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21(주일)
일주일 간 새벽 기상을 해서 그런지 8시에 일어났는데도 무지하게 개운했다. 애들이 주말에도 일찍 깨우는 게 불만이었는데, 평일에 더 일찍 일어나면 해결되는 거였구나?(라는 [월요병을 없애려면 일요일에도 출근하면 된다] 같은 생각을 0.5초 정도 했다)
"애들 아침 뭐야?"
"계란밥"
계란은 정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증거다. 아내와 나에게 계란이 없는 육아는 상상하기 힘들다.
언제나 그렇듯 부지런히 움직여도 빠듯한 아침이다. 소윤이는 새싹꿈나무에 보내고 아내와 나, 시윤이는 본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처음에는 기분 좋게, 그러나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활력을 보이던 시윤이가 급격히 얌전하고 조용해졌다. 갑자기 움직임이 둔해지더니 아내의 품에 고개를 파묻고 잠을 청했다. 불편한지 쉽사리 잠들지 못하고 잠투정을 좀 하더니 결국 아주 깊은 잠에 빠졌다. 예배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잠든 시윤이를 아내에게서 넘겨받았다.
"여보는 소윤이랑 밥 먹고 있어. 난 여기 좀 앉아 있다 올라가든지 할 게"
"그럴까?"
잠든 시윤이를 안고 그대로 본당에 앉아 있었다. 바로 다음 예배가 있기 때문에 한정 없이 앉아 있지는 못했다. 자세를 바꿔 시윤이 고개를 어깨에 기대게 해서 식당으로 올라갔다.
"소윤아. 오늘도 예배 잘 드렸어?"
"네"
"오. 이거 뭐야?"
"이거 팝콘이에여"
"아, 팝콘으로 나무 만든 거구나"
"네 팝콘 벚꽃 나무에여"
"오. 잘했다. 소윤이가 했어?"
"이건 선생님이 해주셨고, 이것도 선생님이 해주셨고 팝콘 붙이는 건 내가 했어여"
점심 메뉴가 매운 소고기 뭇국이었다. 언제나처럼 소윤이에게 열심히, 감사히 먹으라고 채근했지만 오늘은 명분이 서지 않았다. 거의 맨밥을 먹는 수준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소윤아, 그런데 오늘은 사실 니가 맛있게 먹기 힘들긴 하다"
"왜여? 매운 거밖에 없으니까?"
"어"
소윤이는 최선을 다했다.
식사를 마치니 찾아온 이별의 시간.
"여보. 오늘은 뭐 약속 있어?"
"아니, 없지"
아내를 독박육아의 한가운데로 밀어 넣는 심정은 늘 편치 않다. (편치 않으면서 왜 함께하지 않느냐고 물으신다면, 유구무언)
"아빠. 가지 마. 안 갔으면 좋겠어"
소윤이도 괜히 한 번 투정을 부렸다. 시윤이만 아무 미련이 없다.
"아빠. 안농. 빼이"
아내와 아이들이 어디로 갈지, 누구를 만날지 묻지 않았다. 아내도 자기가 어디에 있게 될지 몰랐으니까.
모임을 마치고, 축구하다 쉬는 시간에 아내랑 연락이 됐다.
"어, 여보. 쉬는 시간이야?"
"어. 여보는 어디야?"
"나는 수윤이네 집"
"수윤이?"
"어"
"오랜만에 갔네"
"어. 갑자기"
"애들은 괜찮고?"
"어. 괜찮아"
"여보만 갔어?"
"아니, 남옥 언니도"
아내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구) 어린이집 등원 동지(?)의 집에 있었다. 축구하느라 정신 팔려서 진중한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아내가 뱉는 말의 온도와 분위기가 그럭저럭 괜찮았다. 한결 안심하고 공을 찼다. (설사 불편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한들, 아내가 대성통곡하며 울고불고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한, 축구하다 말고 돌아가는 일도 없겠지만. 그래도 괜찮은 걸 확인하면 한결 낫다)
축구를 마치고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아내에게 카톡이 와 있었다.
