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이잉~~~”
기계음 소리 이외에 모든 소리는 다시 숨죽이고 있었다.공간 속에 긴 침묵과 긴장감만이흘렀다. 어느 누구도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지켜지고 있었다.
“으으으윽 ….”
상우의 입에서 들릴 듯 말 듯한 신음소리가 침묵을 깨는 거 같았지만 이내 소리는 기계음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려 어느 누구도 상우가 소리를 낸 거조차 알지 못했다.
상우는 본능적으로 다시 바짓가랑이를 양손으로 부여잡았다. 온 몸에 힘이 들어갔다. 어느새 몸은 꽁꽁 언 동태처럼 굳어 버렸다. 철물점에서나 어울릴 것 같은 펜치와 커다랗고 두툼하면서 끝이 가늘고 뭉툭한 송곳 같은 것이 다시 상우의 입 속으로 들어왔다.
주변의 사물들은 여전히 숨을 죽인 체 한 남자와 한 여자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오직 간호사의 손에 쥐어 있는 긴 빨대만이 이들의 긴장감과는 무관하게 정적을 깨며, 입 속에 고여 있는 붉은 물을 진공청소기처럼빨아 대고 있었다.
벌써 한 시간째,수많은치과 도구들이 상우의 입 속을 바삐 왔다 갔다 하고 있었지만, 사랑니는 그 자리에서만 움직일 뿐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치과의사인 미라도 점점 지쳐 가고 있었다.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미라는 상우의 입속과엑스레이 사진을 번갈아 바라보며 쉼 없이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벌써 이러기를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미간에 주름이 다시 번졌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거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미라는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이대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의사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미라가 잠시 멈출 때마다 상우의 경직된 몸은낙지처럼 흐믈 거리듯 가라앉았다.미라는 다시 포셉을 단단히 쥐고 좌측 아래쪽 사랑니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럴 때마다상우의 얼굴과 몸도 따라 움직였다.무의식적으로 손목에 힘이 갔다. 지도 위의 도로를 나타내듯 파란 줄이 손등에서부터 손목에 이르기까지 울퉁불퉁 튀어 나왔다. 상우는 힘대결이라도 하듯 미라가 힘을 쓰면 자신도 모르게 온몸이 뻣뻣해 지면서 같이 힘을 쓰고 있었다.마치 두 사람은 씨름선수가 된 듯,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다.
‘잘 하고 있는 걸까?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걸까?’
상우는 예전부터 다녔던 치과를 가지 않을 것을 후회했다.
‘그냥 가던 곳을 갔었어야 했나. 지금이라도 그냥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일어날까?’
상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복잡한 마음이 일었다.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기에 더 긴장되고 초초했다.
상우가 단골로 다니던 병원은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와 함께 다녔던 곳이라 치과 선생님하고도 매우 친했다. 그런 곳을 나두고 개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곳을 찾았던 것은 자신의 아픈 상처를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로부터 사랑니는 날 때도 뺄 때도 힘들다고 얘기는 들었지만이정도로 힘든 고통이 있는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상우는 점점불안해 졌다.눈 주위를 가리긴 했지만커다랗고 예리한 도구들이 수없이 입 속을 오가며 턱 주위로 힘이 가해지는 것을 느낄 때마다 그것들이 목젖이나 입 속 어딘가를 찌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상우의 마음도 점점 더 복잡해져 갔다.
‘그만 하자고 할까? 아냐, 괜히 그랬다가 저 사람 기분 나쁘게 할 수 있어.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 나만 참으면 되지. 믿자, 믿어!’
그러나 그러한 믿음은 흔들리는 갈대처럼 수시로 오락가락했다.
‘잘 될 거야. 걱정 안 해도 돼. 조금만 참으면 다 해결될 일이야. 별거 아니잖아 그냥 이 하나 뽑는 건데 …’
상우는 속으로 자신의 마음을 잡고 또 잡아 보았다. 상우는 사랑니가 잘 빠지길 간절히 바랐다.그리고 사랑니만 뽑을 수 있다면 이 정도의 두려움쯤은 거뜬히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상우는 다시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주위로 눈물이 살짝 흘러내려 귓불을 적셨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