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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Mar 01. 2024

내가 실패했다는 느낌이 들 때

특별하고 싶지만, 특별함의 증거를 찾지 못한 데이터 분석가에게

인생이 내 맘대로 풀리지 않는 것 같다는 순간들이 있다. 아니 사실 꽤 많다. 열심히는 하고 있지만, 조직에 어떤 가치를 기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느낌, 나름대로 용기를 내어한 말이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만들어 낼 때의 당혹감, 기대보다 나쁜 평가를 받았을 때의 씁쓸함 등이 올 때면 인생이 무언가 벽에 막힌 것 같다는 생각과 동시에 나 스스로도 나에 대한 자괴감이 밀려와 몸 둘 바를 모르게 되어버린다.


언젠가는 자괴감의 근원이 무엇일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자괴감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아야 좀 더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나름대로 불교, 명상 등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마음 수양 수단으로 검증된 레퍼런스와, EO, 퇴사한 이형 등 자기 계발 Youtube를 찾아보며 나를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자아 성찰의 시간을 거치며 "주변에 특별해 보이는 사람이 많지만, 정작 나는 그다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그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생기는, 어떻게 보면 자의식의 과잉 상태가 만들어낸 감각이 자괴감의 근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깨달음을 얻었으면 실천해야 하는 법. "꼭 내가 누군가보다 특별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나는 소중한 존재야"라고 계속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내 마음은 전혀 다독거려지지 않았다. 

 

"어떤 부분에서 특별하지 못하다"라는 말은 어떤 능력치를 정량화할 수 있다고 가정할 때 특별함의 기준이 되는 threshold를 넘겼다고 판단할 만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말이 장황하기는 한데, 특별하다고 말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으니 이것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다(insignificant)는 뜻이다.





통계적인 유의성은 빈도주의 관점과 베이지안 관점에서 보는 게 조금은 다를 것 같은데, 일단은 빈도주의의 관점에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빈도주의에서는 어떤 모수(parameter)가 특정 값으로 정해져 있지만, 그 값을 모르기 때문에 추정(estimate) 해야 한다는 관점을 취한다. 내가 추정하려고 하는 모수가 정확히 어떤 값인지 모르지만, 실험을 통해 얻은 관측값을 가지고 있고 이 관측값을 통해 모수를 추정하려 하는 것이다. 


만일 내가 노력을 해서 지력을 10만큼 올리려고 한다면, 정말 노력을 통해 10이라는 능력치의 상승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가설검정(hypothesis test)이다. 10이라는 모수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내게는 실험을 통해 얻어낸 관측치가 있고 그 관측치를 통해 모수가 10보다 크거나 같다는 결론을 낼 수 있으면 통계적으로 유의(significant) 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통계적으로 유의하다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해야 하는데 그때 사용하는 것이 유의수준(significant level)이다. 나는 모수를 정확히 모르지만, 내가 실험으로 얻어낸 값이 실험을 꽤나 많이 반복해도 얻어내기 어려운 threshold를 넘긴다면, 나는 지력이 10 이상 올랐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의 threshold를 유의수준, 그리고 내가 threshold를 뚫어낼 확률을 p-value라고 말할 수 있다.


빈도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희박한 유의수준을 뚫어내야만 유의한 결과를 낼 수 있다. 통계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유의해지는 것, 특별해지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주변을 둘러보면 노력해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하지만 내 경우는 실험의 성적표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열심히 노력한 실험들이 대부분 유의하지 않음으로 기각된 것인데, 이런 상태에서 "너의 도전 자체만으로도 소중해"라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 마음을 위로하기에는 약했다.


성과를 내기 위한 나의 노력들을 "실험"으로 치환할 수 있다면, 나라는 존재는 "실험을 준비하는 데이터 분석가"로 치환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이터 분석가는 실험을 통한 성과를 내고 싶지만, 그간의 실험이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이 상태에서 데이터 분석가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실험을 포기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을 계속해야 하는 것일까?





조금 시선을 멀리 두고, 질문을 바꾸니 답이 나왔다. 


이 고독한 데이터 분석가는 유의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실험을 계속할 것이다. 어떤 동기가 그로 하여금 실험을 계속하게 만드는 것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실험을 포기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그의 천성일지도 모른다. 특별히 특별해지고 싶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또 마냥 포기하며 살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성공하는 실험을 만들려면 결국 실험이 성공할 때까지 지속하는 수밖에 없다. 또, 그간의 실험이 왜 실패했을지 열심히 돌이켜 봐야 한다. 


또, 실험의 시행착오에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 한 번에 성공을 할 수 없을 것인데, 실패 가능성을 따져 가며 실험 하나하나를 주저해서는 성공하는 실험을 만들 수 없다.


마지막으로 실험은 그저 실험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실험 결과는 그저 실험이 실패했거나 성공했음을 알려주는 지표일 뿐이다. 그것이 데이터 분석가에 대한 실패나 성공을 말할 수는 없다. 데이터 분석가는 실험을 하지만, 실험과 별개로 자신의 인생을 잘 돌보고 아껴줘야 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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