[우린 여기 옴]
소윤이와 시윤이의 사진도 함께 받았는데, 어딘지 몰랐다.
[어디야?]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는 어디야?"
"나 성주 차 타고 가는 길"
"우리 송스키친이야"
"혼자? 애들이랑?"
"어"
"대단하네. 갑자기 왜?"
"그냥 소윤이가 여기 피자 먹고 싶대서. 여보도 이 쪽으로 올래요?"
"그래. 알았어"
누가 봐도 축구하고 온 듯한 몰골을 하고, 땀냄새까지 폴폴 풍겨 가며 식당에 입장했다. 역시. 나의 우려가 무색하리만치, 사람들은 나에게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비록 복장은 축구인이지만, 바로 육아인의 자리에 위치했다.
피자가 먹고 싶다던 소윤이는 한 조각도 채 안 먹었다. 시윤이는 역시나 흰 밥을 가장 맛있게 먹었고, 소윤이는 어른들(특히 조부모님들) 기준으로는 '먹은 게 아닌' 범위 안에 들어갈 만큼 깨작거렸다. 시윤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열심히 먹고 있는데 한 남자가 애 둘을 데리고 들어와서 우리 뒤 쪽 자리에 앉았다. 엄마도 곧 오겠거니 했는데 엄마는 오지 않았다.
"이리 와. 앉아. 가만히 있어"
"아빠. 이거 내가 해볼게여"
"알았으니까, 좀 앉아. 그만"
6-7살 돼 보이는 첫째(딸)에게 하는 말이나 딸의 반응이 꼭 나랑 소윤이 같았다.
"아빠. 저분은 왜 혼자 오셨지? 엄마는 어디 가셨을까?"
"글쎄. 아빠도 모르지. 힘드시겠다. 그치?"
무슨 연유로 주말 저녁에 혼자 애들을 데리고 여기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힘겨워 보였다.
오늘도 애들은 아내가 데리고 들어가서 재웠다. 어쩌다 보니 같이 있을 때는 아내만 들어가서 재우게 됐다. 같이 들어간다고 더 빨리 자는 것도 아니니까. 내가 들어가서 재우려면 두 녀석을 설득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아내는 오늘은 꼭 나와야 한다며, 잠들어도 깨워달라고 했다. 한 30여분이 지나고 조용하길래 방문을 살짝 열었더니, 역시 모두 자고 있었다. 아내의 허벅지를 살짝 꼬집으며 흔들어 깨웠다.
"어. 애들 자?"
"어. 얼른 나와"
"알았어"
아내는 나오지 못했다. 또 깨울까 하다가 푹 자게 뒀다. 아내는 비염도 심하고, 천식 증세도 심하고, 컨디션이 별로 안 좋았다. 자정이 다 됐을 때쯤 방에서 아내의 소리가 들렸다. 깬 거 같은데 안 나오길래 카톡을 보냈다.
[여보. 깼으면 구포(구글 포토) 공유 좀]
[깬 거 어떻게 알았지?]
잠시 후 아내는 다소 허망한 기색과 함께 거실에 나왔다.
"아, 왜 이렇게 피곤하지? 새벽기도 후폭풍인가"
"그런가. 애들은 금방 잤지?"
"그랬겠지?"
아, 여보가 제일 먼저 잤겠구나. 아내가 꼭 해야 할 일이라는 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내 말로는 밀린 연락도 하고 살 거도 사고 그래야 한댔다. 이미 시간이 너무 늦어서 연락이 가능할까 싶었다. 요즘 계속 애들 재울 때 같이 잤으니, 분리되고 독립된 시간이 없었을 거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휴대폰 만지작 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시간이 필요했겠지. 그래도 몸이 안 좋다고 하니 얼른 들어가서 다시 자라고 재촉했다.
아내는 거실에 나와 한 시간 정도 앉아 있다가 다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