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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외의 Jan 09. 2022

에그 치즈 김밥



날 좋은 휴일 아침. 점심을 먹고 반려견 ‘애기’의 산책을 나서기로 한 날이었다. 앞서 말했듯 그날은 날이 좋은, 휴일, 아침이었다. “김밥 싸서 피크닉 갈까?” 계획하지 않았던 일이 더 재밌게 흘러가는 상황을 자주 겪는다. 당시엔 양재동에 거주했기 때문에 피크닉 장소는 가까운 양재 시민의 숲으로 정해졌다.


햄, 단무지, 시금치, 당근 아무것도 없었다. 별수 있나. 김밥은 김, 밥만 있으면 김밥이 된다. 한 가지는 섭섭하니 두 가지의 김밥을 만들기로 했다. 에그 치즈 김밥 한 줄과 닭고기 양배추 김밥 한 줄. 닭고기 양배추 김밥은 불고기 양념에 볶은 닭고기와 채 썬 양배추를 듬뿍 넣어 말은 김밥이었다. 에그 치즈 김밥은 달걀 네 개를 풀고 소금 간 해준다.  중요한 건, 김밥 길이에 맞춰 주는 것과 달걀을 말 때 네모난 모양 대신 굴려 가며 말아주는 거였다. 우려할 필요는 없다. 기둥 모양으로 말아지지 않더라도 달걀말이를 김밥 말듯 랩으로 말아 두면 동그랗게 모양이 잡힌다. 그동안 한 김 식은 밥에 참기름을 넣고 소금으로 간해줬다. 김의 거친 면 쪽에 밥을 얇게 펴고 치즈 두 장을 올려준다. 모양 잡힌 달걀말이를 올려주고 잘 말아준다. 말아진 끝부분에 밥풀이나 물을 발라주면 잘 붙는다. 바닥을 향해 두고 위에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발라주면 김밥 싸는 건 끝이다. 이제 김밥을 써는 미션이 남아있다. 나에겐 김밥 써는 요령이 세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칼에도 참기름을 발라 준다. 두 번 째는 썰리는 부분 바로 뒤쪽을 손으로 단단히 잡아주는 것이다. 세 번 째는 과감히 자를 것. 칼질에 망설임 없이, 거침없이 잘라야 터지지 않는다. 썰린 김밥 위에 참깨를 솔솔 뿌려주면 이곳이 바로 김밥 천국이다.



완성된 김밥은 종이 호일로 포장했다. 에그 치즈 김밥은 그냥 먹어도 맛있겠지만 케첩도 준비했다. 에코백에 김밥과 물 한 통, 패브릭 돗자리를 넣고 소풍을 나섰다. 선선한 여름이었다. 김밥 하나만으로 산책에서 소풍이 됐다. 도착한 우리는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돗자리를 폈다. 가져온 김밥도 꺼냈다. 집에서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음식은 먹는 장소와 분위기, 함께 하는 사람과 오가는 대화 속에서도 맛이 달라진다. 다른 매력을 가진 두 가지의 김밥은 햇살과 그늘 같았다. 여름 날, 나무가 가려주는 그늘에. 지저귀는 새들도 훌륭한 합주단 역할을 자처했다. 사 먹는 김밥과 싸 먹는 김밥의 차이는 늘어난 ‘ㅅ(시옷)’의 개수 만큼, 족히 2배는 좋은 기억을 남긴다. 쌀쌀한 겨울에도 여름을 상기 시켜 글 적을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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