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을 한다는 건

19.04.23(화)

by 어깨아빠

어제 일찍 잔 탓인지 소윤이랑 시윤이 모두 엄청 일찍 일어났다. 내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먼저 일어났다.


"소윤아, 시윤아 갈 게. 처치홈스쿨 잘 다녀오고"

"아빠. 아빠. 뻐? 뻐? (아빠, 버스 타고 가요?)"

"어. 시윤아, 아빠 버스 타고 가"

"아"


아내에게 9시가 조금 넘어서 전화가 왔다.


"여보. 잘 갔어?"

"응, 잘 왔지. 여보는?"

"난 이제 나가려고"

"애들은 괜찮았어?"

"어. 시윤이가 나가기 직전에 똥 싸서 좀 힘들긴 했지만"

"아, 힘들었겠네"

"아무튼 이따 전화할 게. 오늘도 승리하길"

"그래"


처치홈스쿨을 하며 가장 힘든 점이라면, 아이와 내내 붙어 있어야 한다는 거다. 단지 쉴 틈이 없는 차원이 아니라, 내 아이의 민낯을 여과 없이 마주해야 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물론 난 아니고, 아내의 몫이지만) 날 것의 그 모습을 마주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또한 생각보다 어렵다. 거기에 아무리 난 아니라고 얘기해도, 아직 남아 있는 악한 비교 본능까지 발동된다.


지난주, 아내와 이 모든 것이 우리의 현실이며 이걸 인정하고 고쳐 나가자고. 또 소윤이의 어떤 모습이든 그게 소윤이 그 자체니, 담담하게 받아들이자고 건설적인 얘기를 나눴다. 그렇다 하더라도 막상 현실을 마주하면 흔들린다. 흔들리다 못해 무너지기도 일쑤고.


아내가 말한 '승리'라는 건 그런 의미다. 진심으로 아내와 아이들이 승리하는 하루를 보내길 기도했다.


보통 처치홈스쿨 끝나면 연락이 오는데 오늘은 없길래, 또 어디 갔나 싶었다. 퇴근 시간이 거의 다 됐을 때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여보 나 파주야]

[어디?]

[벽산이야]

[그래. 시간 맞춰서 와]


아내는 처갓댁에 있었고, 퇴근 시간에 맞춰 사무실에 왔다. 같이 일하는 형의 딸(소윤이랑 동갑)과 아들(시윤이보다 한 살 어림)도 잠깐 사무실에 와서 같이 놀았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소윤이가 말했다.


"엄마. 오늘 저녁은 어디 가서 먹을 거에여?"

"어디 가서 먹긴. 집에 가서 먹어야지"

"밖에서 먹고 싶어여"

"어, 아니야. 오늘은 집에서 먹을 거야"

"왜여?"

"뭘 왜야. 원래 집에서 먹는 거니까"

"그래도 밖에서 먹고 싶어여"


그 이후로 소윤이는 녹음기처럼 "엄마, 밖에서 먹고 싶어여" 를 반복했다.


"소윤아. 그만 얘기 해. 엄마가 설명해 주셨는데도 계속 그렇게 듣기 싫은 소리로 징징대면 어떻게 해"


내가 한마디 했더니 울음을 터뜨렸다.(이 시간에는 소윤이의 피로도가 가장 높을 때라 정상적인 반응이 안 나올 때가 많다)


"아빠"

"어"

"나는 엄마한테 짜증 안 내고 예쁘게 말했는데, 듣기 싫다고 해서 속상했어여"

"아, 그랬어? 아니, 아무리 친절하게 얘기해도 같은 얘기를 계속 반복하면 그건 상대방이 듣기 힘들잖아. 그래서 그런 거야. 이제 서로 알았으니까 그만 울어"


소윤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빠, 밖에서 먹고 싶어여"

"뭐 먹고 싶은데?"

"소윤이네(집 앞 분식집)서 주먹밥이랑 만두 먹을래여"

"소윤아, 너 만두 잘 안 먹잖아. 아빠랑 가서 만두 먹으면 항상 잘 안 먹었어"

"오늘은 잘 먹을 거에여"

"아니야, 거의 잘 먹은 적이 없었어. 소윤이는 진짜 먹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왜 굳이 밖에서 먹겠다고 해?"

"그냥 밖에서 먹는 게 좋아여"

"오늘은 그냥 집에서 먹자"


아내가 조수석에서 나에게 속삭였다.


"여보. 집에 먹을 게 없는데 어떻게 하지?"

"계란밥 해주지 뭐"

"계란도 없어"

"아, 그래? 그럼 그냥 소윤이네(집 앞 분식집) 가던가"


그럼 진작에 얘기하던가.


"소윤아. 그럼 우리 소윤이네 가서 밥 먹고 갈까?"

"왜여?"

"아, 소윤이가 끝까지 짜증 안 내고 예쁘게 말하기도 했고"

"아까는 안 된다고 했는데 왜 갑자기 밖에서 먹어여?"

"어, 사실 집에서 먹으려고 생각하니까 먹을 게 마땅히 없네"

"그러자여"


만두, 김밥, 잔치국수를 시켰다. 시윤이는 초장부터 잘 안 먹고 장난만 쳤다. 소윤이는 보란 듯이 만두를 집중 공략했다. 얼핏 보면 시윤이가 굉장히 먹성 좋게 잘 먹는 것 같지만 은근히 내실 있는 건 소윤이다. 먹여주면 끝까지 앉아서 다 먹는다.


집에 돌아왔더니 급격히 피로가 쏟아졌다. 아내도 몹시 피곤해했는데 한 번 누웠더니 도무지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거실 바닥에 누워 선잠을 잤다. 귓가에 소윤이, 시윤이를 씻기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시윤이 옷 좀 입혀줘"

"어. 어. 알았어"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애들 옷을 입혔다. 화장실에서 나온 아내도 머리만 대면 잘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방에 들어갔다.


"소윤아, 시윤아 잘 자. 아빠는 운동 갔다 올 게"

"아빠. 빠이빠이"

"아빠. 빼"


누운 아내의 얼굴은 말하고 있었다.


"난 오늘도 글렀어"


예상대로 운동하고 집에 왔더니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나도 너무 피곤해서 일찍 정리하고 자려고 마음먹었다.


"여보. 왜 여기서 자고 있어"


아내가 흔들어 깨우길래 정신을 차려 보니 소파였다. 일기를 쓰고 방에 들어가려고 정리하고 있었는데, 왜 소파에 누워 잠든 건지 모르겠다. 아마 습관적으로 잠깐 앉아서 휴대폰 보다가 잠든 게 아닐까 싶다. 새벽 2시였다.


"아, 야식으로 떡볶이도 먹으려고 했는데"


아까 한살림에서 산 즉석조리 떡볶이를 말하는 것 같았다. 새벽 2시에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싶었다. 그러고 보니 아내랑 밤 시간을 함께 보낸 게 꽤 오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