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정태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희미한 탄성이 흘러 나왔다. 정태는 주변을 살피며 재빨리 손으로 입을 가렸다. 자신의 마음이 들킨 거 같아 부끄러웠다.
‘여기가 병실 맞아?’
정태는 2박3일 동안 자신이 있을 곳이라 생각하니 믿어지지 않았다.
‘내 방보다 더 크고 좋은데?’
방 안에는 냉장고, 전화기, 텔레비전 등 필요한 물건들이 다 갖추어져 있었다. 밥을 해 먹을 수 없는 것 빼고는 모든 것이 가능한 생활공간 이었다.
‘이런 곳에 내가 있어도 되는 건가?’
정태는 좋은 것 보다 부담감이 더 컸다. 자신이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이 왠지 어색했다.
“이 옷으로 갈아입고 잠시 기다리고 계세요.”
간호가가 웃으며 옷을 건넸다. 정태는 그때까지도 넋을 놓고 병실 안을 살피고 있었다.
‘호텔이 따로 없네.’
정태는 간호사에게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환자복을 받았다. 간호사는 정태에게 옷을 건네 준 후 병실을 나갔다.
“들켰나? 최대한 티 안내려고 했는데 …….”
정태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래 뭐, 이런 곳에 자주 오면 그게 이상한 거지. 근데 부담되네. 2인실이나 3인실 써도 되는데 …….”
정태는 혼잣말을 중얼 거리며 입고 왔던 옷을 옷장에 넣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병실 안을 살폈다. 침대는 창가 바로 옆에 놓여 있었다. 정태는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문을 통해 도시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태는 환자복을 입은 자신을 바라보았다.
‘왠지 어색해.’
창밖은 너무나 고요했다. 빠르게 달리는 차들이 오늘따라 소리 없이 달리고 있었다. 이곳은 조금 전까지 자신이 있었던 시끌벅적한 도시와는 분리되어 있는 거 같았다. 병실안의 고요함마저 더해져 정태는 외롭게 느껴졌다.
‘이 좋은 공간에 혼자 있다니…….’
정태는 간이침대를 보며 문득 어느 책에서 읽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 방에 다른 환자가 있었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그래도 이 창으로는 뭐라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야.”
정태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혼자 있는 것이 편해졌다. 아파트에 불빛이 하나 둘씩 들어왔고, 거리의 네온 불빛도 불꽃놀이를 펼치듯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뭐를 그렇게 열심히 보세요?”
누군가의 목소리에 정태는 옆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간호사가 언제 들어 왔는지 자신의 침대 옆에 서서 창밖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정태는 옅은 미소만 지었다. 간호사는 진료 차트와 주사기가 담긴 그릇을 침대 옆에 놓고 웃으면서 정태에게 말을 건넸다.
“창밖에 재미난 거라도 있나 봐요?”
“…….”
정태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왼쪽 손 좀 주시겠어요?”
정태는 왼 손을 간호사에게 내밀었다.
“내일 수술 때문에 마음이 심란하죠?”
뭐가 궁금한지 간호사는 손등에 주사 바늘을 꽂으면서 말을 걸었다. 정태는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간호사의 모습이 싫지만은 않았다. 정태는 창밖을 보면서 말을 했다.
“옛날 어떤 책에서 읽은 내용인데요. 두 사람이 병실에 있었는데 창가에 있는 환자가 문 쪽에 있는 환자에게 매일 창밖의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이며, 사람들의 모습, 계절의 변화 등 밖의 풍경들 말이어요. 문 쪽에 있는 환자는 듣기만 하고 창밖을 볼 수 없는 것이 항상 불만이었죠. 어느 날 밤 창가 쪽에 있던 환자가 갑자기 고통스러워하며 문 쪽에 있는 환자에게 의사를 불러 줄 것을 요청 했어요. 하지만 그 환자는 모른 척 해 버렸어요. 결국 창가 쪽의 환자는 죽었고, 문 쪽에 있던 환자가 창가 쪽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그 창 너머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대요. 보이는 것은 오직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벽들뿐이었대요. 창가 쪽에 있던 환자는 문 쪽에 있는 환자가 지루해 할까봐 자신의 상상대로 지어서 들려 준 것이었어요. 이렇게 창가 쪽에 있으니까 문득 그 이야기가 떠올라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간호사는 차트를 가슴에 품고서 정태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정태의 왼쪽 손등에는 어느 새 주사바늘과 하얀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재미없죠?”
정태가 간호사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네, 재미없어요. 근데 좀 무서운 이야기 같아요.”
간호사는 약간 소름이 돋았는지 몸을 움츠렸다.
“수여 받는 사람과는 어떤 사이여요?”
간호사는 정태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무런 관계도 없어요. 사실 그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어요.”
정태는 다시 창밖을 보며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단하세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을 하게 되었어요?”
간호사가 정태의 말에 호응을 하며 물었다.
“아무런 의미는 없어요. 그냥, 저와 맞는 환자가 있다니까 ……. 당연히 해야 되는 거잖아요? 사실 이런 질문들을 여기 오기 전까지 너무나도 많이 들었어요. 흔치 않은 일이기에 사람들의 물음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사람들이 이런 일을 대단하게 여기고, 궁금해 하는지 모르겠어요.”
정태가 쑥스러운 듯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전 이 병동에만 4년째 있었거든요. 그런데 환자 같은 분은 처음 뵙는 것 같아요.”
간호사는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이제껏 하고 싶었던 말을 정태에게 다 쏟아 내고 있었다. 그녀의 말 속에는 약간의 푸념이 섞여 있었다.
“둘러보시면 알겠지만 이 층은 모두 암 병동이어요. 그래서 경증의 환자는 하나도 없어요. 퇴원하는 사람들은 완쾌되어서 나가는 환자보다는 치료가 불가능하거나 죽어서 나가는 환자들이 대부분이어요.”
간호사는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점점 줄어드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정태는 뒤통수를 가격 당한 듯 멍해졌다. 그리고 약간은 긴장감과 무서움이 엄습해 왔다. 정태는 다시 방안을 살폈다. 꼭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공간처럼 느껴졌다.
