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뭔가를 만들고 조립하고 이런 것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결혼을 하고 이것저것 살림을 들일 때도 조립해서 써야 하는 책상이나 자잘한 가구가 도착하면 보기만 해도 귀찮았다.
결혼을 하고 언젠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레고를 하나 사서 사부작 거렸는데, 그 재미가 나름 쏠쏠했다. 그 이후로 ‘개당 3-4만원 정도’라는 나름의 한계를 정해 놓고 소소하지만 꾸준하게 샀다. 조립하면 어딘가에 둬야 하니 적당한 장소를 찾았는데, 책장이 눈에 띄었다. 보통은 TV가 있어야 할 자리에 놓인 책장에, 그것도 이른바 ‘로얄층’ 이라고 불릴만한 가장 좋은 위치에 나의 레고들을 전시했다. 신혼때부터 시작해서 시윤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심심찮게 사들였다. 시윤이가 태어나고는 딱 한 개 샀고 그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지속 가능한 취미생활이 아니었다. 애초에 ‘조립욕구’ 보다는 ‘수집욕구’ 때문에 시작된 취미였고, 종류가 뭐든 ‘수집’이라는 행위는 ‘돈’이라는 총알이 필요했다. 가끔씩 집에 놀러 오는 남자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로얄층’을 가리키며 체험(소장도 아닌, 그저 체험)의 욕구를 드러낼 때도 영 불편했다. 선뜻 내어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만지면 안 된다고 하며 내어주지 않는 것도 좀스럽고. 어차피 중단된 마당에(시윤이 갓 낳았을 때니까, 마지막 구매가 거의 2년 전인 셈이다.) 거기 놓고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저거 정리해야 하는데’
마음은 먹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집에서 달력 찢어 만든 딱지라도 모은 걸 버리려면 아까운 법이다. 그동안 모은 레고를 처분하는 자체가 뭔가 아쉬워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유일한 취미생활이었다. 축구를 하기 전까지는.
소윤이를 낳고 나서 교회 축구 모임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고, 작년 하반기부터는 수요일 밤에 한 번, 주일 오후에 한 번. 일주일에 두 번 축구를 한다. 레고가 마지못해 찾은 반 억지의 취미생활이었다면, 축구는 내 안의 모든 것을 해갈하고 또다시 채울 수 있는 금 같은 취미가 됐다.
애 둘을 키우는 아빠에게 두 가지의 취미 생활은 아무리 생각해도 과했다. 축구 하나만 해도 (아내가 전혀 눈치를 주지는 않지만) 아내에게 여간 고맙고 미안한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축구가 주는 짜릿함과 쾌감을 레고가 따라올 수 없었다. 책장에 진열되는 레고가 늘어나지 않는 대신 건조대에 널리는 축구 유니폼과 운동복이 늘어났다.
엊그제 그 레고들을 싹 처분했다. 다 부숴서 낱개의 조각을 만들고 커다란 통에 담아 먼지를 씻어냈다. 씻은 블록은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주고.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우니 잘 정비해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주기로 했다. 비싸지 않은 것들이긴 했어도 그동안 산 걸 한 데 모아 놓으니 적은 양은 아니었다.
“여보. 내가 지금 누구 좋으라고 이 고생이지”
자잘한 블록들을 일일이 씻고 닦는 게 꽤 수고스러웠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씨름하고 있는 나를 보더니 아내가 말했다.
“나도 좀 도와줄까? 저것도 다 정리할 거지?”
“아니야. 아니야. 그건 둘 거야. 그건 아직이야”
피규어(레고 인형)는 폐기처분을 면했다. 나머지 레고들이 다 분해되어 커다란 스테인리스 통에 담겨 다음 생을 기다릴 때, 피규어들은 자리를 옮겨 내 책상 위에 도열했다.
“여보. 어때?”
“오, 나름 귀엽네”
레고 처분하던 날은 영 아쉬워서 그거라도 남길까 싶어서 그랬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것도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걔네도 다 소윤이, 시윤이한테 줘야겠다.
레고들아. 잘 가라. 이제 너희 거기 가면 어디로 처박힐지 몰라. 소파 밑, 식탁 밑, 쓰레기 봉지, 강시윤 입에도 들락날락할 거고. 가끔은 누가 꾹 밟고 기분 나쁜 원망과 함께 욕지거리를 내뱉을지도 모르지. 거기 있고 싶어서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동안 편하게 대접 받았잖아. 이제 고생 좀 해라. 잘 가라. 즐거웠어.
(이제 국내에서는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해외파가 된 헐크버스터야. 넌 남겨둘게)
* 이 글은 리드맘 공식 포스트(http://bitly.kr/FdrXGaA)에 포스팅 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