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의 끈을 늦추면 안 된다

18.11.11(주일)

by 어깨아빠

"소윤아. 오늘은 새싹꿈나무 갈 때 울 거야, 안 울 거야?"

"오늘은 안 울 거야"

"소윤아. 그런데 헤어질 때 우는 건 괜찮아. 울어도 되는데 가서 찬양도 열심히 하고 율동도 열심히 하고 그래. 알았지?"

"헤어질 때 쪼오금 우는 건 괜찮아?"

"어. 괜찮아. 소윤이 금방 괜찮아지는 거 아니까"


소윤이는 다짐대로 울지 않고 헤어졌다. 막 신나서 들어간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눈물 없이 예배실로 들어갔다. 소윤이, 시윤이 둘 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난 덕분에 시윤이는 왠지 재우기 힘들 것 같았다. 그래도 처음에는 내 옆에 앉아서 막 손들고 찬양도 따라 하고 기도도 같이 하는 것 같더니 이내 활동을 시작했다. 아내가 아기띠로 안아봤지만 쉽게 잠들지 않고 오히려 답답하다고 몸을 뒤틀며 성질을 냈다. 본당 밖으로 나가서 시윤이를 안고 있던 아내가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아서 그냥 내가 시윤이를 데리고 자모실로 갔다.


자모실에 가서는 그 뭐지. 가운데 구멍 뚫린 동그란, 세모난, 네모난 작은 블록들이 이리저리 구불구불한 쇠에 끼워져 있고 그걸 손가락으로 이쪽저쪽으로 밀면서 놀게 만든. 하아. 설명이 안 되는군. 아내가 비쥬 뭐라고 했던 거 같은데. 아무튼 시윤이가 그거 가지고 예배 끝날 때까지 엉덩이도 안 떼고 놀았다. 예배 끝나고 밥 먹으러 갔는데 애들이 먹기 힘든 빨간 국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시윤이는 고민이 필요 없었다. 식당 의자에 앉는 것조차 거부하고 밖에 나가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일단 나랑 소윤이가 앉았다. 크면서 미소를 선사하는 일이 많아지는 만큼 어금니를 꽉 물게 하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아내는 꺅꺅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드러눕는 시윤이를 보며 어금니를 앙 깨물었다. 부리나케 밥을 흡입하고 아내와 교대했다. 소윤이의 꾸물거리는 식사 덕분에 거의 한 시간만에 밥 먹기를 마치고 카페 윌에 갔다. 여우 같은 소윤이는 나한테 애교 가득한 눈빛과 목소리로


"아빠. 우리 맛있는 거 사러 갈까?"


추파를 던졌다. 바로 옆 편의점에 가서 소윤이가 자기 먹겠다고 고른 초콜렛과 시윤이 입막음용 참크래커를 하나 샀다. 바로 목장모임이 있어서 아주 잠깐 머물렀다. 그러고 나서는 이제 한참 동안 이별.


"여보. 갈 게. 전화해"

"소윤이, 시윤이도 엄마 말 잘 듣고. 알았지?"


목장 모임 마치고는 바로 축구하러 갔다. 사연이 있어서 축구하다 병원에 가게 됐고 (내가 다친 건 아님) 휴대폰이 꺼진 바람에 다른 집사님 전화를 빌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이 첫마디가 들리는 순간 직감했다.


'음. 오늘은 뭔가 안 좋구나'


아주 짧은 통화였음에도 아내는 나한테도 날이 서 있었다. 나한 테라기 보다 이미 선 날을 그 순간 마주치는 누구에게라도 거둘 수 없었던 것 같다. 부지런히 집에 돌아가 보니 역시 예상한 대로였다. 자세히 듣지도 못하고, 묻지도 못했지만 소윤이에게 물어보니 자기가 쌀을 바닥에 다 쏟아서 엄마가 화가 난 거라고 했다. 아내는 잔뜩 가라앉아 있었고 소윤이는 내가 등장하자 엄마의 감정을 일부러 모르는 체 하려는 듯 괜히 나랑 더 신나게 놀려고 하는 것 같았다.


"여보. 그냥 나갔다 와"

"나?"

"어. 그냥 나갔다 와"


다 같이 집에 있다가는 아내랑 나도 불꽃이 튈 것 같았다. 그 말을 들은 소윤이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엄마. 가지 마"


연기가 아니라 정말 슬퍼서 우는 울음이었다. 다른 날 하고는 다르게 아내가 나갈 때까지 가지 말라고 슬피 울며 붙잡았다. 눈치 빠른 소윤이는 자기 때문에 유발된 엄마의 우울한 기분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엄마가 나간다고 하니 마치 자기 때문에 화가 나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른 날은 엄마가 운동하기 위해서, 친구 만나려고 나가는 거라면, 오늘은 자기를 피하려고 나가는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아내가 나가고도 서럽게 우는 소윤이에게 얘기했다.


"오늘은 소윤이 마음도 이해가 돼. 그렇지만 엄마는 아무리 울어도 오지 않거든. 대신 오늘은 아빠가 소윤이 울고 싶은 만큼 울 때까지 기다릴게. 소윤이가 실컷 울고 슬픈 마음이 조금 사라지면 그때 책 읽고 자러 들어가자"


소윤이는 이 말이 끝나자마자 엉덩이를 떼고 책을 고르러 갔다. 시윤이는 진작에 나에게 안겨 아내에게 인사했고. 잠들 때까지 슬픔을 안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소윤이는 씩씩하게 잠들었다. 시윤이는 낮잠이 조금 늦었다고 재우는데 은근히 한참 걸렸다. 자러 들어간 지 1시간이 넘어서야 탈출에 성공했다. 아내와는 카톡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음성이 아닌 문자만으로도 아내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는 게 느껴졌다. 실제로 아내는 나갈 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아내는 계속 잘 지내다 막판에 그렇게 된 거라고 회 상 (?)했다.


주일 축구가 수요 축구보다 덜 재밌다고 느끼는 건 역시 마음의 부담 때문임이 확실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마음의 짐은 있었어도 막상 별 일은 없어서 느슨해진 긴장의 끈을 다시 한번 조이게 됐다.


여보, 주일에는 언제든 소환당할 만반의 준비를 다시 한번 하도록 할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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