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사랑니도 자신을 끈질기게 괴롭히고 있었다. 쉽게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지수에 대한 사랑은 혼자 있을 때마다 그를 찾아와 머물다 가곤 했다. 그리고 떠나가 버린 그 빈자리의 쓸쓸함을 되새김할 때면, 마음의 상처가 더 깊어졌다.
상우는혼자 있는 시간을 없애기 위해 사람들과 자주 어울렸다. 그러나 모두 흩어지고 나면 지수에 대한그리움은 언제나 쭉 상우의 곁에 있었던 것처럼, 어느새 그의 팔에 팔짱을 끼고 다정히 나타났다.그리고는 찰거러미처럼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입 속을 가득 채웠던 도구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미라는 큰 한숨을 내 쉬었다. 상우는 눈을 떠 가름막 사이로 살짝 보이는 미라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마에 맺힌 땀들을 닦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마스크는 크게 몰아쉬는 숨소리로 인해 입 주위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어깨는 축 처져 있었고, 눈도 초점을 잃은 사람처럼 그냥 힘겹게 상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되고 있는 혈전이었다. 마취의 느낌조차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뽑을 수 있을까? 사랑니 하나 뽑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텐데 ……. 널 잊는다는 게 …, 이렇게 어려운 걸까?지수야 ….’
미라의 입은 바짝 바짝 타 들어갔다. 대학 때와 인턴, 레지던트 과정 때 배웠던 모든 지식과 경험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상우의 사랑니는 좀처럼 뽑히지 않았다. 미라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변해 있었고, 턱에 힘이 가해졌다.
엑스레이 사진을 다시 살펴봤다. 그러나 엑스레이 사진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엑스레이 사진에는 뿌리 부분이 휘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무슨 실수를 하고 있는 걸까? 혹시 뿌리가 옆으로 휘어져 있는 걸까?’
미라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뿌리 부분이 휘어져 있지 않다면 엘리베이터와 포셉으로 밀어 제쳤을 때 뽑혀져 나왔어야 했지만, 사랑니는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끊임없이 한숨만 흘러나왔다. 미라의 머릿속은 이런 저런 생각으로 복잡해 졌다. 갑자기 머릿속이 윙윙거리며 현기증이 느껴졌다.
‘왜 저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걸까? 아프다고 소리라도 지르면 오늘은 그만하고 내일 하자고 할 텐데 ……. 엑스레이를 다시 찍어 볼까?’
미라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땀방울이 눈가를 타고 내려 왔다. 온 몸이 땀으로 덮여 가고 있었다. 등줄기를 타고 내린 땀방울들이 허리를 지나 엉덩이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잠깐 쉬었다 하죠?”
미라는 마스크를 벗으면서 상우에게 말했다. 상우는아무 말이 없었다. 미라는 상우도지쳐 있다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가운을 벗고 세면대로 갔다. 축 늘어진 어깨와 핏기 없는 얼굴에 처진 눈을 한 여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한이 많아 떠나지 못하는 망자의 설움이 느껴졌다. 한풀이라도 하려는 듯 그녀는 미라를 애원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한없이 서럽게 느껴졌다.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만졌다. 손이 그녀의 얼굴에 닿는 순간 물보라처럼 그녀의 모습 또한 점점 주변으로 번져 가더니 거울 속에서 사라졌다. 미라의 손이 얼굴로 갔다. 오래 전 자신의 사랑니에 대한 추억이 떠올랐다. 자신과 자신의 일부분을 앗아갔던 사람 ……. 문득 아직도 사랑니가 남아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