‘어쩜 저렇게 덤덤하게 말을 할 수 있지? 4년의 세월이 저 사람을 이렇게 만든 건가?’
정태는 간호사를 애잔하게 바라보았다.
‘여기서 일하는 것도 쉽지 않겠다.’
정태는 4년간 지내오면서 그녀가 겪었을 아픔과 고통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이 정태에게로 전해지자 아련한 마음이 들었다. 사람을 살리는 희망을 갖고 왔었을 그녀가 사람이 사라지면서 희망을 잃어가고 있는 모습이 느껴졌다.
‘저런 모습으로는 환자에게 희망을 줄 수 없을 텐데 ……. 환자에게서 그런 희망들을 다 잃어버린 건가?’
“괜찮으세요? 마음이 많이 아프시겠어요?”
정태는 더 좋은 말로 위로를 해주고 싶었으나 달리 해 줄 말을 찾지 못했다. 어떠한 격려와 용기도 그녀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 같았다.
“괜찮아요. 그냥 이제는 덤덤해요.”
간호사는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을 했다. 그리고 약간 망설이다가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건강하게 퇴원 하실 거니 좋아요.”
‘슬픈 일을 많이 겪으면 나중에는 눈물도 안 나온다고 하던데 …….’
정태는 일상화되어 버린 그녀에게 이제는 더 큰 자극이 아니면 슬픔도 못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제가 대단한 일을 한다고 하지만 별로 특별한 게 없어요.”
정태는 그녀가 궁금해 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잖아요? 내가 그 환자에게 골수를 주지 않으면 그 환자는 죽는다고 들었어요. 내가 골수를 준다고 해서 몸에 이상이 있다거나 잘못되는 것도 아닌데 해야죠. 가족이나 주변 사람이 만약 그런 일을 당했는데 맞는 골수가 없어서 하루하루 죽음을 기다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하물며 맞는 사람이 있는데도 그 사람이 기증을 거부하면 어떤 심정이겠어요? 내가 겪을 수도 있는 일이잖아요?”
“……!”
간호사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오른 발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듯 이리저리 움직이며 정태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병실 안에는 이야기의 무게만큼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밤은 더 그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있었다.
“그리고 저는 어떻게 보면 선택받은 사람이어요. 제가 알기로는 같은 골수를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이 1만8천 분의 1이라고 들었어요. 하고 싶어도 골수가 같지 않아 못하는 사람들도 많대요. 그래서 이런 기회가 온 것에 대해 항상 고맙게 생각해요.?”
정태는 창밖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한 후 미소를 띠며 간호사를 보다 멈칫 했다. 간호사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감수성이 참 애민한 사람이다. 여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
정태는 그녀가 슬퍼 보였다.
“참 좋은 생각을 갖고 계신 거 같아요. 얘기 잘 들었어요. 내일 아침 일찍 수술 있는 거 아시죠? 그럼 푹 쉬세요. 필요한 것 있으면 여기 인터폰 누르시면 되요.”
간호사는 진료카드와 주사기 그릇을 들고 병실을 나갔다. 정태는 병실을 나가는 그녀를 보며 뭔가 다른 간호사와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연은 병실을 나와서 문 앞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참았던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 사람 앞에서는 보이고 싶지 않은 눈물이었다.
‘바보, 하필이면 … 그런 감성에 젖어서 …….’
수연은 고개를 들었다. 아빠가 보고 싶어졌다. 가슴이 저려왔다. 눈물샘이 터졌는지 자꾸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 많던 사람들이 자신의 앞에서 임종을 마쳤을 때도 이토록 눈물을 흘린 적은 없었다. 아니 어느 순간부터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마르면 슬퍼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언제부턴가 그렇게 수연의 눈에서 사라졌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아빠, 보고 싶어요?’
수연은 병실 안쪽을 힐끗 살폈다. 그는 여전히 창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연은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눈물을 손으로 훔치고 난 후 병동 데스크로 걸음을 옮겼다.
밤은 더 깊어졌다. 창밖의 다양한 불빛들이 정태의 병실을 비추고 있었다. 정태는 책을 읽다가 간호사가 한 말이 생각났다.
‘여기는 암 병동이어요.’
정태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정태는 수액 폴대를 끌고 병실을 나왔다. 복도는 사람이 다닐 정도의 불빛만을 남겨두고 모두 꺼져 있었다. 열린 병실 문 사이로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옆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 어둠이 짙게 깔려서 그런지 병실의 분위기가 하나같이 침울해 보였다. 침대 옆에 앉아서 환자를 바라보는 모습이 각 병실마다 비슷했다. 어떤 병실은 아예 외부인 출입을 금하는 푯말이 붙인 채로 굳게 닫혀 있었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환자들도 머리에 모자를 눌러 쓰고 있거나 머리카락이 다 빠져서 민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 또한 어두워 쓸쓸해 보였다.
‘나 빼 놓고는 정말 다 환자들이네.’
정태는 자신의 손등에 꽂혀진 주사바늘과 수액 통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이거라도 맞고 있으니 다행이네.’
정태는 환자복만 입고 다니는 것이 미안해서 자신의 병실로 방향을 틀었다. 병동 데스크에 정태의 병실에 왔던 간호사가 차트를 보며 다른 간호사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병실 문 앞에 자신의 이름과 간호사의 이름이 같이 붙어 있었다.
‘간호사 최수연’
정태는 데스크를 쪽을 바라보았다.
불을 끄자 방 안은 더 적적했다. 창밖의 불빛들도 차츰 사라지고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도 차들도 이제는 한산했다. 밤이 깊어 갈수록 두려움이 정태를 엄습해 왔다. 죽음의 그림자가 하나 둘 정태의 병실로 들어와 침대 주위에 몰려 있는 거 같았다. 죽음은 병든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처럼 건강한 사람을 찾아와 기를 다 빨아 갈 거 같았다.
