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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의권 Sep 12. 2016

공동체가 잊지 않는다는 것

2016년 여름 짧은 영국 방문 이야기  2016. 9.12

백수가 된 지 2달이 되어가는 시점에 떠나게 된 가족여행.

여행(tour)이기보다 머묾(stay)에 가까웠던 2주간의 여행.

해외의 각종 유명하고 가볼만한 곳들을 방문하여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많은 여행기들이 있다. 

머문다는 것을 그곳에서의 삶을 시켜볼 수 있는 점이 있다. 그것은 마냥 '좋은' 것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원만하지 않은 시기에 여행을 떠나기에 오히려 그런 점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 깊이가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중의 1번째.


온 가족과 힘든 비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공항버스 안에서 페북에 올린 프롤로그식으로 짧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2주간 가족과 영국에서 지내기. 

돌아온 지금 많은 생각들이 있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발전된 사회와 역사를 만드는 것은 

약한 것들과 세부적인 것들을 

어떻게 다루는 가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다.


장면 1

숙소로 지냈던 지인의 집이 있는 곳은 런던의 남서 측의 kingston이라는 지역이었다. 우리로 보자면 일산이나 하남 정도 위치(?), 완전 변두리는 아니지만 중심가로부터 떨어져 있는, 그러다 보니 기차로 런던 중심가의 관광지로  많이 이동하였다.

어느 날 아침, 아이들과 자연사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기차 벽에 붙은 이 사진을 보면서 이 생각이 시작된 것 같다.

단순히 감정적인 호소가 아니다. UK정부에 이들을 보호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Brexit를 의식하고 도착한 영국에서 중동의 난민들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는 이 광고는 어떤 파장과 같이 느껴졌다. '내전과 테러로 수천 명의 아이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떠돌고 있다. 그들은 당신과 같은 사람이다(they are people just like you)'  


장면 2

영국 관광지의 물가는 우리나라의 성수기의 뻥튀기 장사 못지않은 가격구조를 가지고 있다. 변두리의 Tesco에서 1리터 물이 0.7파운드인데, 관광지에서는 2파운드가 넘는 그런 식이다.

관광지 주변으로 가면 갈수록 비싸진다. 그래서 아침에 런던 시내로 나갈 때 꼭 기차역 주변의 Tesco에서 생수와 점심(3파운드 콤보 '샌드위치+음료+스낵' 주로 이용, 충분히 배부름)을 사가야 했다.

 

한 3일 동안 그 애용하는 Tesco 매장 앞에 한 걸인이 앉아 있었다. 아내가 애들 먹거리를 구해서 나올 때 보았다는데, 어느 날은 지나가던 젊은 여자가 자기가 방금 구입한 샌드위치 하나를 주고 갔다고 하고, 또 어느 날은 중년의 남자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물이 많이 남은 생수통(물값이 싸지 않다)을 건네주다 못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이야기를 한참을 나누는 걸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아침이 아닌 오후에 돌아오는 길에 보니 그 사람이  팔에 피부가 좋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데, 어떤 여자가 손수건 같은걸 주면서 덮는 시늉을 하더란다.


이러한 사회의 약자를 바라보는 영국 사람들의 시선. 인상적이었다. 특히 동정을 담은 적선만 하고 가는 것이 아닌 그들과 이야기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대하는 모습. 그것이 자기 주변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외국의 난민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물론 이것이 어떤 구호 단체의 광고에 불과할지 몰라도 한국 사람으로서 내가 어릴 적부터 보아왔던 '없는 사람, 가지지 못한 사람'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돌아보게 만든다.


어느 날 저녁에는 애들을 맡기고 Soho라는 우리로 치자면 명동쯤 되는 지역에 저녁에 아내와 함께 외출을 나갔다. 이곳이 뮤지컬이나 펍, 쇼핑 등의 볼 것이 많다고 하여.  10시쯤 늦은 밤(?), 돌아오는 길거리 구석구석에서 동전통을 앞에 두고 앉은 이들...  인종이나 나이도 다양했다. 다행히 여성은 보지 못했다. 주로 느낌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이주민들이나 불법 채류자 같이 보였다. 영국의 불법 채류자들이 100만 명이 넘는다는 말도 있고, 영국 공권력이 쉽게 이들을 통제하기는 힘들것으로 보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이들이 어떤 식으로 든 지 '숨통'을 트이며 살 수 있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것을 어떤 제도적인 상황이기보다 사람에게서 찾고 싶다. 

근래 한국에서 이런 모습을 서울의 중심가에서 언제 보았던가 싶었다. 물론 있지만 내가 보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15여 년 전 서울에 상경했을 때 영등포역 인근에서 본 이후로 거의 못 본 것 같다. 그렇다고 한국사회의 복지나 부의 분배, 복지 시스템이나 평등의식이 영국보다 더 나은가 생각해보면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영국의 의료비는 거의 공짜라고 한다. 대신에 자살률 1위 국가라는 오명을 얻은 것은, 우리가 심기 불편하게 보아야 사람들을 외면해버린 것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늦는 런던의 기차역을 환승하며 잠시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늘 해외에 나올 때마다 느끼는, '한국이 잘 사는 나라구나...' 하는 생각도.


장면 3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는가는 인간사회에서 중요하다. 그것이 일본과 독일의 차이를 만들어 내듯이.

도착한 첫날 kingston의 전혀 유명하거나 독특하지 않은 주택가와 상가들 사이를 돌아다니다 이걸 보았다.

