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 필요의 부정은 충분 지연의 기원이다
시내버스는 두 가지 오차의 가능성 앞에 서 있다. 예정보다 늦게 도착하거나, 예정보다 빨리 떠나거나.
늦게 도착한 버스는 이미 기다리던 사람들에 더해, 지연된 시간만큼 새로 유입된 사람들까지 모두 품어 안는다. 비록 ‘정시성’이라는 충분조건은 만족시키지 못했을지언정, 정류장에 서 있는 존재들을 태워야 한다는 버스 본연의 필요조건은 저버리지 않은 셈이다.
반면, 예정보다 빨리 떠나버린 버스는 치명적이다. 그것은 약속된 시간의 ‘구조’를 믿고 정류장에 서 있던 존재들에 대한 명백한 부정이다.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필요조건을 파괴하는 행위다. 여기서 우리는 이 비유의 가장 잔인한 진실을 목격한다.
부정은 반드시 더 거대한 지연을 낳는다는 사실이다.
빨리 떠나버린 버스는 그 자리에 남겨진 이들에게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의 시간을 강제로 떠안긴다. 이때 발생하는 지연은 흐름 속의 늦춰짐이 아니다. 구조에 의해 강제로 밀려나 발생한, 존재의 흐름이 끊겨버린 ‘정지된 지연’이다. 지연된 버스를 기다리는 이들에게는 ‘기다림’이라는 의식의 지속이 허락되지만, 부정당해 남겨진 이들에게는 ‘단절’이라는 부재와 그로 인한 가혹한 대기 시간이 힘께 남는다.
결국 부정은 가장 나쁜 방식의 지연을 만드는 기원이 된다. 우리의 삶과 존재 또한 이와 같다. 지연은 존재의 박동이 조금 느려진 것일 뿐이지만, 부정은 박동 자체가 세계의 구조와 어긋나버린 상태다. 지연은 존재를 기다리게 하지만, 부정은 존재를 지워버린 뒤 그 자리에 거대한 결핍의 시간만을 남긴다.
그러므로 늦을지언정 결코 존재를 부정하며 먼저 떠나서는 안 된다. 존재 또한 완성에 도달하는 속도(충분)보다, 그 흐름 속에서 단 한 순간도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 지속(필요)이 더 본질적이다. 우리는 조금 늦어지는 삶은 견딜 수 있지만, 구조에 의해 부정당해 멈춰버린 삶은 단 한 순간도 이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는 지연될 권리가 있으나, 그 누구도 부정당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