‘여기 와서 처음으로 죽음이란 걸 생각해보게 되네.’
먼 얘기 같은 죽음이 정태에게 현실로 다가왔다.
‘수술이 잘 못 되면 어쩌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정태는 불안했다. 정태는 침대에 누었다. 잠은 오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수 없이 잠을 자 봤지만 이곳은 느낌이 달랐다.
‘사람이 병원에만 오면 이렇게 약해지는 걸까?’
정태는 시계를 봤다. 그리고 병실 문을 바라봤다.
“나 내일 모래 수술한다. …… . 올 거지?”
정태는 어렵게 입을 땠다. 사실 그 전에 혜수에게 나눈 의례적 대화들은 지금 이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
“오빠, 수술 잘 받아!”
수화기 너머로 혜수의 밝고 명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 올 거니?”
정태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내가 거기를 왜 가?
혜수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에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기다릴게. 꼭 와야 해. 네가 와서 나 간호해 줘야지?”
정태는 애써 웃으면서 농담같이 말을 이어갔다.
“기다리지 마! 안 갈 거니까.”
혜수는 여전히 애교 섞인 웃음 띤 목소리로 정태를 위로하듯 말했다.
혜수는 그렇게 말하고 오지 않았다.
‘오늘은 안 오겠지?’
정태는 이유 없이 다시 시계를 바라봤다. 그리고 또 한 번 병실 문을 바라봤다.
‘내일 올까?’
정태는 혜수가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어 버린 것이 내내 찝찝했다.
‘이미 내 마음을 눈치 챈 걸까?’
정태는 후배인 혜수가 어느 순간부터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신도 부정하려고 했지만 마음은 계속 혜수를 향해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었다. 몸과 머리가 정태를 괴롭힐수록 정태는 그 사이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혜수도 그런 정태를 어느 순간부터 눈치를 채고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정태의 마음은 간절해 졌다. 하지만 혜수는 더 이상의 거리는 허락하지 않았다.
‘혜수도 알까?’
정태는 혜수가 그리웠다.
‘기다리면 올까?’
하지만 언제까지 그리운 마음만 갖고 혜수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야.’
정태는 자신만의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내일 온다면 ……, 하지만 오지 않는다면 ……,’
정태는 혼자 하는 사랑이 점점 힘들었다. 언젠가 혜수가 자신에게 올 것이란 믿음이 창밖에 하나둘씩 꺼져가는 불빛처럼 점점 사라져갔다.
“뭐하세요?”
혜수에게 문자를 끝마칠 무렵 수연이 병실로 들어오며 물었다. 정태는 머쓱해하며 핸드폰을 옆으로 치웠다. 수연은 공 3개가 들어 있는 장난감 비슷한 기구를 갖고 들어왔다.
“심심하시죠?”
수연은 미소를 띠며 정태에게 물었다.
“……?”
“심심해 할 것 같아서 제가 재미난 장난감 같고 왔어요.”
수연은 천연덕스럽게 농담을 하며 정태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 수연이 정태는 밉지 않았다.
“마침 저도 심심하던 차에 잘 됐네요. 근데 이게 뭡니까?”
정태는 기구와 수연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폐활량을 높이는 거여요. 수술 받기 전까지 이 공 3개를 한 번에 다 위쪽까지 끌어 올려야 되요. 자 한번 해보세요?”
수연은 기구를 정태에게 건네며 말했다. 정태는 호스에 입을 갖다 대고 훅 불었다. 그러나 공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수연은 웃으며 정태에게 말했다.
“밖으로 부는 게 아니라 안으로 깊게 숨을 빨아들이는 거여요.”
수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수연의 얼굴이 한순간 일그러졌다. 정태는 수연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웃음이 나와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정태는 호스를 물고 있는 힘을 다해 공기를 들이마셨다. 공 한 개가 겨우 움직였다.
“쉽지 않죠? 다 올라 올 때까지 계속해야 돼요.”
정태는 반복하여 공기를 힘껏 들이마셨다. 그러나 공은 여전히 잘 올라오지 않았다. 올라올 듯 하다 중간에서 멈추고 다시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정태는 머리가 명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몇 번 하지도 않았지만 피곤함이 몰려왔다. 수연이 정태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시고, 천천히 쉬면서 하세요.”
정태는 수연의 말에 호스를 내려놓고 침대에 누웠다. 정말 환자가 된 듯 한 느낌이 들었다.
“29살 이세요?”
수연의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네? …….”
“전 28살 이여요.”
“… 저 ….”
갑작스런 일이었다. 수연은 말을 끝내자마자 병실을 나갔다. 정태는 황급히 나가버리는 그녀의 뒷모습만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
수연은 급히 병실을 빠져나와서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저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한 거야? 미쳤어, 미쳤어.’
수연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한 말을 되 집어 봤다. 수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신의 마음이 보여 진 거 같아 속상했다. 수연은 자신의 입을 몇 번 손으로 때렸다.
“입이 방정이야!”
수연은 계속 자신을 질책했다. 정태와 자신은 환자와 간호사 사이였다. 특별히 정태에 대해 환자 그 이상으로 대할 필요도, 알 필요도 없었다. 그것은 불문율과도 같았다. 그리고 정태는 내일 모래면 퇴원할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태의 선한 얼굴과 순수한 마음이 수연이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건 자기도 모르는 본능이었다.
‘아냐 이제껏 맨날 우울하고 아픈 환자만 만나다 멀쩡한 사람을 만나서 그럴 거야. 다를 거 없잖아?’
수연은 자신의 마음을 달래었다.
‘이게 다 아빠 때문이야.’
수연은 갑자기 아빠가 떠올랐다.
아빠는 5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수연아, 엄마 오늘 못 들어 갈 거 같으니 네가 정연이 밥 좀 챙기고 재워줄 수 있지?”
엄마는 애써 침착 하려고 했지만 떨리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그대로 전달되었다.
“왜? 엄마, 무슨 일인데?”
