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둥이 부모가 된다는 건

by 어깨아빠

롬이 (내년 4월에 출생 예정인 우리 집의 셋째) 가 아내의 배 속에 살림을 꾸린 게 벌써 14주째

다. 14주 동안 롬이는 ‘내’ 삶을 많이 바꿔놨다.


우선 날 무지하게 부지런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물론 그 전에도 나름대로 육아와 집안일에 열심

히 참여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이건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롬이가 생기고 나서의 삶에 비

하면 그건 정말 호화스러운 삶이었다. 아내는 5주~12주 동안 입덧이 극심했다.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운 사람에게 산적한 집안일을 떠넘기는 건 도리가 아니었다. (사실 그 전에는 아이들과 열심

히 놀아준다는 핑계로 일부러 등지기도 했고, 모른 척하기도 했다. 어쩌면 여전히 그런 영역이 남

아 있을지도 모르고.) 롬이의 등장과 함께 그럴 수가 없게 됐다. 아내는 ‘귀찮아서’가 아니라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한참을 보냈다. 그 덕에 부지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애 둘 키우는

집이면 어느 집이든 하루 정도 방치하면 고물상 내지는 폐기물 수집장을 방불케 하는 광경이 벌

어진다. 매일 밤마다 우렁서방이 되어 설거지도 하고 집정리도 했다.


내면의 변화도 있었다. 롬이 존재를 확인하고 난 뒤를 기준으로 극초기에는 사실 좀 멍했다. 내

밑으로 자녀가 둘에서 끝날 것 같지는 않았고 언젠가는 세 아이의 아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은 늘 했지만, 그렇다고 당장은 아니었다. 그 시기를 지나고는 희망과 가식의 시기가 찾아왔다.

어쨌든 생명을 주신 거고, 무엇보다 가장 큰 바람은 건강이었다. 주변에 워낙 아기가 잘못됐다는

소식이 많이 들려서 그런지 일단 건강하고 보는 게 최고였다. 마음대로 아내 배에서 방 빼지 않

고, 10개월 계약 기간 다 채우고 무사히 우리 품에 오는 거. 그거 말고는 바라는 게 없다…고 누

군가 물어보면 대답하곤 했다.


“뭐 건강하기만 하면 상관없죠”


아니었다. 난 아들보다는 딸을 원했다. ‘막내딸’을 품에 안아보고 싶었다. 물론 둘째 때도 딸을 원

했지만 아들이 등장했다. 당연히 이 녀석이 없었으면 어쩔 뻔 했을까 싶을 정도로 둘째 아들이

사랑스럽지만 그래도 선택할 수 있다면, 셋째는 딸이길 바랐다. 물론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병원에 가서 딸인 걸 확인하는 순간 나는 무언의 포효를 질렀다. 아내는 오히려 심드렁했다. 딸이

든 아들이든 상관없다고 했다. 배에 품는 자와 품지 않고 지켜보는 자의 차이가 이런 데서 드러

난다. 남편들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아내를 따라갈 수 없는 건 당연한 거다. 태생적으로 그렇다.

요즘은 자꾸 상상하게 된다. 둘만 있는 지금도 둘이 꽁냥대는 걸 보면 세상에서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는데 여기에 롬이까지 더해진다니. 자꾸 기대하게 된다. 당연히 마주하게 될 현실의 고난

과 어려움을 생각하면 두렵다가도 롬이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면 금세 흐뭇해지기도 하고. 오락

가락이다.


컴퓨터로 몇 시간을 씨름하며 뭔가 열심히 작업했는데 갑자기 컴퓨터가 꺼졌다. 얼른 다시 켰지

만 저장은 되지 않았고, 다시 새하얀 태초의 상태로 돌아갔다. 얼마나 허망하겠는가. 처음엔 화도

나고 그러겠지만 결국 헛웃음이 나온다. 요즘 딱 그런 헛웃음이 나올 때가 종종 있다.


“여보. 이제 우리 이런 손수건은 다 버려….아, 맞다. 내년에 또 써야 하지. 하하하”

“여보. 애들 옷 좀 더 많이 버리고 갖다 주…아, 맞다. 롬이 입혀야 되지. 하하하”

(시윤이 기저귀 갈아주면서)

“하아 시윤아. 아빠 앞으로 한 3년은 더 기저귀 갈아야 된다. 좋겠지? 하하하하”


이 땅의 모든 다둥이 엄마, 아빠들이여. 존경합니다.



* 이 글은 리드맘 공식 포스트 (https://bit.ly/361piVz)에 포스팅 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