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의 행복

19.08.13(화)

by 어깨아빠

잘 지내고 있냐는 나의 카톡에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평화로워 보이는 사진을 한 장 보냈다. 소윤이는 자기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고 시윤이도 조그마한 상을 펼쳐놓고 선 긋기(라고 본인은 생각하지만 실상은 낙서인)를 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애들은 괜찮았어?]

[쉽지 않았어. 시윤이 계속 손 빨고 울고. 예배 시간마다 인내를 배웁니다]

[여보 아침은 먹었어?]

[미숫가루랑 오이. 의도치 않게 다이어트 식단]


역시 사진은 실상을 말하지 않는다. 일기로 진실을 밝히리라.


아내는 나의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아이들을 데리고 스타필드에 갔다. 날이 푹푹 찌는 데다가 버스를 타야 했지만 아이들과 어디라도 나가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외출을 감행했다. 저녁에는 친구를 만나기로 해서 내가 애들을 봐야 했는데 그냥 스타필드에서 애들을 넘겨받고 저녁까지 먹이고 들어갈까 싶었다.


[그냥 스타필드에서 밥 먹이고 들어갈까?]

[버스 타고 가려고?]

[그래야지]


차는 아내에게 줘야 하니까 집에 오려면 버스를 타야 했다. 아내도 했는데 난들 못할 게 뭐 있겠나.(싶지만 아내니까 할 수 있는 일이 꽤 많다)


"여보. 이제 가"

"알았어. 밥은 어디서 먹게?"

"글쎄"


"소윤아, 시윤아 엄마한테 인사해"

"엄마. 해나 이모 잘 만나고 와여"

"암마. 우무(이모) 만나여엉"


아내가 떠나고 소윤이에게 물었다.


"소윤아. 우리 뭐 먹을까?"

"음, 몰라여"

"먹고 싶은 거 없어?"

"돈까스?"

"맨날 돈까스는. 주먹밥 먹을까?"


돈까스나 주먹밥이나. 소윤이와 시윤이가 모두 피곤한 상태였기 때문에 가성비를 생각하면 주먹밥이 더 나은 선택이긴 했다. 요즘 지나칠 정도로 자주 먹은 게 문제였지만.


"아빠. 오늘도 주먹밥 먹네여?"

"그러게. 이게 제일 만만해서"


"아빠아. 아까(지난 번 언젠가)두 이거 먹떠여엉"

"맞아. 시윤아. 오늘도 맛있게 먹자?"


오늘도 잘 먹었다. 숟가락과 포크를 사용해 직접 떠서 먹는 과정이 없고 아빠가 만들어 놓은 걸 쏙쏙 집어먹기만 하면 되니까 좋나 보다. 집에 가서 먹였으면 영양학적으로 조금 더 낫고 안전한 재료들로 구성된 반찬이 있었겠지만, 너무 피곤해서 오히려 덜먹었을지도 모른다고 자기 합리화를 해 본다.


밥을 다 먹고 옆에 있는 빵집에서 소윤이는 옥수수빵, 시윤이는 단팥빵, 나는 고로케를 사서 하나씩 먹었다. 우유는 하나만 사서 소윤이랑 시윤이만 나눠 먹였다. 엘리베이터 앞에 앉아서.


"아빠. 그런데 우리는 집에 어떻게 가여?"

"우리? 버스 타고"

"엄마가 차 가지고 갔어여?"

"응. 엄마가 가지고 갔어. 아빠랑 버스 타고 가면 돼"


"아빠. 뻐찌(버스) 타구?"

"응. 버스 타고"

"으나(누나)두 가치?"

"그럼. 누나도 같이 가야지"


엄마가 없으니 유독 애교도 많아지고 나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특히 시윤이가 그랬다. 먹을 걸 다 먹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안에 있을 때는 엄청 쾌적하고 시원했는데 밖에 나오니 덥긴 엄청 더웠다.


"우와. 소윤아, 시윤아 엄청 덥다"

"아빠. 버스 바로 와여?"

"글쎄. 한 번 볼까? 윽. 소윤아. 20분 기다려야 된대"

"20분이면 긴 거에여?"

"엄청 긴 건 아니야. 아빠랑 시윤이랑 같이 있으니까 금방 갈 거야"


한 5분 지났을까, 소윤이가 말했다.


"아빠. 쉬 마려워여"

"아, 그래? 그럼 들어갔다 오자"


엄청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워낙 덥고 습한 날씨여서 조금이라도 걸으면 땀이 흘렀다. 소윤이랑 시윤이가 두 손 꼭 잡고 꽁냥거리며 걸어 다니는 걸 보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참아냈다. 화장실에 가서 볼 일을 마치고 나와서 걸어가는데 눈앞에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막 정류장에 도착하는 게 보였다.


"어? 소윤아. 어떻게 해. 버스 도착한다. 아빠랑 뛰자"

"아빠. 얼른 뛰어여. 얼른"


소윤이는 나보다 더 화들짝 놀라서는 우다다다 뛰어갔다. 나도 시윤이를 휙 안아서 달려갔다. 조금 뛰다 보니 우리 말고도 타는 손님이 좀 있어서 우리도 충분히 탈 수 있었다. 소윤이는 마음이 급했는지 나와 시윤이를 향해 소리쳤다.


"아빠. 빨리여. 얼른 뛰어여"


기사님에게도 소리쳤다.


"잠깐만여"


소윤이의 다급함과 걱정스러움은 표정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소윤아. 이제 괜찮아. 우리도 탈 수 있겠다"

"아빠. 그래도여. 혹시 모르잖아여"


무사히 버스에 타서 소윤이와 시윤이를 앞뒤로 나란히 앉혔다.


"아빠. 이거 뭐(무슨) 뻐찌에여?"

"이거? 48번 버스"


"아빠. 아니에여. 공사팔이에여"

"아, 그래?"


"시윤아. 누나가 공사팔 버스래"

"꽁짜팔? 아빠. 이거 아까 타떠여엉"

"아 그랬어? 엄마랑 탔어?"

"네에"


소윤이와 시윤이는 서 있는 날 올려보며 내릴 때까지 쉬지 않고 얘기를 했다. 조금씩 차가 기울거나 흔들릴 때마다 내 허벅다리를 하나씩 붙잡으면서. 존재만으로도 기쁨이 되고 의지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생명체들이다.


"소윤아, 시윤아. 집에 도착하면 바로 씻고 자는 거다. 알았지?"

"아빠. 샤워할 거에여?"

"샤워? 음, 글쎄"


잠깐 고민했지만 그렇게 땀을 많이 흘렸는데 그냥 재우기가 미안했다.


"그래. 오늘은 샤워해야겠다. 너네 땀 많이 흘렸잖아"


집에 도착해서 샤워시키고 재울 때까지가 고난의 여정일 때도 많은데 오늘은 아주 평탄했다. 고작 두 시간 정도의 짧은, 엄마 없는 시간이었지만 소진된 체력만큼이나 얻은 것도 많았다. 온전히 나를 향해 지어주는 웃음, 꼭 잡은 손을 통해 전해지는 나를 향한 신뢰,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건네주는 스킨십.


유난히도 소윤이와 시윤이의 웃음이 뭉클했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