수연은 갑자기 겁이 났다. 한 번도 엄마가 집에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빠가 쓰러졌어. 지금 병원에 와 있는데 정밀검사를 해야 한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엄마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더 떨렸다. 엄마도 많이 놀란 거 같았다.
“아빠 많이 아파? 어디가 아픈 건데?”
수연은 재촉하듯 엄마에게 물었다.
“아직 자세한 건 몰라. 회사에서 갑자기 쓰러졌다고 해서 엄마도 방금 병원에 와서 아빠보고 전화하는 거야. 별일 없을 거야. 의사 선생님이 그래도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는 병원에 입원해 있으라고 하니 바로는 못 갈 거 같아.”
10년 전 아빠는 그렇게 갑자기 쓰러졌다. 그리고 별일 없을 거란 엄마의 바람은 무참히 짓밟혀 졌다. 다시 예전의 건강한 아빠의 모습은 더 이상 없었다.
아빠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경우란 이런 것일까? 아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해야 하나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가족들 모두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만성골수성백혈병 자체가 오랜 기간 동안 별 증상이 없다가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했다. 최근 힘들어 하는 아빠를 가족들은 야근을 많이 해서 그렇다고 넘어간 게 잘 못이었다.
그렇게 5년을 치료에 전념했지만 아빠는 더 진전되지 않았다. 화목했던 가정은 점점 말이 없어졌다. 엄마는 일터로 나가야 했고, 주말이면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러 다니는 게 일상이 되었다. 수연의 진로도 아빠의 백혈병 진단 이후 변경이 되었다. 수연은 학업을 포기하고 엄마와 함께 생활전선에 뛰어들려 했지만 엄마는 그래도 대학을 가야 한다고 하여 간호학과에 입학을 하였다. 간호학과에 입학 후 아빠의 건강관리는 수현의 몫이 되었다. 하지만 아빠의 상태는 좋아지는 듯 하다 다시 나빠졌다. 그런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고가다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수연아, 아빠와 맞는 사람이 나타났대?”
엄마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빠 옆에 있던 수연에게로 다가오며 말했다.
“여보, 이제 당신 살 수 있어!”
엄마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얼굴은 밝게 웃고 있었다.
“엄마, 무슨 말이야? 아빠가 살 수 있다니?”
수연은 다급히 엄마에게 물었다. 아빠도 엄마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과 일치하는 기증자가 나왔대. 면담을 했는데 저쪽에서 하겠다고 했나봐.”
세 사람은 서로를 얼싸안고 펑펑 울었다. 정말 오랜 투병 생활 끝에 한줄기 희망을 보는 거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불과 며칠뿐이었다. 순조롭게 기증 절차가 진행되는 거 같았는데 막판에 기증자가 기증을 거부했다고 했다. 이유는 잘 알 수 없지만 협회에서는 가족들의 반대가 심해서 할 수 가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수연이네 가족은 백혈병 선고를 받았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었고, 아빠는 더 큰 상심에 빠졌는지 그 이후로 병세가 악화되어 결국 돌아가시고 말았다.
‘차라리 그 얘기를 듣지 말았더라면 …….’
“최 간호사 뭘 그리 생각해?”
수간호사가 수연 앞으로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수연은 깜짝 놀라 순간 몸을 뒤로 뺐다. 그 순간 의자가 뒤로 젖혀지면서 넘어질 뻔 했는데 수간호사가 재빨리 의자를 잡아줬다.
“뭐야?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어휴, 수간호사님 애 떨어질 뻔 했어요.”
수연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자기 임신했어?”
수간호사는 여전히 수연을 놀리며 말했다.
“왜 그러세요? 결혼도 안한 처녀에게 무슨 임신이여요.”
“그럼 일 안하고 뭘 그리 생각하는데 정신 팔고 있어? 병실 일지도 쓰다 말고.”
수연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급히 차트와 서류들을 정리했다.
‘내가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수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크게 쉼 호흡을 했다. 하지만 정태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정태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웠다. 그리고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머릿속이 복잡해 졌다.
‘아냐, 그러면 안 돼. 그건 계약 위반이야. 저 사람은 나의 환자야. 그 이상이 아니라고.’
“일에 집중하자. 최수연!”
수연은 정태의 병실 쪽을 힐끔 바라보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어둠이 드리워진 복도 창가에서 한 줄기 불빛이 복도를 밝히고 있었다.
정태는 쓰다 만 문자를 다 쓰고 난 후 창밖을 보며 혜수를 생각 했다. 오늘 따라 그리움이 절절했다.
‘혜수는 나를 사랑하지 않은 걸까, 아니면 나에게 정말 아무런 감정이 없는 걸까?’
저 멀리 한강의 다리가 희미하게 보였다. 정태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아직 버튼을 누르지 않은 상태였다.
‘싫은 건 아닌 거 같은데 … 그런데 왜 나에게 그렇게 대할까?’
“오빠, 뭐해? 나 배고프다 밥 사줘라?”
“내가 오빠 심심해 할까봐서 밥 같이 먹어주는 거야!”
“혜수야! 날도 그런데 술이나 한잔 할까?”
“하하 비오는 날, 막걸리에 파전 좋지. 성수하고 정현이도 부를까?”
“오빠하고 내가 연인도 아닌데 둘이 영화 보러 가긴 그렇잖아 …….”
“야! 연인들만 영화관 가냐? 짝 없는 사람들끼리 서로 부조하는 거지.”
“하하, 그래 그럼, 서로 적선할까?”
‘난 너와 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
혜수는 언제나 가까워지는 거 같다가 다시 멀어지기를 반복 했다.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정태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가 여운만 남기고 다시 저 먼 바다로 떠나갔다.
‘민우의 말처럼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정태는 핸드폰을 다시 켜 문자 내용을 확인했다.
‘정말 넌 지금까지 나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는 거니?’
아직 밤바람은 차가웠다.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느낌이 좋았다. 몸을 약간 움츠렸지만 혜수는 눈을 감고 찬바람을 느꼈다. 머리가 맑아지며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혜수는 베란다에 서서 정태를 생각했다.
