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지 않은 롬이

20.03.14(토)

by 어깨아빠

롬이는 돌지 않았다.


지난번에 말씀하시길 오늘도 돌지 않으면 거의 그대로 끝까지 갈 가능성이 크니 대략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한다고 하셨다.


롬이는 여전히 머리를 위쪽으로 두고 있었다.


방향이 조금 아쉬웠을 뿐 머리, 팔, 다리, 심장, 탯줄, 양수 등. 그 외의 모든 건 때에 딱딱 맞게 잘 컸다.


아내의 배도 몰라보게 커졌다. 소윤이, 시윤이 임신했을 때에 비하면 살은 덜 쪘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문득 아내의 배를 보면 깜짝 놀란다. 그 몸에 저 배가 가능한가 싶다.


아내와 나는 조리원을 취소할까 고민하고 있다. 롬이를 조리원에 두는 게 영 걱정스러운 게 첫 번째 이유다. 마음이 너무 편치 않을 거 같다. 두 번째 이유도 첫 번째 이유와 관련이 있는데 아내도 너무 괴로울 거 같다고 했다. 마음 편히 쉬려고 가는 건데 상황이 영 편히 쉬지 못할 거 같다고 했다. 다만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건 단 며칠이라도 편히 자고, 쉬는 게 좋으니까. 그렇지만 이것도 한편으로는 뭐 몇 달도 아니고 고작 며칠 더 그렇게 쉰다고 바뀌는 건 없지 않겠냐는 거다. 물론 아내의 말이다.


롬이가 이런 세상에 태어나는 게 참 안쓰럽다. 자기를 바라보는 모든 어른이 하얀 마스크를 하고 있을 거다. 무슨 실험실도 아니고.


그래도 롬이에게 감사하다. 도저히 평안하기 어려운, 불안함 속에서 그녀의 이름을 지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우리는 제법 평안함 안에 살았다. 특히 그녀를 배에 품은 아내가 가장 그랬다. 더 신기하게도 롬이의 등장이 가까워지자 나의 백수 생활이 끝났다. (생활이나 마음의 측면에서는 백수가 평안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건 아니니까.) 태어나기도 전인 그녀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얻어서 좀 미안한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롬이가 태어날 때쯤에는 이 혼란한 시국이 좀 잠잠해지길 바라고 있다.


롬이야.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다른 집의 꼬물거리는 아가들을 볼 때마다 얼른 니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 이면에 흐르는 고난의 눈물을 알면서도 말이야. 미친 거지.


롬이야. 얼마 안 남았다. 미친 아빠가 기다리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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