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16(금)
순창이라고 예외는 없구나. 7시도 안 되어서 둘 다 깼다. 그래도 집이랑 다른 게 있다면 아침부터 엄마, 아빠를 두고 밖으로 나간다는 것.
"소윤아. 시윤이 항상 잘 챙겨야 돼. 알았지? 항상 데리고 다니고 눈에 안 보이면 찾고"
"네, 아빠"
그러면서 신발을 신으며 큰 목소리로 외친다.
"강시유운. 나가자아. 얼르은 와아"
그러고는 자기 혼자 쌩 나가버리고. 그래, 세뇌하다 보면 언젠가는 되겠지.
오전에도 부모들 모임이 있었다. 자녀들은 밖에서 따로 놀았는데 어제 조장 역할을 맡았던 학생 자녀들이 어린아이들의 지킴이가 되었다. 덕분에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애들 때문에 힘든 건 별로 없었다. 오히려 애들로부터 자유로워진 느낌이었다. 한 번씩 살펴보면 소윤이, 시윤이 모두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열심히 놀고 있었다. 다만, 시윤이는 넘어져서, 뭔가가 무서워서 한 번씩 울며 아내와 나를 찾아 들어왔다.
"아빠아. 시윤이 거기 있어여?"
소윤이는 정신없이 놀다 불현듯 생각이 났는지 뜬금없이 시윤이가 안에 있냐며 묻기도 했다. 그래, 아예 효과가 없지는 않구나.
시윤이는 피로가 채 안 풀렸는지 오늘도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아내에게 안기자마자 잠들었다. 점심 먹고 나서는 특별한 일정이 없어서 계속 쉬었다. 물론 시윤이를 안고. 마지막 단체 사진 찍을 때쯤 깼다.
공식 일정은 단체 사진을 찍는 것으로 끝이었다. 희망하는 가정에 한하여 계곡 물놀이를 할 수 있었다. (오기 전에 이야기하기도 했고) 소식을 전해 들은 소윤이가 와서 내게 물었다.
"아빠. 우리도 물놀이하고 가여?"
"하고 싶어?"
"네"
"그래. 하고 가자"
원래 하고 가려고 생각했으니까 흔쾌히 그러자고 했는데, 그러고 나니까 피로가 몰려왔다.
"여보. 그냥 갈까?"
"그럴까? 여보가 결정해"
다시 소윤이를 불렀다.
"소윤아. 우리 오늘은 그냥 가면 안 될까?"
"아이. 싫어여어"
"아빠가 운전을 많이 해야 되잖아. 그런데 너무 피곤하면 위험해"
"아이. 하고 갈래여어"
"오늘은 그냥 가고 우리 집에 가서 나중에 물놀이하자. 바닥 분수를 가도 되고"
"싫어여어"
"정말 싫어?"
"네. 하고 갈래여"
"그래. 그러자 그럼"
낙장불입이지 뭐. 그러고 나서 소윤이가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물놀이하는 동안 아빠는 쉬면 되잖아여"
이야. 이렇게 사려 깊을 수가. 그러게, 아빠는 그때 푹 쉬면 되겠네. 그 생각을 못했네. 아이고오, 고마워라아.
차로 3분 정도 떨어진 곳의 계곡으로 갔다. 엄청 넓고 깊은 계곡은 아니어서 굳이 몸을 적시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일 뿐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계곡은 처음이라 그런지 무지 불안해했다.
"아빠. 넘어질 거 같아여"
"아빠. 빠질 거 같아여"
"아빠아. 잡아여엉"
"아빠아. 좀(손). 좀"
소윤이는 계속 내 바지춤을 붙잡고, 시윤이는 안아달라고 그러고. 이러느니 물에 들어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털푸덕 주저앉아서 무릎 위에 시윤이를 앉히고 소윤이도 근처에서 놀게 했다. 몸과 옷이 젖었지만 물에 젖지 않았으면 땀에라도 젖었을 터, 도긴개긴이었다.
자꾸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다며 내 손을 이끄는 걸 주저 앉혔다.