‘병실에서 뭐 하고 있을까?’
혜수는 핸드폰을 바라봤다. 며칠 전 전화가 온 이후로 정태의 연락은 없었다.
‘삐졌나? 병원에 입원했다고, 빨리 와서 간호해 달라고 연락 올 줄 알았는데 …….’
혜수는 정태가 좋은 오빠로 남아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정태는 그 이상을 바라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정태의 그런 행동에 혜수는 의식적으로 피하거나 매몰차게 거절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행동이 정태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혜수는 알고 있었다. 사실 정태가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것 또한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태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오빠가 아직은 남자로 안 느껴지는 걸 어떡해. 나에겐 시간이 더 필요해 오빠.’
꼭 와달라는 정태의 마지막 말이 혜수의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다.
“수술 잘 받아 오빠!”
혜수는 입가에 두 손을 모으고 바람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어둠이 사라지고 밝은 기운이 창밖에서 침대 쪽으로 서서히 들어오고 있었다. 수술을 하려면 아직도 한 시간 이상 더 남았다. 정태는 새벽부터 잠이 오지 않아 계속 뒤척이고 있었다. 조금씩 긴장이 됐다. 정태는 민우를 바라봤다. 수술할 때 같이 있어 주겠다고 어제 저녁 늦게 민우가 찾아왔었다. 피곤한지 비좁은 간이침대에서 민우는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다.
‘자식, 엄청 고네.’
문득 자신이 깬 것이 긴장감 때문인지 민우의 코고는 소리 때문인지 구분이 안 갔다.
‘네가 있어 다행이다.’
정태는 민우의 잠자는 얼굴을 보며 미소가 나왔다. 별거 아니라 생각했지만 막상 수술 시간이 다가올수록 정태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늦게라도 오겠다는 민우의 말을 못 이기는 척 받아 넘겼었다.
‘야! 혼자 있으면 심심하지? 술이라도 사 갖고 갈까?’
정태는 민우가 어제 한 말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술 안 마신지도 벌써 한 달이 되어가고 있네.’
정태는 술을 끊은 건 아니지만 자발적 금주를 하고 있었다. 민우는 술 대신 음료수와 요거트를 사들고 왔다. 둘은 자정이 넘어서까지 얘기를 하다 잠이 들었다.
“정태야, 술 안 먹고 맨 정신에 남자하고 자정 넘겨서까지 얘기하는 건 처음이다. 재미없다. 자자.”
민우는 그렇게 말하고 지금껏 잠들어 있었다.
‘고맙다. 친구야.’
정태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민우가 있어서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태는 눈을 감았다. 조금이라도 잠을 청해 보려 했지만, 이미 잠은 다 달아난 뒤였다. 정태는 자신이 알고 지냈던 사람들을 떠 올렸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 졌다. 자신을 사랑해 주고 사랑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시계는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태는 세수를 하려고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 왔다. 민우가 깼는지 몸을 움직였다.
“몇 시야?”
민우가 한쪽 눈만 뜬 채 정태를 바라보며 물었다.
“7시, 불편했지?”
정태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민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밖에 나오면 잠을 잘 못 자는데 잘 잔거 같아. 좀 찌뿌둥하긴 하지만 … 그런데 뭐 해?”
민우가 크게 하품을 하며 말했다.
“세수하려고, 수술실 들어갈 때 깨끗하게 하고 들어가야 될 것 아니야.”
“환자가 무슨.”
민우가 웃으며 말했다.
세수를 하고 나서 정태는 가방에서 자신이 어제 준비해 온 선물들을 하나 둘씩 꺼내 민우에게 보여 주었다.
“수술할 때 협회에서 사람이 올 거야. 그 분 오시면 이거 줘, 그리고 이건 너 갖고 …….”
“야, 어디 죽으러 가냐? 수술 전에 이런 거 주고 그러는 거 아니야. 주고 싶으면 수술 끝나고 나서 네가 직접 줘!”
민우가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정태는 민우에게 준 선물들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그런가?”
정태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겁나니? 죽음을 앞둔 사람이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씩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 같아?”
민우는 정태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꼭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미리 주고 싶어서 그런 거지.”
정태는 말은 안 했지만 민우의 말처럼 혹시 모를 불안감 때문에 미리 준비해 온 것들을 주고 싶었다. 병실 문이 열리면서 남자 간호사가 침대 하나를 갖고 들어오면서 정태를 찾았다.
“김정태님 준비 다 되셨죠? 이 수술복으로 갈아입으세요. 속에는 아무 것도 입으시면 안 됩니다.”
정태는 걸어 갈 수 있는 수술실을 침대에 누워서 가는 것이 영 어색했다. 남자 간호사는 익숙한 듯 침대를 운전하고 있었고, 민우는 침대 뒤를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복도 위에 점점이 켜져 있는 불빛들과 함께 주변의 모습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마치 어느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가듯 침대는 빠르게 수술실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정태는 수술실과 가까워질수록 불안감이 커졌다.
이른 아침인데도 수술실 입구에는 벌써 여러 개의 침대에 환자들이 누워서 수술실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러시아워가 따로 없었다. 마치 정지선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차들 마냥 일렬로 늘어선 침대들은 수술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 같았다. 수술실 입구 문이 열리고 침대가 하나씩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자 24개의 수술 방을 표시하는 램프에 불이 들어왔다. 정태의 침대도 수술실 입구를 향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 남편 좀 불러줘요.”
옆 침대의 아주머니가 아저씨를 찾았다. 환자 대기실 입구 쪽에 있던 아저씨가 황급히 와서 아주머니의 손을 잡았다. 정태는 그 모습이 부럽고 정다웠다.
“잠깐 귀 좀 가까이 대봐요.”
아주머니의 말에 아저씨가 아주머니 입 쪽으로 귀를 가져갔다. 아주머니는 아저씨의 귀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옷장 작은 서랍 끝에 통장 넣어 놨어요. 비밀번호는 애들 생일이야.”
정태는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아주머니는 작게 얘기한다고 했지만 정태에게 그 소리가 다 들렸다.