오래된 교회 건물 옆 작은 공터 같은 공원에 세워져 있다.

kingston에서 기차로 15 분 내외의 동쪽으로 멀지 않은 New malden이라는 곳은, 유럽에서 가장 많은 한인이 사는 곳이라고 하여 많은 한인들을 위한 편의 시설들이 이 있고 한국음식을 파는 마트도 있다 하여 식재료를 사기 위해 들렀다가 이걸 보았다.

New Malden 기차역에서 내려 Main street에있다

이 두 가지 조형물들에서 영국의 1,2차 대전 당시 각 지역에서 참전하여 전사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청동판과 간략한 설명이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들은 모두 'War Memorial'이라고 불리는 것들이었다.

이것 외에도 일요일에 출석한 한인교회건물은 기존에 영국 사람들이 지은 오래된 교회인데, 거기에서도 동판에 새겨진 그 교회에서 다니던 사람들 중에 전쟁에서 전사한 사람들의 이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조형물들이 있다. 하지만 그 위치가 그런 것을 기념할 만한 특별한 위치, 예를 들자면, '전적비'라고 하여 어떤 특정 사건의 특정 위치에 주로 중후 장대 한 조형물들이 멋지게 서있다. 하지만 내가 영국에서 주목한 것은 일상의 공간에 위치한다는 것과 그리고 그것에 하나하나 세겨진 전사한 사람들의 이름들이다.  한국의 이러한 것들에도 물론 전사한 분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경우가 있지만, 왠지 기억나는 것은 사람이 아닌 그것과 관련된 사건들이다.

한국 속담에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있다. 현세적인 것에 가치를 두는 우리에게 죽은 자들은 어쩌면 가장 잊어버리기 쉬운 또 다른 형태의 '약자들', 앞에서 말한 거리의 걸인들 보다 더 존재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오래된 기념물들 외에 영국 사람들이 죽은 자 들을 어떻게 기억하는지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런던 타워(Tower of London)를 방문하였을 때 본 것이었다.  내부의 여러 가지 볼거리들을 보는 중에 2014년도에 있었던 1차 대전 100주년 행사의 한 장면을 영상물로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개략적인 그 행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출처 : http://www.hrp.org.uk

The Blood Swept Lands and Seas of Red exhibit at the Tower of London in 2014on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beginning of World War I which consists of 888,246 ceramic poppies, one for each British and colonial death.


행사 이후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심긴 도자기로 만든 양귀비 꽃(artifical ceramic poppy)은 모두 철거되었지만, 그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고 그것을 지켜보았던 영국 시민과 관광객들의 반응을 담은 그 영상은  (youtube에 올라와 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호기심에 poppy (양비귀꽃)의 의미를 뒤져보니(en.wikipedia.org/wiki/Remembrance_poppy 참조)  1차 대전 당시 쓰인 한 시의 내용 중에 전장의 무덤에서 가장 먼저 피는 꽃이 poppy라는 것에 영감을 받아 지금까지 서구사회에서 다양하게 쓰인다고 한다. 888,246개의 poppy 하나하나가 1차 대전 이후 이 행사가 치러진 2014년까지 각종 분쟁지역에서 희생된 영국 군인들을 의미한다고 한다. 


특히 이 행사가 열린 장소가 런던 타워라는 것이 더욱더 의미 심장했다. 

런던 타워 관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람 코스는 육중한 금고형 전시실 내부의 영국 왕실의 왕관을 비롯한 보물을 보는 것인데, 세게에서 가장 큰 케럿의 다이아 몬드가 박혀있다는 왕관과 금수저(말 그대로 정말 금수저)를 비롯한 금으로 만든 여러 가지 행사용 보물들이 있는 곳이지만, 정작 지금의 영국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러한 화려한 과거의 영광이 아닌 현재의 영국이 있기 위해 희생되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정확히 기억되지 않지만, 그 왕실의 보물들도 근래에 와서 개방되어 관광객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들었다. 힘 있는 자들의 상징이 아닌 죽은 이들의 의미를 잊지 않는 것. 

 

이 poppy는 도자기로 만들어졌다. 도자기를 88만 개 이상의 도자기 꽃을 하나하나 만드는 사람들의 영상도 보았는데, 그중 한 사람은 내가 만드는 것이 큰 빌딩 같은 것이 아니지만 한 사람의 삶을 상징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참 통찰력 있는 의미 부여이다.




나는 건설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중후 장대 한 구조물들이 올라가는 것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그것들이 작은 모래와 자갈이 뭉친 콘크리트를 촘촘히 부어 넣기 위해 구석구석을 살피고, 크고 작은 볼트와 구석구석의 한 땀 한 땀  쇠를 녹여 붙여 만들어진 것임을 안다. 큰 건축물을 만들 때 모퉁이돌을 놓는 것이 중요하듯 큰 무엇일수록 디테일이 중요하다. 오래된 구조물들의 바스러지고 녹스는 부분들을 보면 그것들을 만들 때 구석구석의 그런 디테일을 어떻게 챙겨가며 일했는가가 여실히 드러난다. 


사람의 삶 -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 어떤 형태이든지 공동체를 이루고 산다. 그것은 가정에서부터 국가에까지 이른다.   그 공동체의 작은 구석에서 약한 사람을 세세히 바라보는 시선과 마음. 물론 내가 보지 못한 영국 사회의 어두운 부분이 있겠지만, 지금 대영제국이라 불리던 시대의 Great 하지 않은 외양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러한 것들이 여전히 영국을 지금의 영국으로 있게 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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