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적으로 본 롬이

20.02.04(화)

by 어깨아빠

감사하게도 그동안 아내에게 특별한 증상은 없었다. 2차 임신성 당뇨 검사에서도 '정상' 판정을 받았다. 소윤이 때도 그랬고 시윤이 때도 그랬고 아내는 임신 기간에 더 건강해진다. 거기에 이번에는 나도 신경을 좀 쓰고 있다. 소윤이, 시윤이 때보다는 연로(?)한 나이인데다가, 나이와 상관없이 여자의 몸은 출산이 거듭될수록 상하기 마련이다. 앞선 두 번의 임신은 물론이고 이번에도 큰 탈 없이 지내고 있는 중이지만 그래도 조심스럽다. 그래서 강력한 감시의 불을 밝혔다. 야식, 자극적인 음식, 과식 등을 자제시키고 있다.


큰 탈 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기는 하지만 워낙 부른 배 때문에 거동이 불편해지고 있다. 임신성임신의 황금기를 지나 황혼기(?)에 접어드는 느낌이었다. 점점 내 의지와 바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느끼며 예정일을 기다리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입체 초음파가 예정된 날이었다. 소윤이를 낳았던 울산의 산부인과에서는 입체 초음파가 선택 사항이었다. 아내와 나는 선택하지 않았다. 아내도 나도 입체 초음파에 큰 감흥이 없었다. 시윤이 때는 선택의 권한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입체 초음파를 했는데 기억이 없었다. 아내와 나는 기억을 들춰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다 나중에 떠올랐다. 입체 초음파를 하기는 했는데 화질이 너무 안 좋았다. 가뜩이나 소윤이 키우느라 정신없었을 텐데 화질까지 안 좋으니 별 감동이 없었나 보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롬이는 조금 달랐다. 가기전부터 은근한 기대를 품었다. 상황상 흥미로운 것도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중 과연 누구를 닮았을까. 궁금했다. 언제나처럼 나만큼이나 소윤이도 롬이와의 만남을 기다렸다.


드디어 입체 초음파 시작. 그 사이 화질이 좋아졌는지 제법 선명하게 각 부위의 윤곽이 보였다. 너무 신기했다. 세 번째인데도 처음 같았다.


"소윤아. 진짜 신기하지? 저게 롬이래. 아빠는 세 번째인데도 너무 신기하다"

"맞아여. 아빠. 너무 신기해여"


마침 롬이가 하품하는 걸 선생님이 포착했다.


"소윤아. 봤어? 롬이 하품하는 거?"

"네. 그런데 공룡 같아서 좀 무서웠어여"


무엇보다 롬이는 다 정상이었고 건강했다.


"소윤아. 롬이 건강하대. 다행이다"

"맞아여. 건강해서 다행이다여"


롬이가 자기 얼굴을 제법 많이 보여준 순간이 있었다. 시윤이가 뚱한 표정일 때랑 꼭 닮은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시윤이랑 똑같네"


라고 말하고는 혹시라도 소윤이가 서운할까 봐


"소윤이랑도 완전 닮았네"


라고 덧을 달았다.


입체 초음파를 보고 나니 너무 궁금했다. 롬이는 과연 어떤 아이일지.


한가지 슬픈 소식이 있었다. 롬이는 역아였다. 아직 30주니까 36주까지 시간은 있었지만 아내는 아쉬워했다.


"여보. 이럴 거면 내가 시윤이를 뭐하러 브이백 했냐고"


담당 선생님은 희망적인 발언을 해주셨다.


"아, 괜찮아요. 36주에도 도는 아이들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걱정하는 이유는 소윤이 때문이었다. 내 기억에 소윤이는 30주 전에 이미 역아였다. 그러고 끝까지 돌지 않았고. 언니의 길을 밟을까 걱정이었다.


"여보. 트리플 크라운이 어려울지도 모르겠네"


재왕절개, 유도분만, 완전 자연분만. 이 세가지를 모두 경험할 뻔했는데 현재 정황상으로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자연분만이 더 좋기는 하다. 아무래도 수술보다는 자연분만이 회복이 더 빠르니까. 낳는 게 힘든 건 수술이든 자연이든 마찬가지니까 차라리 회복이라도 빠른 게 낫다.


그렇지만 수술도 상관없다. 소윤이도 수술로 태어나서 이렇게 잘 크고 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아내도 롬이도 건강하게 마무리 되면 그게 어떤 방법이든 상관없다.


롬이야. 그러니 부담갖지 말고 잘 크기만 해. 그래도 혹시나 여유가 있다면 머리를 밑으로 돌려보지 않으련? 왜냐하면 아빠가 둘 다 경험해 본 결과 칼을 대는 것보다는 니 힘으로 찢고 나오는 게 그나마 엄마가 빨리 회복하더라고. 엄마가 좀 억울해 하고 있어. 그러니 엄마에게 세 가지 출산의 유형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건 어떠니.


그래도 다행인 건 니가 건강하대.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병원에 가서 선생님이 꾸덕꾸덕한 젤을 니 엄마 배에 바를 때까지, 아빠는 늘 다짐한다.


'혹시나, 혹시나, 혹시나,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의연해야 한다'


그래서 멀쩡히 숨쉬고 잘 자라고 있는 널 보면 바이킹을 탈 때처럼 가슴 어딘가가 저릿저릿한 느낌이 들어. 그러고 나서 니 언니, 오빠를 보면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하고. '쟤네가 가영이 뱃속에 있었다니' 이런 생각이 드는 거지. 엄마와 아빠는 너의 성장을 결코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 이건 정말 은혜 중에 은혜야.


롬이야. 이제 두 번 남았대. 두 번만 초음파로 널 보면 이제 자연이든 수술이든 널 만난다고 하네. 이제 슬슬 니 이름도 고민해야겠다. 사실 거의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오늘은 유난히 니가 반갑고 궁금하고 그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