“뭐라 하는 거야?”
아저씨는 굽혔던 허리를 폈다. 그리고는 정태를 한번 슬쩍 봤다. 정태는 고개를 돌렸다.
“난 못 들었으니 수술 끝나고 회복 된 다음에 당신이 찾아. 왜 그걸 나에게 말해? 잘 될 거야 ……, 너무 걱정하지 말어!”
아저씨의 단호하면서도 긴장된 목소리였다. 아주머니의 약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정태는 다시 아주머니를 살폈다. 아주머니가 측은해 보였다.
‘나도 아침에 그랬었는데 …….’
정태는 아까 민우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수술실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마음은 다 똑같나 보다.’
정태는 민우를 살짝 봤다. 민우도 정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혼자가 아니란 생각이 드니 마음이 편안해 졌다.
‘저 아주머니의 병은 무엇일까? 왜 수술을 하는 걸까?’
정태는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수술실 문이 열리고 대기하고 있던 아주머니의 침대가 들어갔다. 정태의 침대도 따라 들어갔다.
“수술 잘 받고 와!”
민우의 짧은 소리가 정태의 귀에 들렸다.
허리에 통증이 오는 것이 느껴졌다. 정태는 눈을 떴다. 주변에는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수술은 다 끝난 건가?’
정태는 수술실에 들어가자마자 백열전구 등이 여러 개 달린 수술대 위로 옮겨졌고, 얼굴과 가슴에 전선이 연결되어 있는 것들을 붙이는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그리고 왼쪽 손등에 꽂혀 있던 주사바늘에 수액호스를 연결하고, 의사가 주사를 놓은 후로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태는 그것이 마취주사였다고 생각을 했다.
‘언제 옷이 벗겨졌을까?’
정태는 자신의 몸에 아무 것도 걸쳐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얇고 흰 이불이 정태를 덮고 있었다. 수술실에 여러 명의 여자 간호사들이 있었던 기억이 나자 정태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어제 내 방에 온 그 간호사는 없었겠지?’
정태는 언제 이곳으로 왔는지, 그리고 이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환자들만 있고, 보호자는 없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의사와 간호사들만 있는 것을 봐서는 병실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정태는 갑자기 불안감이 밀려왔다.
‘여긴 어디지? 뭐가 잘 못 돼서 여기로 온 걸까?’
환자들의 신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정태도 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죽음의 곡소리처럼 들려서 싫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만약 수술이 잘 못 됐다면?’
정태가 이런 생각을 할 때 누군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으세요?”
간호사가 정태를 살피면서 물었다. 정태는 고통을 참으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허리가 끊어질 거 같이 쑤시고 아팠다. 의사가 와서 정태의 상태를 살피며 말했다.
“김정태님, 수술은 잘 됐습니다.”
“여기는 어딘가요?”
정태는 힘겹게 말을 땠다.
“이곳은 회복실이고요 상태 안정되시면 병실로 옮겨 드릴 겁니다. 그때까지는 좀 기다리셔야 해요. 불편한건 없나요?”
“허리가 아파요.”
의사의 말에 정태는 안심이 되었다. 정태가 병실로 옮겨진 것은 회복실에서 그렇게 30분을 더 있고 나서였다. 조금씩 자신의 몸에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다.
‘이제 정말 환자 같네.’
“괜찮으세요?”
수연의 소리에 정태는 잠에서 깼다. 수연이 수액통과 정태를 바라보며 물었다. 수술실로 들어 갈 때는 없었는데 아마도 지금부터가 그녀의 근무시간 같았다.
“예, 허리가 조금 아픈 것 빼고는 괜찮아요.”
간호사는 수액조절기를 살피고 시간을 체크하였다.
“민우야, 내 가방 좀 줘.”
민우가 정태에게 가방을 건넸다. 정태는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이 책 받으세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사왔던 책이었는데, 저 보다는 선생님에게 더 어울릴 것 같아서요.”
정태가 수연에게 책을 건넸다.
“아니, 괜찮아요.”
수연은 몸을 뒤로 뺐다.
“그냥 드리는 거여요. 재미있는 책이니까 잘 읽고 다른 환자들에게 얘기 많이 해 주시라고요.”
“다른 의미 있는 것 아니니까 받으셔도 돼요.”
민우가 옆에서 거들었다. 수연은 그제야 책을 받아 들었다.
“고마워요. 잘 읽을게요.”
수연은 책을 들고 병실을 나갔다. 정태와 민우의 눈이 마주쳤다. 정태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고통이 밀려와 정태는 다시 잠이 들었다.
수연은 책을 들고 병실을 나왔다. 그리고 책을 가슴에 품고 미소를 지었다.
‘의미 있는 건 아니라고?’
출근하자마자 제일 먼저 발길이 갔다. 자신이 왜 이곳에 먼저 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궁금했다. 수술이 잘 됐는지. 항상 수술이 있었던 환자에게 먼저 달려가던 자신의 습관을 떠올리며, 수연은 천천히 걸음을 병동 데스크로 향했다. 그러면서 수연은 환자가 준 책을 보았다. 얇은 비닐 덮개가 씌워 있었고 일상의 에피소드가 담긴 책이었다.
‘잘 읽고 다른 환자들에게 재미있는 얘기 많이 해 주세요.’
정태의 말이 수연이의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왜 이 책을 나에게 준 것일까?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알았을까?’
수연은 병동 데스크에 앉아 책을 손에 쥔 채 간호사로 첫 발을 내딛던 그날이 생각났다.
‘나이팅게일을 꿈꾸며 들어온 곳이었는데 …….’
수연의 아버지는 수연이 졸업하기 바로 전에 돌아가셨다. 딸이 간호사가 된 것을 항상 가슴아파했다. 수연의 꿈은 작가였다. 그래서 아빠가 아프기 전에는 글도 많이 쓰고 대회에서 상도 많이 탔었다. 아빠는 그런 수연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아빠 나 간호사가 되고 싶어.”
