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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외의 Dec 26. 2021

수육 & 김장김치



가족과 생일을 보내려 본가에 내려갔다 온 날, 가볍게 끌고 갔던 캐리어는 혼자 겨우 들 정도의 무게로 돌아왔다. 가져간 옷과 생필품은 테트리스 하듯 한쪽으로 몰아넣고, 나머지 한쪽은 모두 김치와 장조림에 내어줬다. 서울 집으로 돌아와 곧장 짐을 풀고 가져온 김치 정리도 시작했다. 메추리알 가득한 돼지고기 장조림과 이미 본가에서 실컷 먹고 온 김장김치와 파김치, 찌개와 찜을 해 먹을 생각에 보기만 해도 설레는 묵은지를 반찬통과 김치통에 옮겨 담는다. 그러다 별안간 김치 배틀이 시작됐다. 각자 집에서 가져온 김치의 이파리를 떼어 맛보기 시작했다.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 배틀의 승리자는 나였다. 승리를 자축하며 수육을 대접하기로 했다.


대형마트에서 수육용 돼지고기를 저렴하게 구매했다. 평소 비계 많은 삼겹살보다 목살을 선호하는 편이라 고민 없이 수육용 앞다릿살을 구매했다. 수육을 삶는 방법은 다양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전기밥솥을 이용한 무수분 수육. 키친타올로 고기의 핏물을 톡톡 닦아주고 된장, 다진 마늘을 크게 한 스푼 넣고 맛술(소주나 맥주를 넣어도 좋다) 적당량을 넣는다. 그리고 고기에 버무려 발라주면 된다. 전기밥솥 바닥에 두껍게 자른 양파를 깔아주고 그 위에 된장 발린 고기를 올렸다. 만능 찜 기능 45분 선택 후, 모든 건 밥솥에 맡기고 마음 편히 외출했다.



현관문을 여니 잘 익은 수육 냄새가 먼저 반겼다. 밥솥은 찜기능이 끝나고 보온 상태로 있었다. 처음 해보는 ‘전기밥솥 무수분 수육’에 떨리는 마음으로 뚜껑을 열었다. 양파에서 나온 수분으로 고기는 잘 익어있고 양파는 형태 없이 흐물흐물해져 있었다. 집게로 수육을 건져 겉에 묻어있는 된장만 찬물로 살짝 씻어냈다. 찬물에 닿아 식힐 필요 없이 탱글탱글해진 고기는 도마에 올려 적당한 두께로 썰어 준다. 고대하던 플레이팅 시간. 김장김치는 배춧잎의 제일 큰 잎을 한 장 떼 엇갈리게 포갠 뒤, 잎을 펼쳐 겉을 감싸준다. 그 상태에서 썰어 주면 깔끔하게 정돈된 모양이 된다. 파김치는 한 방향으로 모으고 중간을 썰어 길이가 긴 부분은 접고, 파의 뿌리 쪽도 김치에 맞춰 놔줬다. 잘라둔 수육으로 접시를 빙 둘렀다.


사실 이날 수육을 못 먹을 뻔했다. 다 준비하고서 외출했는데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친구와 다퉜기 때문이다. 친구는 개인적인 일로 기분이 좋지 않아 예민했고, 여유가 없던 나는 그 예민함을 받아줄 수 없었다. 다행히 친구는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의 손길을 내밀었고 나는 밥솥에 있던 수육을 준비했더랬다. 빠른 사과의 원인은 수육 때문일 거라 감히 짐작기도 한다.



테이블 위에 완성된 수육을 올려두자 웬만해선 음식 사진을 찍지 않는 친구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나도 플레이팅할 때만큼 진중하게 사진을 찍었다. 수육 위에 김치를 올려 한입에 넣은 친구는 ‘김치가  주고도  먹겠다 흥분했다. 나는 가장  나온 사진  장을 골라 우리 가족의 단체 채팅방에 보냈다. [친구가 김치 맛있다고 난리~] 겨울을 느끼는 순간   부분을 차지하는  김장김치를 맛볼 때다. 겨울을 맛볼 기회를 , 혼자서 수고한 엄마에게 보내는 무뚝뚝한 딸의 감사 표현이. 고기에 김장김치, 파김치 올려 크게 한입 먹었다.  맛이라면 겨울 한파쯤은 감내할 수 있다. ‘다음 겨울엔 비법을 전수 받아오겠노라다짐도 함께 곱씹으며 겨울 밤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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