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에서의 하룻밤

19.08.15(목)

by 어깨아빠

5시에 눈을 뜨는데 성공하긴 했다. 소윤이가 또랑또랑한 눈으로 날 보며 웃고 있어서 충격받았다.


"소윤이는 몇 시에 일어난 거야?"

"한 네 시쯤 일어났나 봐"

"진짜? 왜?"

"몰라. 오줌 마렵다고"


시윤이도 카시트에 앉히니 잠에서 깼다. 그리하여 5시 30분에 온 가족이 눈을 뜨고 순창을 향해 출발했다. 학창시절에 공부 좀 한다는 고수들이 일어나자마자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걸 자신의 비기로 밝히곤 했다. 그때는 그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는데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운전을 해보니 그 심정을 좀 알겠다. 일어나는 게 괴로워서 그렇지 일단 운전대를 잡으면 그 어느 때보다 멀쩡한 정신으로 달리게 된다.


오늘은 아내가 꽤 오랫동안(거의 절반 지점까지) 말동무를 해줘서 졸리지도 않았고 심심하지도 않았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조금 달리다 잠들었는데 생각보다 금방 깼다. 오늘 하루가 걱정이었다. 나중에는 어떨지 몰라도 가는 동안에는 즐거웠다.


첫 휴게소(유일한 휴식)에서 아침을 먹었다. 아내는 별로 생각이 없다길래 갈비탕 하나와 충무김밥 하나를 시켰다. (사실 되는 메뉴가 별로 없었다) 이름은 충무김밥이었지만 매운 무말랭이와 오징어볶음은 먹지 못하니, 결국 그저 김에 맨 밥이었는데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잘 먹어줬다. 갈비탕의 살코기는 아이들에게 잘라줬다.


"아빠. 이거 너무 질겨여"

"아냐. 계속 씹다 보면 괜찮아"


"아빠아. 꺼찌(껍질). 찌겨여엉"

"시윤아. 계속 씹으면 먹을 수 있어. 꼭꼭 씹어 봐"


애들이 뱉어낸 걸 먹어봤는데 진짜 질기긴 했다.


"아, 이건 질기긴 하네. 먹지 마. 아빠가 살만 발라줄게"


오늘의 휴게소 간식은 호두과자였다. 우유 하나랑 호두과자 한 봉지를 사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나눠 먹였다. 소윤이는 이제 목적지가 좀 멀다는 얘기만 하면 물어본다.


"아빠. 휴게소도 들릴 거에여?"


실제로는 한 6시간 걸려서 도착했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은 느낌이었다. 거리가 짧아서 그런가.


우리가 하루 동안 묵을 숙소는 완전히 산속에 묻힌 곳이었다. 사방이 높고 푸른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적당히 자그마한 잔디밭도 있었고 토끼와 닭이 함께 사는 우리도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이런 시골스러운 환경을 많이 접하지 않은 것에 비해 금방 적응하고 흥미를 붙이는 편이다. (얘네 연령대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소윤이와 시윤이도 바로 이곳저곳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속속 참석자들이 도착했고 아이들의 수도 늘어났다. 소윤이는 자기보다 확연히 언니거나 오빠인 사람은 제외하고, 비슷해 보이면 첫인사를 주로 이렇게 건넸다.


"몇 살이야?"


왜 그렇게 나이를 물어보는지. 다섯 살 계의 꼰대인가. 아무튼 잘 놀았다. 소윤이는 나이를 물어보며 말을 걸긴 해도 만인과 친밀한 유형은 아니다. 같이 처치홈스쿨을 하는 친구와 주로 함께 다녔다. 시윤이는 누나들 쫓아다니다가 뒤처지면 혼자 놀기도 하고.


오후에 부모들이 따로 모여 회의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고추장과 떡볶이 만들기 체험이 있었다. 나이가 많은(주로 중, 고등학생) 자녀들이 조장이 되어서 5-6명의 꼬맹이(시윤이가 거의 막내급)들을 통솔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고1 언니(누나)가 조장인 조에 편성되었다.


"소윤아. 이 언니가 조장이야. 이 언니가 하는 말 잘 듣고 따라야 돼. 알았지?"

"네"


소윤이는 순순히 언니, 오빠들을 따라나섰다. 시윤이는 안 가고 엄마, 아빠랑 있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는데 행동이 이상했다. 엄마, 아빠랑 있겠다던 녀석이 멀찌감치 떨어져서는 우리를 그윽하게 바라봤다.


'똥이구나'


"시윤아. 똥 쌌어?"

"아니여엉"

"이리 와 봐"

"시더여엉"

"에이. 또. 얼른 와 봐. 아빠가 오라고 하면 바로 네하고 와야지요?"