어느 날 대회에서 상을 타고 온 날 수연은 그렇게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때문이니?”
아빠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힘없이 말했다. 수연은 아빠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냐, 글 쓰는 게 이젠 재미가 없어졌어. 좀 더 의미 있는 하고 싶어서 …….”
“네 재주가 아깝지 않니?”
아빠는 퀭한 눈으로 수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빠, 이제는 행복하고 즐거운 글을 못 쓸 거 같아. 행복하지 않는데 행복한 글을 쓰는 게 가식처럼 느껴져. 그래서 싫어.”
수연의 눈에 눈물이 촉촉이 맺혔다. 아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간호사 시험을 치르러 가는 날 아빠는 수연의 곁을 떠났다. 시험 보는 내내 아빠의 환영 때문에 어떻게 시험을 봤는지 모르고 집에 왔는데 엄마와 정연이가 넋을 잃은 채 수연을 맞이했다.
‘아빠가?!’
수연은 방문을 열고 아빠를 불렀다. 하지만 아빠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아빠! 일어나! 내가 나간 사이에 이렇게 가는 게 어디 있어? 내 얼굴은 보고 가야지! 일어나 일어나란 말이야!”
수연은 아빠의 몸을 계속 흔들었다. 하지만 아빠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하염없이 울었는지 모른다. 순간 수연은 무슨 생각이 났는지 아빠의 귀에 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빠, 미안해 … 그리고 … 우리 아빠여서 … 행복 했어 … 사랑해 … 엄마, 정연이 … 내가 잘 돌볼게!”
수연은 눈물을 훔치며 마지막 한마디 한마디 또박또박 아빠의 귀에 속삭였다. 그리고 아빠를 꼭 껴안았다. 아빠의 몸은 아직도 따뜻했다. 수연은 마지막으로 아빠의 따뜻한 품을 느꼈다.
“아빠가 너 마지막 모습 보려고 지금껏 기다리다 방금 전에 가셨어.”
엄마는 수연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수연은 엄마를 안고 또 그렇게 울었다. 정연이도 옆에 와서 셋은 그렇게 한동안 아빠 곁에서 울었었다.
수연은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책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나도 한때는 작가가 꿈이었는데 …….’
수연은 책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빠, 나 지금 잘 살고 있는 거지?’
수연은 아빠를 조용히 불렀다.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 이었나 기억나지 않았다. 아빠가 병에 걸린 이후 집안은 항상 우울했다.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도 행복하지 않았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는데 …….’
가족들은 여전히 아빠를 기억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아빠의 빈자리는 쉽게 잊혀 지거나 채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간호사가 되어서 들어온 병실도 암병동 이었다. 처음에는 환자들을 아빠처럼 쉽게 떠나보내지 않겠노라고 다짐했지만 그건 수연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은 일상이 되었고, 지금은 죽어 가는 사람들과 고통 속에 삶의 회의를 느끼는 사람들 틈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죽음을 앞둔 그들에게 어떤 희망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이곳에서 누구보다 더 잘 알게 되었다. 지금은 단지 하루하루 이들이 고통 속에서 살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수연은 병실을 둘러보았다. 아직 다 피지도 못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꼬마 아이들도 있었고, 한평생 고생만 하다 이제 좀 편히 쉬려나 했는데 불치의 병을 얻은 환자들도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모두 제각각 사연들도 많았고, 살아야 하는 이유도 다양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공통점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이었다. 이곳에 온 이후로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많았던 그런 4년이었다. 수연은 책을 펼쳤다.
누군가 언제나 힘들고 지쳤을 때 희망과 기쁨을 줬으면 좋겠네요.
슬픈 일 있더라도 책 한번 읽고 웃으면서 훌훌 털어 버리세요. - 엉덩이에 털(?) 나도 책임 못 짐.
당신의 웃음이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거여요.
항상 웃으세요. 이렇게 ^.^
- 건강하게 퇴원할 환자가 -
하얀 백지 위에 정태가 쓴 글이었다. 수연이의 입가에 미소가 띄워 졌다. 수연은 정태가 있는 병실을 바라보았다.
‘고마운 사람이야.’
수연은 가슴에 책을 품었다. 정태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정태는 한발 짝 한발 짝 발을 내딛는 게 여간 힘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쌩쌩하게 걷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정태는 그래도 마음은 편했다. 어제는 복도를 지나면서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환자가 갖추어야 될 구색은 어느 정도 갖추고 걷고 있었다.
한 걸음 내 딛는 것이 천근을 옮겨 놓는 것보다도 힘들었지만 어느 새 정태는 복도 끝까지 가고 있었다. 병실들은 언제나 조용했다. 면회를 오는 환자들도 많지 않았다. 오직 환자와 병마만이 이곳에 있었다.
정태는 어느 한 지점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정태는 굳게 닫혀져 있는 문을 응시했다. 문 위에 ‘조혈모세포이식센터’란 현판이 보였다.
‘이식 수술은 하고 있는 걸까?’
정태는 그때까지 잊고 있던 수여자를 생각했다. 정태는 자신의 골수를 받을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정태가 수여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태는 문 가까이 다가가 유리를 통해 안을 들여다보았다. 안은 병실보다 더 깊은 고요가 흐르고 있었다. 문득 수여자가 이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 또래라면 나처럼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연애도 하고 싶어 하겠지?’
정태는 병실로 발길을 돌렸다.
혜수는 끝내 오지 않았다. 퇴근 했을 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바보지.’
정태의 얼굴에 썩소가 피었다. 정태는 혹시나 하는 미련을 가진 자신을 책망했다. 창 너머 아파트에는 불들이 거의 다 켜져 밝게 빛나고 있었다.
‘저쪽에서 바라보는 이쪽은 어떨까? 공간을 사이에 두고 이렇게 느낌이 다를 수 있을까?’
혜수는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지금이라도 오빠에게 가볼까?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
혜수는 시계를 보았다. 8시가 넘었다.
‘너무 늦었어.’
혜수는 체념을 하고 승강기의 수위치를 눌렀다.
