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조절 육아

20.06.13(토)

by 어깨아빠

토요일인데 알람이 울렸다. 서윤이가 6시부터 깨서 울었다. 아내는 앉아서도 잘 재우던데 왜 내가 안아주면 꼭 서야 울음을 그치는지. 졸리기도 졸리고 힘들기도 힘들고 덥기도 덥고. 어떻게 해도 달래지지 않길래 그냥 눕혀 버렸다. 거의 한 시간을 안고 있었다. 서윤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아내가 방에서 나왔다.


"하아. 왜 이렇게 일찍 깼냐. 주말에 잠도 못 자게. 하아"


아내를 보며 볼멘 소리를 내뱉었다. 짜증이 모공을 뚫고 나오려는 찰나에 뇌에서 얘기했다.


'야, 그러게 누가 셋째 낳으래. 이럴 줄 몰랐어? 괜히 짜증내지 말고. 그래도 넌 밤새 계속 잤잖아'


육아의 정도는 모르겠는데 망도는 알고 있다. 감정 따라 가면 망하는 지름길이다.


"여보. 서윤이 내가 먹이고 재울 테니까 여보 들어가서 더 자"

"됐어. 괜찮아"

"왜 좀 더 자"

"아니야. 잠도 다 깼어"


서윤아, 아빠가 뭐 많은 걸 바란 것도 아니고 그저 평일보다 단 한 시간이라도 더 자는 것에 감사하고 있는데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 속이 후련했냐아아.


아내는 서윤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고 조금 있다가 소윤이, 시윤이가 깨서 나왔다. 응, 그래 선수 교체.


"소윤아. 아침 뭐 먹을까? 뭐 먹고 싶어?"

"음, 토스트"

"토스트? 어떤 토스트? 잼 발라 먹는 거?"

"음, 계란 묻혀가지고 하는 그 토스트여"

"아, 그거 먹을까? 계란물 토스트?"

"네"


프렌치 토스트를 말하는 거였다.


"아빠. 비행기 태워주세여"

"으 소윤아. 아빠가 지금은 너무 힘이 없어"

"왜여?"

"서윤이가 엄청 일찍 일어났어"

"그래여? 다시 자는 거에여?"

"응"


잠이 다 깬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소란스럽게 노는 와중에 거실 바닥에 누워 선잠을 잤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아내와 서윤이가 다시 나왔다.


"여보. 소윤이가 아침으로 토스트 먹고 싶대"

"그래? 식빵이 있나?"

"내가 소윤이, 시윤이랑 나가서 사 올게"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침 댓바람부터 자전거와 킥보드를 타고 나왔다. 이런 게 주말 특수지.


날씨가 엄청 뜨거웠다. 그늘 아닌 곳에 있으면 목이 따가울 정도로, 정말 정말 뜨거웠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눈을 뜨자마자 오늘은 어디 갈 거냐고 물었었다. 아내와 나는 이미 어제부터 어디 갈지를 막연히 고민했고. 빵 사러 다녀오면서 잔뜩 움츠러들었다. 너무 더웠다. 소윤이랑 시윤이만 데리고 가는 거면 상관없겠지만 아내와 서윤이가 문제였다. 나가 봐야 공원 같은 야외일 텐데 아내와 서윤이에게 너무 힘들 거 같았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집에 있자고 할 수도 없고. 그건 또 그것대로 답답하기도 하고.


"우와. 여보. 오늘 엄청 뜨거워. 장난 아니야"

"그래? 그 정도야?"

"어. 진짜 덥다"


아내와 나도 계속 고민하긴 했지만 도저히 나갈 날씨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어영부영 낮 외출을 생략했다. 대신 대안을 제시했다.


"소윤아. 아무래도 오늘은 너무 더워서 낮에는 나가기 힘들 거 같아. 대신 카페 잠깐 갔다가 치킨 사서 저녁에 먹고 밤에 잠깐 나갔다 오자. 어때?"

"좋아여"


치킨은 소윤이가 먹고 싶다고 했다. 갑자기.


서윤이는 계속 안 자다가(안 자도 잘 놀면 상관없는데 꼭 운다)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잤다. 곤히 자는 서윤이를 깨우자니 아쉬웠지만 (이미 꽤 많이 자긴 했지만 그래도 언제나 아쉽다. 자는 걸 깨우는 건) 밤에도 나가려면 너무 늘어지면 안 되니까.