"우리 그냥 여기서 놀자.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결국 이번에도 아이들의 끊임없는 요구에 항복했다. 그래도 이번에 배운 게 있다. 우리 애들하고 계곡에 놀러 가는 건 꽤 한참 보류해야겠다는 것. 시간이 허락된다면 올여름 마지막 물놀이를 북한산 계곡 같은 데로 가볼까 했는데, 오늘 그 뜻을 완전히 접었다.
물놀이를 마치고 수건으로 물기만 닦고 옷을 갈아입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운전을 시작했다. 소윤이는 출발하자마자, 시윤이는 조금 있다가 잠들었다. 한 시간 정도는 아내가 말 상대를 해줬는데 그 뒤에는 졸리다며 눈을 감았다. 참 신기하게도 아내가 눈을 감자마자 나도 졸려졌다. 나 홀로 졸음과 사투를 벌였지만 역부족이라고 생각해서 휴게소에 들어갈까 생각하는데 아내가 깼다.
"여보. 안 졸리지?"
"아니. 졸려"
"진짜? 그럼 잠깐 쉬었다 가"
"그럴까? 그런데 얘네가 너무 잘 자서"
"여보만 잠깐 내려서 커피라도 사 오면 되지"
"그래야겠다 그럼"
휴게소 주차장에 차를 대는 순간 소윤이가 눈을 떴다. 자기 잠들었다고 휴게소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아마 소윤이는 여기가 그 휴게소라고 생각했나 보다.
"아빠. 나도 같이 갈래여"
"아니야. 여기서는 아빠만 잠깐 내릴 거야. 소윤이는 좀 더 가다가 다른 휴게소에서 내리자"
그렇게 말하고 화장실에 가서 일도 보고, 커피도 사고, 건빵도 사서 차로 돌아왔다. 소윤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자기도 따라가고 싶었다면서 이미 한차례 크게 운 뒤였다. 시윤이도 눈을 뜨고 있었다.
'그냥 여기서 쉬고 저녁도 먹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아래쪽이었다. 최대한 우리 집 쪽으로 올라와서 쉬고 싶었다. 남은 거리가 100km 안쪽으로 들어왔을 때 휴게소에 들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꼬마 김밥을 시켜줬는데 둘 다 점심이 부실했는지 엄청 잘 먹었다.
내가 먹는 건빵(얼음 대용으로 졸음을 쫓기 위해 아그작 아그작 씹는 용도다)을 탐내던 아이들에게 건빵도 주고 별사탕도 줬다. 역시나 시윤이는 이번에도 자기 몫을 번개처럼 먹어치우더니 또 누나의 것들을 탐하기 시작했다.
"아빠. 내가 건빵도 주고 별사탕도 줬어여"
"왜. 그건 공평하게 나눠 준거라 소윤이가 꼭 양보 안 해도 되는 거야"
"그냥 제가 나눠주고 싶어서 그런 건데여?"
"진짜? 너무 기특하네. 그럼 좋고"
소윤이의 여러 모습이 기대가 되고 궁금하지만 누나로서는 어떤 사람이 될지 매우 궁금하다.
평소 같았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로 재웠을 시간에 도착했지만 오늘도 씻겨야만 했다. 계곡에서 물놀이하고 못 씻었으니까. 그 밤에 소윤이 머리도 감기고.
"여보는 안 씻어?"
"씻기는 해야지"
"나오려고?"
"어. 얘네 금방 잘 거 같아서"
내가 보기에는 아내가 더 금방 잘 거 같았다. 애들을 재우러 들어간 아내는 소식이 없었다. 문을 살짝 열어보니 역시나 자고 있었다.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얘네 자?"
"자지. 여보도 잤어?"
"나?"
"응. 거의 30분?"
아내는 씻고 나서 소파에 좀 앉아 있다가 먼저 자러 들어갔다.
"여보. 내일은 여보가 늦잠 자"
장거리 운전자에게 아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여보, 고마워. 덕분에 마음 편하게 딴짓(휴대폰, 인터넷 등) 하다가 엄청 늦게 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