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있는 롬이

20.02.24(월)

by 어깨아빠

"아기가 거꾸로 있네요"


평온하기만 하던 임신 기간에 찾아온 작은 파장이라면 파장이었다. 특히 아내에게는 더더욱.


소윤이는 거꾸로 있어서 수술을 했다. 보통 첫째를 수술로 낳았으면 둘째도 수술을 하지만 아내는 일반의 길을 따르지 않았다.


"여보. 나 브이백 하고 싶어"


첫째를 수술로 낳았는데 둘째는 자연 분만을 하는걸, 브이백이라고 한다. 주변(전문가든 비전문가든)의 의견은 제각각이었다. 굳이 위험한 걸 왜 시도하냐, 수술로 낳아도 잘 크는데 뭐 어떠냐, 위험한 거 없다, 자연 분만이 왜 자연 분만이겠냐 자연스러운 일이다 등등. 시윤이는 브이백을 시도(?)했고 알다시피 잘 크고 있다.


아내는 롬이가 거꾸로 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안타까워했다. 물론 나도 아쉽긴 했지만 아내만큼은 아니었다. 자연 분만이든 제왕 절개든 출산의 여러 방법 중 하나니까 어떤 방법으로든 안전하고 건강하게 끝내면 그게 제일이다. 두 방법을 모두 경험한 사람으로서 굳이 자연 분만의 장점을 꼽자면 비용이 저렴해진다는 것과 출산 후 회복이 빠르다는 거다. 자연 분만은 낳을 때 아픈 대신 낳고 나서 안 아프고 제왕 절개는 낳을 때 안 아픈 대신 낳고 나서 아프다는 얘기도 있는데, 아니다. 제왕 절개도 아프다. 과정이 무엇이든 뱃속의 아이가 배 밖으로 나오는 건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 다만 출산 후 회복의 속도는 확실히 자연 분만이 빠르다.


자연 분만이든 제왕 절개든 상관없었지만 오늘 다시 롬이를 보러 가기 전에 기도도 하고 소윤이, 시윤이와 함께 가정 예배를 드릴 때는 아내의 배에 모두 손을 얹고 기도를 하기도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섭리를 경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윤아, 시윤아. 지금 롬이가 거꾸로 있어. 알지? 롬이가 머리를 다시 아래쪽으로 돌리게 해달라고 기도할 건데 그렇다고 수술로 롬이를 만나는 게 안 좋은 건 아니야. 자연 분만을 하면 엄마가 롬이를 낳고 나서도 좀 덜 아프고 빨리 회복될 수 있으니까 자연 분만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거야. 혹시 롬이가 그대로 있더라도 그건 상관없어. 그러면 그게 엄마랑 롬이에게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그렇게 두신 걸 거야. 만약에 롬이가 머리를 돌리면 우리가 기도한 대로 된 거니까 엄청 신기하겠지? 감사하고"


나의 욕망과 바람이 이뤄지는 현장에서만 신의 존재를 경험하는 인생을 사는 건 원하지 않는다. 반대로 나의 욕망과 바람이 이뤄지는 현장에서도 신의 존재를 경험하지 못하는 인생도 원하지 않는다. 바보와 천재는 한 끗 차이라고 했던가. 겸손과 염세, 교만과 자신감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어떤 임팩트(?) 면에서는 '기도 한대로 뭔가가 바뀌어 있는 상황'을 더 바라긴 했다. (우리는 제법 뜨겁게, 진심을 다해 기도했다.) 다만 이제 세 번째라 그런가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다. 아내가 밤마다 배를 들이밀며 물었다.


"여보. 이게 롬이 머리인가?"


만져보면 동그랗고 딱딱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러네. 이거 머리네. 얘 아직 그대로네"

"그래? 혹시 엉덩이 아니야?"

"아니야. 엉덩이가 뭐 이렇게 딱딱해. 만져 봐. 딱 머리잖아"

"아, 얘 왜 안 돌아"

"지 언니 따라 하나 보지"


예상대로 롬이는 그 자세 그대로였다.


"아, 아직 거꾸로네요"


아내가 제일 아쉬워했다. 아내는 아직 거꾸로 있는 롬이를 외면하고 '혹시나' 제자리로 돌아왔을 상황도 미리 상상하며, 의사 선생님이 완전한 자연 분만까지 기다리지 않고 유도 분만으로 서두르는 것도 마뜩잖아했다.


"여보. 그냥 의사 선생님이 하자는 대로 해. 그게 가장 안전한 거야"


이제 출산 전에 롬이를 보는 건 딱 한 번 남았다. 3주 뒤인 36주에 왔을 때도 돌지 않았으면 수술 날짜를 잡기로 했다. 아마 4월 초일 거라고 말씀하셨다. 만약 머리를 돌려서 자연 분만을 하게 되면 3월 말쯤 일 거라고 하셨고.


"소윤아. 롬이가 아직 그대로래"

"맞아여. 저도 들었어여"

("아빠아. 놈이가 그대도대여어?")

"응. 그대로래. 다음에 올 때까지 또 기도 열심히 해 봐야겠다. 그치?"

"네. 이제 밥 먹을 때도 매일 롬이를 위해서 기도해야겠어여"

"그래. 그래도 감사한 거야 소윤아. 롬이가 하나도 안 아프고 잘 크고 있대잖아"

"맞아여. 엄마도 건강하고"


코로나가 온 대한민국을 휩쓸고 두려움에 떨게 하는 요즘, 우리 가족 누구라도 아프지 않고 특히 아내나 롬이가 그 폭풍을 피해 가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감사다. 롬이 덕분인지는 몰라도 (롬이의 뜻이 '평안'이다) 우리 가족은 두려움보다는 평안함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내는 종종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한다. 곧 다가올 나의 부재를 떠올리면서.)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 남은 3주간 열심히 기도를 해야겠다.


그리고 슬슬 이름을 고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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