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의 즐거움

by 어깨아빠

한때는 나도 퇴근길에 예고 없이 장난감을 들고 오는 아빠였다. 생일 같은 1급 기념일에는 꽤 크고 값이 나가는 걸 사 오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장난감을 산 게 꽤 오래되었다. 깜짝 놀라며 기뻐할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르면 아주 가끔씩 고민이 되지만, 잘 참고 있다.


아내가 아이들을 재우러 방에 들어가고 홀로 소파에 앉으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전쟁터와 같은 거실의 풍경이다. 도둑맞은 집, 포탄 맞은 집, 방금 이사 온 집. 어느 표현도 어색하지 않을 난잡함이 서려 있다. 어느 날, 소파에 가만히 앉아 살펴보니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장난감이었다. 아내나 나는 어질러 봐야 스스로에게 돌아온다는 걸 알기 때문에 굳이 어지르지 않는다. 아이들은 아니다. 도대체가 나왔다 하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장난감들 때문에 육아 퇴근 후 특별 근무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나마도 아무런 실속 없이, 아이들 손에 체류한 시간이 5분도 채 안 되는 장난감을 볼 때면 더 부아가 치밀었다.


‘저거 저거 싹 다 갖다 버려야지’


늘 마음은 먹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아내랑 죽이 맞아서 갑자기 시작했다.


“소윤아, 시윤아. 우리 오늘은 장난감하고 인형 버릴 거야”
“아빠. 전부 다여?”
“음, 완전히 다는 아니고. 소윤이랑 시윤이가 정말 좋아하는 것 몇 개만 빼고”


일단 부피가 큰 것들부터 처리했다. 카트, 유모차, 피아노, 주방놀이. 아이들은 의외로 담담했다. 울고 불고 매달리며 난리 치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는데 순순히 보내줬다.


“자, 피아노한테 인사해. 피아노야 잘 가. 안녕”
“피아노야 잘 가. 안녀엉”
“삐아노야 달 가. 안넝”


순순히 진행되는 듯하던 장난감과의 이별은 슬슬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아빠. 그건 안 돼여. 왜냐면 그건…”
“아빠. 그것도 안 돼여. 그건…”
“아빠 그건 왜 안 되냐면여…”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단호하게 얘기했다.


“아니야. 이거 너희 잘 가지고 놀지도 않잖아. 그럼 버려도 돼. 지금 보이니까 그렇지 나중에는 생
각도 안 나고 아무렇지도 않을 걸”


소윤이가 정말 딸처럼 생각하는 아기 인형을 비롯한 몇 가지 장난감, 시윤이가 가장 아끼고 잘 가지고 노는 자동차 몇 개만 남기고 싹 다 버렸다. 내친김에 여기저기서 받아놓고 읽지도 않는 아이들 책도 싹 버렸다. 남은 장난감들은 종류별로 통에 넣어서 아이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정
리했다.


“소윤아, 시윤아. 앞으로는 하고 싶은 장난감 있으면 하나씩 얘기해. 그럼 아빠랑 엄마가 꺼내 줄게. 그리고 다른 거 하고 싶으면 먼저 꺼낸 걸 정리해야 하고”


거의 반나절을 다 써가며 버리고, 비워낸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휑한 책장과 체감상 몇 평은 넓어진 듯한 거실을 보니 속이 다 후련했다. 내 예상대로 아이들의 슬픔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순식간에 사라졌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 거다.


버리고 비워낸 진가는 다음 날부터 발휘됐다. 밤에 애들을 방에 들여보내고 나서 치울 게 없었다. 왜 진작에 이렇게 하지 않고 그 고생을 했나 싶었다. 집이 크고 넓으면야 장난감 방을 따로 만들어서 이것저것 다 처박으면 되겠지만, 아직 불가능한 이야기고.


설거지가 싫으면 덜 꺼내면 되고, 빨래가 싫으면 더 입으면 되고, 음식물 쓰레기가 싫으면 다 먹으면 되고. 정리하기 싫으면? 안 꺼내면 된다? 아니다. 버리면 된다.


오늘도 뜻하지 않게 레고를 밟고 된소리, 쌍소리를 목 끝까지 올렸다가 간신히 눌러낸, 내가 집안일을 하는 건지 장난감 가게에서 일을 하는 건지 분간이 안 되는 아내, 남편이 있다면 버리기를 추천한다. 신세계가 열린다.




* 이 글은 리드맘 공식 포스트 (http://bitly.kr/OxKsADa)​에 포스팅 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