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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 Jun 10. 2019

그녀의 다이어트

어느 날 아내가 선언했다.


“여보. 나 이제 살 뺄 거야"


비슷한 얘기는 여러 번 들었다.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금방 무너져 내리는 것도 자주 봤고. 이번에는 뭔가 느낌이 달랐다. 약간의 결연함이 엿보였다. 친한 친구 한 명하고 매일 먹은 것과 운동 내용을 공유하면서, 나름의 규칙(야식 금지, 운동 필수 등)을 어기면 벌금을 모으기로 했단다.


“벌금이 얼만데?”

“어, 500원”


5,000원도 아니고 500원이라니. 잠시 느낀 결연함은 착각이었나 싶었다. 호들갑 떨며 반응하고 응원하지 않는 나에게 아내는 괜히 한 번 더 말했다.


“여보. 나 이번에는 진짜야. 진짜 뺄 거야. 얼른 응원해줘”

“알았어. 파이팅”


사실 아내는 다이어트의 경험이 없다. 살이 안 찌는 체질이었다. 결혼 전에야 말할 것도 없고, 결혼하고 나서도 먹는 것에 비해 살이 안 쪘다. 억울했다. 나는 먹는 족족 살로 가는데. 아내는 그렇지 않았다. 나처럼 많이 먹지는 않아도 야금야금, 알게 모르게, 꾸준히 뭔가 집어 먹고 그러는데도 늘 비슷한 몸무게였다. 그러다 모든 여성들이 대전환을 맞이하는 출산과 함께 아내의 몸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첫째 때보다 둘째를 낳고 나서 확연한 차이가 생겼다. (참, 이렇게 쓰다 보니 꼭 내 생각을 쓰는 것 같은데, 그건 아니다. 난 여전히 아내가 호리호….아니, 살을 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아내는 항상 이와 같이 얘기했다. 아내의 말을 옮겨 적는 것이라는 걸, 내 생각이 아니라는 걸 밝혀둔다.)


일단 몸무게가 슬금슬금 늘었다. 고된 육아로 인한 보상 심리(라고 아내는 말했지만, 보상받는 경로가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군것질, 웹툰, 드라마 등등)로 늘어나고 끊기지 않는 야식과 군것질이 주된 원인이었다. 반에서 꼴찌 한다고 시험 걱정 안 하는 것이 아니고, 평생 증가하기만 하는 체중의 소유자인 나도 언제나 체중계 앞에서는 작아지듯, 아내도 마음 한 편에는 늘 걱정을 안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멈춰야 하는데. 빼야 하는데’


아내는 인스타그램에서 홈트(홈트레이닝) 유명인들을 여러 명 팔로우하고 있었다. 아내는 열심히 그들이 올린 홈트 영상을 봤다. 그중 한 명이 쓴 책도 사서 (한 때) 열심히 봤다. 그들이 먹는 다이어트 식도 열심히 봤다.


“여보. 여보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봐”

“뭐?”

“눈트(눈으로 보는 트레이닝)”


그러다가 갑자기 나에게 질문도 던졌다. 자칫하면 수렁에 빠질 수 있는 위험한 질문을.


“여보. 나 살쪘지?”

“아니. 괜찮아. 예쁜데?”

“아니야. 이제 난 망했어”

“뭘 망해. 괜찮아. 안 빼도 돼. 날 봐. 망한 건 나지”


그러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행동하기 시작한 거다. 다이어트 선언 이후 아내는 정말 식사량을 줄이고, 매 끼 사진을 찍었다. 자기 먹을 만큼만 덜어 먹고. 애들이 먹다 남긴 것도 과감히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버렸다.


“엄마. 오늘은 사진 안 찍어여?”

“아, 맞다”


사진 찍는 걸 깜빡하면 소윤이가 알려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군것질을 끊었다. 과자가 먹고 싶은데 없으면, 여기저기 뒤지다 뒤지다 애들이 먹는 쌀과자라도 먹었던 아내다. 그렇게 좋아하는 빵도 끊고, 단 커피도 끊었다. 진짜 다이어터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체중계 상의 숫자로 채 1kg도 빠지지 않고 한 몇 백 그램 빠졌을 때 아내가 내게 물었다.


“여보. 나 어때? 살 진짜 좀 빠진 것 같지 않아?”

“그런가?”


헬스하고 와서 웃통 벗고 잔뜩 힘주면서


“어때? 근육 좀 붙었지?”


라고 물었을 때 아내도 비슷한 심정이었겠구나. 아무튼 난 아내를 조금 더 진지하게 응원하게 됐다. 엄마가 된 많은 여성들이 얘기하곤 한다.


“아, 애 낳았더니 이제 어떻게 안 되네. 계속 쪄"


글쎄 모든 원인을 아이들과 출산으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치명상을 입히는 건 맞는 것 같다. 단지 몸무게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회복탄력성을 상실하게 된달까. 게다가 마음을 좀 단단히 먹고 뭘 해보려고 할 때는 애들 그 자체가, 또 아이 엄마라는 직책이 큰 장애물이 되기도 하니까.


그래서 난 아내를 응원한다. 영영 다시 못 만날 줄 알았던 아이 엄마가 아닌, 꽃다운 여자였던 그 시절의 자신과 만날 수 있으니까. 엄마가 되어 무너졌다고 생각하는 어느 영역이라도, 이렇게 다시 쌓아 나가며 젊은 날의 나를 되찾았다고 좋아하는 걸 보면, 누구보다 내가 기쁘니까.


그래서 난 아내의 다이어트를 응원한다.

(내가 누구를 응원하고 말고 할 때가 아닌데. 또르륵)


* 이 글은 리드맘 공식 포스트(http://bitly.kr/oE367z)에 포스팅 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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