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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 May 04. 2022

안녕, 인계동

'옛 건물'의 추억...

   둘째 아이 출산을 두 달 정도 남았을 때, 부풀대로 부풀어 오른 내 배는 부동산 투어에 점점 더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이번이 몇 번째 부동산이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질 무렵, 도저히 못하겠다며 집으로 가자고 신랑에게 말했다. 오늘은 꼭 이사 갈 집 찾겠다던, 신랑도 지쳤는지, 혹은 낡은 산타페에 올라타고 내려오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내 모습에 포기했는지, 우리는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부동산 두어 군데가 눈에 들어왔다.


   다시 차를 급히 멈추고 들어간 부동산에서 사장님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간 집은 지금까지 둘러본 집들과는 무언가 달랐다. 천천히 다시 확인해보니, 방이 3칸, 화장실, 그리고 작은 거실까지 있었다. 집은 생각보다 넓은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에 사장님은 "이 집은 부엌이 바깥에 있어요." 하며 나를 이끌었다.


   보통은 아파트 베란다가 있을 법한 공간에 부엌이 길게 나 있었다. 한눈에 봐도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울 거라는 걸 알 수 있었지만, 부엌이 눈에 보이질 않으니, 집이 깔끔해 보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본 집들보단 훨씬 괜찮아 보였고 계약서를 쓰기로 했다. 그제야 사장님께 물었다. "그런데 여기가 무슨 동이예요?"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 흘러나왔다. "여기 인계동이에요."


   수원에 산지 3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인계동은 우리 가족에겐 익숙한 곳이었다. 수원 시청과 홈플러스, 갤러리아 백화점, 그리고 나혜석 거리와 뉴코아까지, 머릿속에서 한눈에 그릴 수 있을 정도였다. 수원의 화려한 밤거리 상징이 인계동인지 알았는데, 이렇게 오래되고 낡은 건물도 있다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거기에다 이 일대가 싹 다 재개발 예정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재개발 예정지는 TV 뉴스에서 본 게 다인데 내가 살 곳이 재개발 예정지라니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 집이 된 동수원 빌라에서 길만 건너면 입주한 지 6년 정도 되었다는 고층 아파트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방향으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8차선으로 시원하게 뚫린 경수대로가 있는데 그곳에는 수원의 신시가지, 내가 알고 있던 인계동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1900년대 초반에 처음 신작로를 접했을 사람들이 느꼈을 괴리감이 인계로에 서서 경수대로를 바라보며 내가 느꼈던 그 괴리감이 아니었을까?


   4년은 충분히 살 수 있다던 부동산 사장님의 말씀과는 달리, 산지 2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이사 통지를 받고 그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공사가 시작되면서 우리 집이 어느 곳이었는지 이젠 알 수조차 없다. 공사 현장을 바라보던 아이들은 작고 오래된 그 집에 살던 때가 더 좋았다고 말한다. 바퀴벌레로 무서워 벌벌 떨었으면서도 그 집에 다시 살고 싶다 한다.


   어느 날 아이가 다급한 듯 내게 묻는다. "엄마, 우리 옛날에 살던 집 사진 있어? 예뻤던 것 같은데 이젠 기억이 안 나."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며 지냈던 우리 가족의 추억이 집과 함께 허물어져 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새 건물'은 분명 멋지겠지만, 우리의 '옛 건물'이 가진 추억까지는 다시 담지 못할 테니 말이다.


한창 개발 중인 인계동...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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