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14(수)
"여보. 나 다음 주에 축구해도 되나? 목요일에 순창 가는데"
"된다"
"나중에 흉보는 거 아니야?"
"평소에 잘 해서 괜찮음"
지난주에 이미 오늘의 축구를 허락받았다. 내일 새벽부터 순창에 가야 하니 뭔가 재승인이 필요해 보였다. 태평양과 같은 마음을 가진 아내는 나를 흔쾌히 놓아줬다.
아내는 이 찜질방 같은 날씨에 또 밖으로 나갔다. 점심때쯤 나가서 식당에서 밥도 먹고 한살림에도 갔다가 카페도 가고, 제주 특산품 전문 가게도 들르고. 너무 더워서 차마 놀이터에는 못 가고 메뚜기 생활을 했다.
[힘들어도 둘일 때 열심히 돌아다녀야지]
두어 시간 정도 밖에 있었는데 나갈 때 찍은 아이들 사진과 들어올 때 찍은 사진이 확연히 달랐다. 아이들의 얼굴에 더위와 지침이 잔뜩 묻어 있었다. 아내는 시윤이 낮잠을 걸렀다. 거기에 집에 돌아와서는 목욕까지. 빠른 취침 및 퇴근을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하루 종일 소윤이, 시윤이 생각이 많이 났다. 얼른 가서 따뜻하게 놀아주고 싶었다.(축구하러 갈 사람이 할 말은 아닌가) 아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매우 짧지만 최대한 굵게 놀았다.
아내는 아침에 애들 구워주고 남은 제주산 돼지를 나 먹으라며 구워줬다.
"이건 여보 혼자 먹으면 돼"
"나 혼자? 애들이 먹고 싶어 하지 않을까?"
"애들은 아침에 먹어서 괜찮아"
"아빠. 나는 고기 안 먹고 싶어여. 아빠 먹어여"
"그래?"
"아빠. 나두 안 먹거 시퍼여엉"
"그래, 알았어"
누가 보면 오해할만한 식탁 차림이었다. 아빠는 혼자 고기 먹고, 애들은 생선 먹고. 엄마는 라면 먹고. 시윤이는 너무 졸려서 수월치 않았지만 적당히 봐주면서(아무리 원칙과 기준이 있어도 날마다 대쪽 같으면 아내와 내가 피곤하다) 넘어갔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 이제 축구하러 갈게"
자리에 누운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인사를 건네고 축구를 하러 나갔다. 습관적으로 집(주로 거실과 주방) 상황을 살폈다. 매우 어지러운 듯 보였지만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차곡차곡 누적된 난장판이 아닌 이제 막 꿈틀거리는 난잡함이랄까. [틈틈이, 부지런히 캠페인]을 잘 실천하기 위해 재활용 쓰레기도 가지고 나갔다. 역시, 조금씩 나눠 버리니까 크게 힘들지도 않고 좋구먼.
원래 10시 30분이면 축구가 끝나는데 오늘따라 11시까지 찼다. 내일도 새벽 5시 30분에 출발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슬쩍 부담이 됐다.
'아, 오늘은 좀 일찍 올 걸 그랬나'
문을 열고 집을 들어섰는데 나가기 전에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아내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아내가 아예 못 나온 건지, 나왔다가 다시 들어간 건지) 찬찬히 거실과 주방을 살폈는데 중요한 단서가 발견됐다. [누가바 껍질]. 소파 앞에 덩그러니 놓인 걸로 봐서 아내는 나왔던 게 틀림없었다. 조심스럽게 안 방 문을 열어봤더니 아내와 시윤이가 눈을 뜨고 있었다.
"깼어"
"그래, 알았어"
다시 문을 닫고 나와서 아내를 기다렸지만 소식이 없었다. 시간상 잠든 게 분명했다. 마음이 분주하면서 무거워졌다. 내일 다섯 시 반에 출발하려면 당연히 짐도 미리 싸 놔야 하는데 아무것도 진행된 게 없었다. 일단 집부터 치웠다. 어느 정도 봐줄 만한 상태만 만들어 놓고 밀린 일기를 썼다. 그다음 짐을 싸려고 했는데 막막했다. 내 짐 말고는 뭘 어떻게 싸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애들 옷은 뭘 챙겨야 하며 아내 옷은 뭘 챙겨야 하고 추가로 필요한 건 뭔지.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아, 망했다'
낙심하여 소파에 앉아 있는데 아내가 문을 열고 나왔다.
"하아"
아내는 한숨을 지으며 나왔지만 나에게는 구세주였다. 아내가 옷을 챙겨주면 내가 받아서 소분 포장(?)을 해서 캐리어에 넣었다. 역시 난 이게 편하다.
"헐. 여보 2시 30분이다"
"여보. 내일 일어날 수 있겠어?"
"일어나야지"
내일 다섯 시에 일어나기로 했으니까 내게 남은 시간은 2시간 30분이었다. 오늘 같은 날은 축구를 하지 말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같은 상황이 또 생기면 역시나 축구를 하러 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