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을 만나며 사는 삶
대단한 꿈을 꿀 수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삶이라고 믿었던 날들이 있다. 내게 있어 대단한 꿈은 단연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그 대단한 꿈 중 하나인 뮤지션이 되기 위해 앨범을 냈다. 그러나 이 사회가 곧바로 나를 알아주진 않더라. 감사히도 내 노랠 찾아 들어주시는 분들이 있는 걸 우연한 경로로 알게 되기도 하지만 직접적인 피드백은 없다. 내가 겪은 것들을 가장 다듬어진 언어로 표현해 내어도, 그들이 겪는 감정은 내가 알 길이 없다.
"너는 너무 너만 생각해." 내가 자주 들었던 말이다. 그래, 난 나만 생각한다. 나 밖에 모른다. 재밌는 건 다 내가 해봐야 하고 맛있는 건 다 내가 먹어봐야 하고 멋진 곳은 다 내가 가봐야 한다. 나는 경험하고 싶다. 내 몸으로 느끼고 경험하고 싶다.
그런데 얼마 전 그런 글을 읽었다. 세상의 모든 존재가 다른 차원의 나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면 결국 모두가 나이고, 내가 아닌 존재란 없다고. 난 사실 이런 이야기를 10대 때부터 누누이 들어왔다. 너무 당연해서 제대로 의식조차 하지 않고 흘러가던 말.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그 새로울 것 하나 없는 글을 읽으며 무릎을 쳤다.
‘만약 모든 사람이 나라면, 그러니까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이 다른 차원의 나라면, 그러면 내가 하지 않는 경험이란 게 없잖아. 대통령도, 제니도, 라오한(유튜브 <라오스 오지마을 한국인>. 라오스 시골마을에 전기를 연결해 주고 학교 급식을 만들고 청년들의 대학 장학금 시스템을 만드는 등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대신해주고 있다)도, 마르크스도 다른 차원의 나라면, 지금 2023년의 내가 그 모든 걸 하려고 욕심부릴 필요는 없는 거잖아. 내가 상처 준 사람, 내게 상처 준 사람 모두 나인 거잖아!'
나는 초조했다. 20대가 가기 전에 앨범을 내고 싶었고, 너무 늦기 전에 유명해지고 싶었고, 내 사명을 찾아내 거기에 내 삶을 쏟아붓고 싶었다. 그런데 어차피 저 모든 게 나면, 난 이미 다 해본 거다. 초조해할 필요가 없다. 인생이 하나밖에 없다고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나에겐 천직으로 느껴지는 직업군이 있다. 바로 교사이다. 스무 살 때부터 7년 동안 초등 캠프를 매달 진행했고,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6년째 중고생들 과외를 하고 있다. 정말 신기하게도,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한 번도 가기 싫었던 적이 없다. 오히려 기분이 안 좋을 땐 얼른 애들의 에너지를 받고 털고 싶은 정도였다. 그렇지만 나는 계속해서 부인해 왔다. 나는 더 '대단한' 꿈을 꿔야 한다고.
하지만 이 모든 사람이 나라면, 이 모든 경험이 나의 경험이라면, 나는 굳이 대단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지금의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가면 된다. 대단한 꿈이라고 믿었던 뮤지션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고 나서, 그 삶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회적 인정이라는 게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그러고 나니 나는 내게 다시 질문한다. 내 꿈은 뭘까?
나는 남들이 잘 못하지만 내가 잘하는 것을 남들이 잘하도록 도와주고 싶다. 나는 용의 꼬리보단 뱀의 머리이고 싶은 사람이라서, 초급반 에이스로 영원히 남고 싶은 사람이라서, 내가 못하는 건 주시하지 않고 내가 잘하는 걸 뽐내며 살고 싶다. 예컨대 나는 내가 무척 긍정적이라고 생각하기에(나보다 긍정적인 사람이 몇 만 명 있다 한들 상관없다. 내 주위엔 없으니까.) 부정적인 생각으로 힘들어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 상황을 긍정적이게 해석해 주는 게 즐겁다. 공부하는 게 무조건 싫은 아이들에게 공부를 통해 자기 효능감을 경험하게 도와주고 그 경험으로 인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도와주는 게 즐겁다.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 저 멀리에 있는 추상적인 누군가가 아니라 당장 내 눈앞에 있는 누군가가 나로 인해서 조금이라도 편해지는 삶. 나는 그런 삶을 추구하며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