‘수술은 잘 끝났을까? 잘 끝났겠지?’
혜수는 자기 최면을 걸 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늘 하루 정태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왜 전화가 안 올까? 전화해 볼까? 전화 못할 상황인가? 혹시 잘 못된 건 아니겠지? 수술 끝나면 전화 할 줄 알았는데 …….’
혜수는 오늘 하루 종일 전화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전화는 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계속 복잡했다.
‘내가 먼저 전화 해 볼걸 그랬나?’
승강기 문이 열렸다. 내려야 했지만 망설이고 있었다. 가슴이 텅 빈 거 같았다.
‘오빠의 빈자리가 이렇게 컸나?’
깊은 한숨 속에 그리움이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혜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헛된 동정심이야. 이 일만 지나면 다시 또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거야.’
“오빠, 미안해!”
병실은 정태의 머리 위에만 불빛이 있었고 주변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간병인 아주머니는 깊게 잠들어 있었다.
처음 아주머니는 정태를 보자마자 놀란 얼굴이 되었었다.
“어! 환자가 아니네.”
아주머니가 정태를 보고 처음 한 말이었다.
‘귀신같아, 수술을 마친 후였는데도 아주머니의 눈에는 내가 환자로 보이지 않았나 봐.’
정태는 물끄러미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많이 힘드셨나 보다. 허긴 긴장된 생활의 연속이었을 텐데 …….’
문에 나 있는 유리로 누군가 서성이는 모습이 보였다. 정태는 문 쪽으로 시선을 고정하였다. 밖에서 이쪽과 눈이 마주쳤는지 문이 열렸다. 수연 간호사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간병인 아주머니가 본능적으로 잠에서 깼다. 긴장된 생활이 몸에 배어서 일까 작은 인기척에도 아주머니의 몸은 본능적으로 반응을 하고 있었다. 수연은 들어오려다가 간병인 아주머니를 보고는 문 앞에서 이야기를 하였다.
“내일 퇴원하시죠?”
수연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 퇴근하시나 봐요?”
정태가 웃으며 물었다.
“네, 책 잘 읽을게요. 그리고 환자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 많이 해 줄게요. 건강하세요?”
“……!”
수연은 고개를 까닥 하고 수줍은 미소를 띠고 문을 닫았다. 정태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끝내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인연이 되면 …….’
정태의 가슴속에서 이런 말이 들렸다.
수연은 정태가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병실로 들어갈까 말까 고민 했었다. 정태의 머리맡에 불이 켜져 있었지만 정태의 움직임은 없었다.
‘그냥 가야 하나? 이대로 가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데 …….’
수연의 마음은 그냥 돌아가야 한다고 하지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들어가서 깨워볼까?’
병실 앞에서 찰나의 순간에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낮에도 자주 드나들던 병실인데 왜 못 들어가?’
수연은 가슴이 조마조마 했고, 콩닥콩닥 심장이 뛰었다. 너무 긴장을 했는지 머리까지 울렸다. 수연은 병실 안을 다시 살폈다. 그때 저쪽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수연은 얼굴을 획 돌렸다.
‘어머, 어떡해.’
수연은 자신의 행동을 고스란히 정태에게 들킨 거 같아 부끄러웠다.
‘아, 깨어 있었구나! 그래도 다행이야.’
수연은 병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가려진 커튼 사이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 아주머니가 있었지.’
수연은 간병인이 있다는 것을 깜박했다. 수연은 더 들어가려다가 말고 문 앞에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나왔다. 조금 전까지 문 앞에서 고민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안에 들어가지도 못할 거면서 왜 그랬대?’
수연은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하루라도 더 있었으면 …….’
수연의 입에서 아쉬운 한숨과 함께 흘러 나왔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작은 웃음이 흘러 나왔다.
‘환자에게 병원에 조금 더 있기를 바라다니 …….’
“몸이 불편하면 하루 더 있어도 괜찮아요.”
협회에서 나온 직원이 정태의 몸 상태를 살피며 말했다. 정태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아뇨, 수여자에게도 부담되는 거 싫어요.”
퇴원 수속은 의외로 빨리 진행되었다. 시간은 오전 11시를 조금 넘겼다. 정태는 방 안을 천천히 살폈다. 떠나는 것이 아쉬웠지만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간호사가 와서 앞으로 주의할 점과 약들을 챙겨 주었다. 정태는 간호사가 하는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만 끄덕이면서 연신 병실 문 쪽을 힐끔힐끔 바라 보았다.
‘아직 출근 전인 가 보내. 마지막 인사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
정태는 어제 저녁 그렇게 인사를 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아주머니만 없었어도 …….’
괜히 옆에 있던 간병인이 원망스러웠다. 간병인이 필요 없다고 얘기는 했지만 협회에서는 혼자 둘 수 없다고 굳이 간병인을 붙여줬었다.
‘전화번호라도 알면 좋았을 텐데 …….’
정태는 계속 미적거렸다. 옷장을 다시 열어도 보고 나두고 가는 물건이 없는지 살피고 침대 주변도 살피고 화장실도 다시 살피고를 반복했다.
“이제 갈까요?”
협회 직원이 정태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네, 가시죠.”
정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병원 밖은 화창한 봄 날씨였다. 햇빛이 따사로이 정태의 얼굴을 비췄다. 정태는 한동안 눈을 감고 서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수연은 간호사복으로 갈아입고 급히 병실로 갔다. 문 앞에서 병실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병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병실 앞 환자 이름표도 떼어진 상태였다. 다른 때보다 1시간이나 일찍 왔지만 정태는 벌써 퇴원을 한 후였다.
‘기대를 한 게 잘 못이지.’
수연은 병실 문을 열고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다. 정태가 있었던 흔적이라도 찾고 싶었다. 그러나 병실은 새 환자를 맞이하기 위해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다. 수연은 정태가 누었던 침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창가로 가서 정태가 바라보듯 창밖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수연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수연은 얼른 눈물을 훔치고 재빨리 병실을 뛰쳐나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