윤이 때문에?"
"아니, 강시윤. 나가려고 하는데 막 다 쏟아놓고 어지르고. 말 안 듣고 도망 다니고"
"아, 그랬어? 난 소윤이 때문인 줄 알았지"
"소윤이는 말 엄청 잘 들었지"
"그랬구나. 잠은 아예 안 자고?"
"어. 시윤이는 차에 태우니까 바로 자긴 했는데 도착해서 깼어"
"소윤이는 아예 안 자고?"
"어"
"대단하다"
"그러니까. 오늘 괜찮을지 걱정이네"
"지금은 괜찮아?"
"어. 아직까지는. 소윤이랑 시윤이 둘 다 괜찮아"
소윤아, 미안하다. 아빠는 당연히 너 때문인 줄 알았어. 오늘은 강시윤이었네. 아까 전화했을 때만 해도 곧 큰일이 날 것 같은 아내였는데, 두 번째 통화에서는 그냥 보통 엄마였다. 회복력이 빠르다고 해야 하는 건가.
오후 두 시쯤 모든 일정을 마친 아내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여보"
"어. 지금 끝났어?"
"어. 난 파주에 가서 엄마랑 커피 한 잔 하고 여보한테 가려고"
"그래 그럼"
"애들은 자"
"언제부터?"
"좀 전에, 차 태우고 나서"
"바로 잠들었어?"
"어. 둘 다 피곤하지 뭐"
오늘은 금요철야예배가 없었다. 밤 시간이 생겼지만 늦은 낮잠으로 인해 고스란히 아이들과의 시간으로 헌납했다. 집에 일찍 가 봐야 자지도 않을 테니 어디 놀다 갈 데가 없나 고민했다.
"여보. 우리 원당시장 갈까?"
"아, 그럴까?"
퇴근 시간에 맞춰 사무실에 온 소윤이와 시윤이의 상태가 최상이었다. 시윤이야 그렇다 쳐도, 소윤이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온몸과 마음에 조금의 피로도 남지 않은 듯 보였다.
아내랑 아이들은 저번에 한 번 구경을 가봤고, 난 오늘 처음이었다. 규모가 엄청 크다고는 할 수 없는데 구성이 알차다. 제주도나 강화도 같은 데 있는 시장은 너무 해산물만 많아서 의외로 볼 게 없는데 여긴 그렇지 않다. 나의 눈과 혀를 들썩이는 각종 돼지 내장이나 부속 고기들이 가득했고, 잘은 모르지만 물가도 좀 싼 것 같았다. 애들이 조금 더 크면 시장 구경하다가
"소윤아, 시윤아 우리 저기서 돼지곱창 먹을까?"
"소윤아, 시윤아 순댓국 먹고 갈까?"
"소윤아, 시윤아 닭똥집 먹을래?"
라며 가게도 아닌 길바닥 시장표 바(bar) 의자에 앉아 같이 밥 먹는 날이 오겠지. 아내랑은 이미 안 될 것 같다. 지난 제주 여행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소윤아, 시윤아 너희는 반드시 토종 입맛으로 자라거라.
시윤이는 뭔가 보여줄 맛이 나는 아이다. 연신
"무지? 무지?(뭐지)"
를 외쳐대며 손가락을 뻗었다. 어려운 점이라면 잠시라도 멈추면 바로 유모차에서 내려 자기 누나를 따라 구경하거나 돌아다니며 장난을 친다는 거. 다행히 대부분의 가게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인이셨고 소윤이랑 시윤이를 매우 귀엽게 봐주셨다.
가뜩이나 몸 상태도 최상인 데다가 가자마자 꽈배기랑 도넛도 먹고, 아빠도 교회에 안 가고 계속 같이 있고. 모든 조건이 어우러져 소윤이와 시윤이의 기분은 최고조였다. 좋긴 좋지만, 흥분한 아이들과 함께하는 나름의 어려움이 또 있다.
저녁은 한 국수 가게에서 먹었다. 돈까스도 팔길래 사이드 메뉴(원래 가격의 절반 가격, 양도 절반)로 시켰다. 비빔국수와 판모밀도 시키고. 이미 이것저것 많이 먹은 소윤이랑 시윤이는 잘 안 먹었다. 시윤이는 먹고 싶지 않으면 먹여줘도 잘 안 먹는다. 그에 반해 소윤이는 자기가 직접 떠먹을 때와 먹여줄 때의 페이스가 확연히 다르다. 먹여 주기만 하면 끝까지 먹기는 한다.
안아달라면 안아주고, 목마 태워달라면 태워주고. 잔뜩 오른 두 녀석의 흥을 깨지 않기 위해 나름 열심히 노력했다.
"여보. 금요일에 교회 안 가니까 엄청 여유롭고 좋네?"
"그러게"
꽤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왔다. 아내가 가장 피곤해 보였다. 새벽 5시도 안 된 시간에 일어나서 밤 9시가 다 되로고 한 숨도 못 잤을뿐더러, 두 녀석과 치댔으니 안 피곤하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애들을 재우러 들어간 아내는 당연히 다시 나오지 않았다. 아내가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을 얘기해줬는데, 사실 딴생각하면서 건성으로 들어서 무엇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대충 기억나는 것만 이행했다.
그러고 보니 아침만 해도 아내가 참담하다고 고백했는데, 마무리는 좋았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