쭈뼛쭈뼛 걸어오는 시윤이에게서 익숙한 향이 풍겼다. 굳이 기저귀를 확인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깨끗하게 닦아주고 나서 시윤이에게 물었다.


"시윤아.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아니면 누나랑 같이 떡볶이 만들래?"

"으나 어디떠여엉?"

"누나는 저기 밖에 떡볶이 만들러 갔지"

"으나한테 갈래여엉"

"그래. 아빠가 바래다줄 게"


소윤이와 시윤이는 두 시간을 넘게 생전 처음 보는 언니, 오빠(누나, 형)들과 떡볶이를 만들었다. 지난 주일 예배때도 그렇고, 이제 시윤이도 엄마, 아빠 품을 떠나는 게 괜찮나 보다.


"소윤아. 재밌었어?"

"네. 고추장도 만들고 떡볶이도 만들어서 먹었어여"

"매운 떡볶이?"

"고추장을 넣긴 했는데 조금밖에 안 매웠어여"

"시윤이는?"

"씻어서 먹었어여"


"시윤이도 재밌었어?"

"네에. 떡 만들어떠여엉"


그러고 나서 바로 저녁을 먹었는데 시윤이는 너무 졸렸는지 통 먹지 않고 칭얼거렸다. 앞에 앉은 다른 분과 이야기를 하느라 시윤이에게 잠시 신경을 안 쓰는 사이에 시윤이는 식탁에 엎드려 잠들었다. 그야말로 피곤에 지쳐 쓰러지듯 볼을 식탁에 툭 대고. 서둘러 식사를 마친 뒤 시윤이를 안았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숙소에 시윤이를 눕혀놓고 재우기로 했다. 나도 옆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아내에게 다음 일정이 시작될 시간쯤에 깨워달라고 요청을 했고, 아내는 그렇게 했지만 난 일어나지 못했다. 그다음 일정이 끝날 때쯤 다시 시윤이를 안고 합류했다. 시윤이가 기력을 찾고 나니 소윤이가 피로에 시달렸다. 마지막 일정이 기도회라 소윤이와 시윤이도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다. 그래도 소윤이가 전혀 방해하지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기특했다.


모든 일정을 끝내고 숙소에 올라가 자리를 펴고 잘 준비를 했다. 샤워 시설이 완벽하지 않고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재울 수는 없었다. 하루 종일 하도 많이 뛰고 구르고 그랬다.


"소윤아. 물이 차가워. 따뜻한 물이 안 나온대. 주무시는 분들도 계시니까 소리 지르면 안 돼. 알았지?"

"네"

"자. 뿌린다. 소리 지르면 안 돼"

"(촤아악) 헙. 아빠압. 헙. 너무 차가워협"

"차갑지? 아빠가 얼른 씻겨줄게"

"아빠. 머리도 감아여?"

"아니. 머리는 안 감아. 자 이제 다시 간다"

"(촤아악) 헙. 흐. 헙. 흐"


그래도 소윤이는 좀 즐거워했다. 왜 원래 사람이 찬물을 맞으면 묘하게 기분이 좋고 웃음이 나오는 그런 게 있지 않나. 소윤이도 비슷했다.


"시윤아. 물이 차가워. 그래도 울거나 소리지르면 안 돼. 알았지?"

"아빠. 왜 차가여엉?(차가워여?)"

"아. 여기 숙소에 따뜻한 물이 없대"

"왜. 없더여엉?"

"글쎄. 다 썼나. 아무튼 울거나 소리 지르면 안 돼. 알았지?"


시윤이는 제대로 물을 뿌리기도 전에, 그저 튀는 물방울만으로도 기겁했다.


"아빠아. 추어여엉"

"아직 안 뿌렸어. 자. 뿌린다"

"(촤아악) 으아아. 아빠아아아. 시더여어엉"


시윤이는 너무 질겁을 하길래 계속 진행할 수 없었다. 손에 물 묻혀서 여기저기 닦아줬다. 그것도 차갑다고 헉헉거렸다.


"시윤이도 다 됐다. 끝"

"아빠. 끝나떠여엉?"


옷 입히는 건 아내에게 넘기고 나도 바로 씻었다. 애들 씻길 때는 그렇게 괜찮다고 되뇌었는데 막상 물을 뿌리니 나도 숨이 턱 막히긴 했다. 결코 만만한 차가움은 아니었다.


소윤이는 누워서 말을 하더니 어느 순간 잠들어 버렸다. 시윤이는 아내도 잠들고, 소윤이도 잠들고, 나도 잠든 뒤에 잠든 것 같다. 내 기억에 시윤이 자는 모습이 없는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