카페에 가서는 서윤이를 계속 안고 있었다. 카페에서 나가면 카페와 인도 사이에 화단이 있었다. 시윤이는 나와 함께 거기서 놀았다. 지나가는 차 구경도 하고 시윤이 혼자 막 뛰어다니면서 장난도 치고. 소윤이는 카페 안에서 아내랑 놀았다. 자리에 앉아서 뭔가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나중에 들어 보니 아내가 우리(아내와 나) 연애 시절 이야기, 신혼 시절 이야기를 해줬다고 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각자 취향에 맞게 분리된 덕분에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다. 물론 서윤이는 계속 안고 있었고 난 처음에 잠깐 앉았던 거 말고는 의자에 앉지 못했지만.


집으로 오는 길에 치킨 두 마리를 사서 맛있게 먹었다. 원래 다 함께 나가려고 했는데 아내는 좀 지치기도 했고 서윤이가 곧 밤잠으로 돌입할 것처럼 보였다. 아내와 서윤이는 남고 나랑 소윤이, 시윤이만 나가기로 했다. 사실 나도 굉장히 힘을 많이 쓴 상태고 (주말 육아의 기본 노동 강도가 그렇다) 아내 없이 혼자 가려니 뭔가 더 지치기도 했고. 옷을 갈아입으러 가는 찰나에 짜증이 솟구치려고 했다.


"하아. 힘들다"


다행히 감정 조절 밸브가 원활히 작동했다.


'야, 그럴 거면 나가지 마라. 나갈 거면 즐겁게 나가던가'


뇌에서 활발히 신호를 보냈다. 마른 수건을 짜도 물방울은 떨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마지막 남은 힘을 긁어모았다. 소윤이는 자전거, 시윤이는 킥보드. 해가 지니 한결 낫기는 했지만 그래도 더웠다.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날씨였다. 동네 한 바퀴 돌고 상가 앞 광장에서 좀 놀고, 단지 안 놀이터 앞에서도 좀 놀았다.


한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와 함께 나온 엄마가 있었다.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세 살이니 온전한 숨바꼭질은 아니었고 그저 엄마가 아이에게 다 맞춰주는 엉터리 숨바꼭질이었다. 여자아이는 꺄르르 꺄르르 웃어대며 엄마를 찾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게 재밌어 보였는지 자전거와 킥보드 타던 걸 멈추고 한참을 지켜봤다.


"아빠. 우리도 숨바꼭질 같은 거 할까여?"

"숨바꼭질? 그런데 너무 어두워서 위험해"

"왜여?"

"너무 어두우니까 숨다가 다칠지도 모르고"

"저기 아기도 하는데여"

"저기 아기는 엄마가 가까이에서 하잖아. 소윤이랑 시윤이는 재밌게 하려면 멀리까지 가서 숨어야 되는데. 가까이에서만 숨으라고 하면 재밌겠어?"

"아니여"


거짓도 아니고 진실도 아닌 논리였다. 정말 어두워져서 위험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못 할 정도인가를 생각해 보면 그건 또 아니고.


"아빠. 그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할까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그것도 위험하지"

"왜여?"

"어두운데 뛰어야 하니까"

"왜여. 그건 여기 가까운 데서 다 보이는데서 하면 되잖아여"

"그런가"


내 논리가 너무 허술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위험한 놀이가 아니었으니까. 다시 뇌에서 활발하게 명령을 내렸다.


'야, 이제 고지가 눈앞이야. 조금만 힘내. 기왕 노는 거 재밌게 놀아주라고'


열과 성을 다해 무궁화 꽃을 피웠다. 막 뛰어다녔다. 엉터리도 그런 엉터리가 없었지만 무슨 상관이랴. 그냥 웃으며 뛰면 그만이지. 내가 좋아하는, 단전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웃음소리가 계속 들렸다.


"여보. 우리 재밌게 놀고 왔어"


마지막으로 시원하게 샤워까지 시켜주고 재웠다.


"소윤아. 잘 자. 사랑해. 오늘 소윤이랑 하루 종일 놀아서 아빠 엄청 즐거웠어"

"아빠 저도여"


"시윤이도 잘 자. 사랑해. 시윤이랑 재밌게 놀아서 너무 행복했어"

"아빠아. 더두여엉"


진심이다. 얘들아. 한 가지 말 안 한 게 있기는 해.


겁나게 힘들기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