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18(목)
어제는 둘 다 세상모르고 자더니, 오늘은 아니었다. 새벽기도 때문에, 이른 기상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초특급 빠른 기상을 하고도, 보충잠(?)을 쥐꼬리만큼 잔 대가일까.
[이것은 시험인가. 소윤이가 오늘은 작정한 듯 힘들게 하는 군. 피곤해가지고. 시윤이한테도 폭군처럼 그러고. 기도해줘요]
아내는 어제 쌓은 모래성을 파도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회사에 있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격려와 기도뿐이다. 물론, 소윤이와 직접 얘기하며 훈화(?)하는 방법도 있지만, 원격 훈육(?)은 별 효과가 없다는 걸 느끼고 있다.
(내)엄마를 만나기로 했다. 합정에서. 원래 집에 오시는 거였는데 일 끝나고 (우리) 집에 오면 거의 다섯 시가 넘을 것 같았다. 소윤이의 강력한 요청에 어쩔 수 없이 그러기로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비효율적이었다. 소윤이를 설득했다.
"소윤아.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면 조금 있다가 소윤이는 바로 자야 돼. 그런데 밖에서 만나면 그만큼 더 많이 할머니랑 있을 수 있어. 밖에서 만나는 건 어때?"
"그래도 집에서 보고 싶은데"
"집에서는 나중에 시간 많을 때 오시라고 하면 되지. 오늘 밖에서 할머니랑 같이 밥도 먹고 오랫동안 놀자"
"카페도 가고?"
"그래"
"그러자여"
아내는 집에서 애들과 함께 합정으로 가고, 난 퇴근하고 버스를 타고 갔다. 우동 [카덴]에서 저녁을 먹었다. 아기 의자도 없을 만큼 아이들이랑 가기 쉬워 보이는 곳은 아닌데, 우리는 갈 때마다 기억이 좋았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애들이 갈 때마다 협조를 잘해주니까. (그렇다고 목석처럼 앉아서 얌전히 먹는다는 건 아니다. 늘 평균은 한다. 말 안 듣는 평균, 뺀질뺀질 평균, 울화통 유발 평균. 다만, 평균보다 조금이라도 덜 하면 그걸 '협조적'이라고 표현할 뿐이다)
밥 먹고 나서는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 갔다. 지난번에 갔던 카페보다는 훨씬 넓고 자유분방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지하로 내려갔더니 계단식 좌석이 널찍하게 있었다. 하아. 계단식이라. 아니 계단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뭐 그렇게 재밌다고 계단만 보면 오르지 못해 안달인지. 언제 한 번 우리 집(10층)까지 걸어 올라가도록 해볼까. 빵과 간식으로 자리에 좀 묶어두려 했지만 오늘의 시윤이는 먹을 걸로도 막지 못했다. 시윤이가 제 멋대로 돌아다니니까, 소윤이도 자리를 이탈해 막 움직이려고 했다. 말로 소윤이를 붙잡아 두려 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시윤이는 돌아다니게 두면서(얘는 못 돌아다니게 하면 아예 울어 버리니까 섣불리 맞기 못한다) 소윤이한테만 그러지 말라고 하는 건, 내가 생각해도 공평하지 않고 설득력이 떨어진다.
결국 아내가 둘을 맡기 위해(선을 넘을 정도의 소란함이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막기 위해) 쫓아다녔다. 그 사이 엄마랑 나는 꽤 긴 시간 대화를 나눴다.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을 겪은 엄마는 내게(사실 그게 나였든 아내였든 상관없었을 거다) 그 일을 자세히 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엄마 얘기를 들으면서도 계속 아내가 신경 쓰였다. 같은 공간에 있던 누군가가 우리의 관계를 파악했다면
'와. 저 며느리 진짜 불쌍하다. 남편은 쓰레기네'
라고 생각할 만큼 그야말로 아내는 애들 뒤꽁무니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엄마가 열을 올리며 얘기하고 있는데 자리를 바꿀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내의 기분이 상한 건 아니었다. 아내와 몇 번 눈짓을 교환했는데, 아내는 괜찮다고 했다. 엄마의 얘기를 다 듣고, 어쩌다 보니 아내가 앉게 되었고 난 서게 되었다.(섰다는 건 두 아이들을 쫓기로 했다는 말이다) 엄마는 내게 했던 얘기를 거의 그대로 아내에게도 전했다. 엄마가 빠른 속도로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새삼 느꼈다.
많은 남편들이 괴로워한다는 '고부 갈등' 같은 게 없어서, 아내와 엄마가 한 공간에 있어도 별로 많이 긴장하거나 신경 쓰거나 그런 게 없다. (아내는 아내대로 잘하고, 엄마는 엄마대로 잘해서 난 약간의 신경만 쓰면 된다. 늘) 오늘은 평균 이상으로 신경이 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구도가 좋지 않았다. 나랑 엄마는 앉아서 편히 대화하고, 아내는 애들 쫓아다니느라 진 빼고.
"여보. 미안. 괜찮아?"
"어. 난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렇지 않다는 건 '감정'을 말하는 거지, 육체의 고단함을 말하는 건 아닐 테다. 카페에서 나와 엄마랑 헤어졌다. 고된 하루의 유일한 보상이라면, 애들이 집에 가는 길에 잤다는 정도. 그래 봐야 이미 늦은 시간이고, 내일 새벽기도도 가야 하니 뭔가를 할 수는 없지만 하나라도 과정을 덜었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 안타깝게도 아내는, 오랜만에 자다 깨서 거실에 나온 시윤이에게 끌려들어 갔지만.
시윤이는 요즘 아내와 나, 소윤이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다가
"아빠. 왜여?"
"엄마. 왜여?"
라는 말을 참 많이 한다. 건성으로
"어. 그냥"
"어. 아니야"
라고 대답하면
"아아아"
"아냐아아아"
하면서 제대로 대답하라고 채근까지 한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대화에도 그렇게 물어보는 경우가 너무 많다.
"어, 시윤아. 저기 신호등이 빨간색이라 안 가는 거라고"
그러면
"우와아아"
"아아"
알았다는 듯 대답도 하고. 많이 컸다. 감정도 다양해졌다. 이전에는 없던 서운함, 서러움, 황당함 같은 감정도 가끔씩 드러낸다. 마냥 아쉽다. 단지, 아기의 티를 벗는 것뿐만 아니라 이제 어쩔 수 없이 소윤이처럼 가르치고 혼내야 할 일이 많아진다는 게.
소윤이를 생각하면 시윤이가 생각나고, 시윤이를 생각하면 소윤이가 생각난다.
아기 때, 더 아기 때가 그리운 건 마냥 예뻐해주는 것만으로도 부모의 책임을 다 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