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사실조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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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은 길이 아니라 경고등이다
우리는 논증을 할 때 자주 “만약 ~가 아니었다면”으로 들어간다. 반사실적 조건문이다. 이 문장은 강하다. 한 번에 구조를 드러내는 것 같고, 상대의 주장에 균열을 내는 데도 유용하다. 그런데 이 방식이 글의 중심이 되는 순간, 논증은 이상하게도 멈춘다. 정교해질수록 건조해지고, 정확해질수록 움직임이 사라진다.
반사실조건문이 해내는 일은 대체로 분명하다. 필요를 드러낸다. “이게 없으면 안 된다”를 말한다. 즉, 최소를 확인하는 문장이다. 문제는 최소를 확인하는 문장이 세계를 만들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논증의 핵심이라면 그 논리 하나가 전체를 끌고 가야 한다. 그런데 반사실조건문은 대립되는 주장들이 서로를 공격할 때 똑같이 꺼내 든다. 서로 반대편이 같은 방식으로 말할 수 있다는 건, 그 방식이 차이를 만드는 중심이 아니라 공통의 도구라는 뜻에 가깝다.
여기서 핵심은 ‘공통변수 제거’의 문제다. 반사실조건문은 변수를 하나 뽑아 “이게 빠지면 무너진다”를 시험한다. 그런데 양쪽이 공통으로 인정할 수 있는 변수는 대개 안전장치에 가깝다. 안전장치는 중요하다. 하지만 안전장치는 방향을 만들지 않는다. 안전장치는 흐름이 벗어나지 않게 막을 뿐, 흐름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지 못한다. 그래서 반사실은 논증의 기초를 다지는 데는 유효해도, 논증의 심장으로는 약해지기 쉽다.
부정이 활동력이 약한 이유도 여기와 맞닿아 있다. 부정은 막는다. “그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막는 말은 붕괴를 방지하지만, 건설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회의주의가 오래 버티는 것도 같은 이유다. 회의는 허술한 충분을 잘 깎아낸다. 하지만 깎아낸 뒤에 남겨야 할 큰 충분, 즉 자기만의 설계도를 주지는 않는다. 필요만 남으면, 결과적으로 정확할 수는 있어도 도달할 세계가 빈다.
공부로 내려가면 이 감각이 더 선명하다. 시험을 보고 오답을 정리할 때 우리는 이런 문장을 쉽게 만든다. “만약 이 단서를 놓치지 않았더라면 맞혔을 텐데.” “만약 마지막 줄을 더 읽었으면 실수하지 않았을 텐데.” 대부분 맞는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필요조건을 확인해 주기 때문이다. 단서 확인, 조건 체크, 검산, 선지의 단어(항상/대체로) 같은 것들. 반사실은 이런 최소를 아주 잘 드러낸다.
하지만 오답노트가 그 문장들로만 채워지기 시작하면, 실전에서 판단은 오히려 무거워진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늘어날수록 문제 앞에서 흐름을 빠르게 내는 능력은 약해진다. 체크리스트가 길어질수록 판단은 느려진다. 이때 사람은 “더 조심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필요한 것은 조심의 증량이 아니라 설계도의 생성이다. 즉 충분의 축적이다.
실력이 늘 때는 보통 다른 문장이 생긴다. “이 유형은 변수 두 개만 잡으면 된다.” “이 조건은 결론으로 가지 않고 범위를 묶는 역할이다.” “여기서부터 흐름이 정해진다.” 이런 문장은 부정이 아니다. 반사실도 아니다. 길을 내는 문장이다. ‘틀리지 않는 최소’가 아니라 ‘맞히는 경로’를 만드는 문장이다. 필요가 아니라 충분이 전면에 나온다. 이때 비로소 논증은 생동감을 얻는다. 왜냐하면 움직이는 구조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반사실조건문을 이렇게 자리매김하고 싶다. 반사실은 경고등이다. 경고등은 중요하지만, 엔진이 아니다. 경고등은 “이대로 가면 고장 난다”를 말해주지만,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가”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논증이 살아 있으려면, 부정은 반드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야 한다. 최소를 확인한 다음, 설계도를 제시해야 한다.
실제로 글을 쓸 때 가장 간단한 규칙이 있다. 반사실조건문을 썼다면 반드시 바로 뒤에 한 문장을 더 붙인다. “그러므로 내가 세울 충분은 무엇인가.” “이 주장에서 내가 주장하는 방향은 무엇인가.” “내가 반복할 구조는 무엇인가.” 반사실로 필요를 확인하고, 그 필요 위에 충분을 세우는 순간, 논증은 ‘반박’에서 ‘구축’으로 넘어간다.
부정은 핵심이 되기 어렵다. 부정은 필요를 보여주는 최소한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필요는 우리를 무너지지 않게 하지만, 필요만으로는 나만의 세계를 만들기 어렵다. 세계는 충분으로만 생긴다. 반사실은 그 충분이 허상이 되지 않게 깎아주는 도구로 남겨두는 편이 좋다. 중심은 언제나, “그래서 무엇을 세울 것인가”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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