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으로 만든 못생긴 선

by 연일

흰 도화지 위에 손가락이 손목, 전완, 상완, 허리, 경추까지 협응하여 긋는 초라한 선 하나


그 초라한 선 하나를 위해 내 신체의 많은 부위는 긴장한 상태로 쓸데없는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래서 그 선이 할 수 있는게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딱히 없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글의 시작을 위해 그저 쭉 그을 뿐이다.


그것도 온 힘을 다해서.




학창시철 우리는 글씨를 잘 쓰려고 애를 써보기도 하고


글씨체를 신경쓰지 않고 깜지를 쓰듯 필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마다 우리의 손과 팔은 이상하게 그 1초 남짓이면 될 작은 글자들에 지치고 말아 툭툭 팔을 털곤 했다.


왜일까? 그 피곤함이 도대체 뭐길래 나를 이렇게 지치게 하는 것일까?


그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은 그 삐뚤빼뚤한 선을 그으려고 나는 온 힘을 다했기 때문이다.




필기와 같이 내가 하지 않으면 고통스러울 것에는 난 팔이 아파도 꾸준하게 유지했다.


하지만 낙서와 같은 굳이 하지 않아도 아무 상관이 없을 것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중단했다.


아쉬움은 없었다. 고통스럽지 않았으니까


그 순간 내 결정에는 자연스럽게 행동에 대한 결과를 무의식적으로 '판단'하고 있었고, 속에는 인지가 없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어떠한 '선택'이라는 것을 한 것이다.




그까잇 선들이 뭐라고 이런 의미를 부여하는 걸까?


그냥 남들 다 하듯이 사람이라면 경험할 수 밖에 없는 불가역적인 문명 활동 아닌가?


맞다.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닌 적응이고 사회적 활동이다.


하지만 우리는 선을 긋는 행위만을 자연스러운 행위로 보지 않는다.


다른 불가역적인 상황 속에서 얻은 다양한 의미 중 하나를 선을 긋는 행위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관통'한다는 표현을 쓴다.


관통이라는 표현은 굉장히 공감각적이고 입체적이다.


무엇이 먼저 떠오를까?


나에게 떠오르는 관통의 이미지는 어떠한 개념을 대입해도 길게 이어진 '선'이 연관되었다.


유기물이든 무기물이든 '관통'은 앞으로 쭉 이어지는 방향을 따라 어떠한 기점을 뚫고 지나가는 것.


그때 그려지는 동선은 하나의 선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논문을 읽다가도 핵심적인 한 구간이 "이 논문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관통한다"라고 하는 것 조차


글자로 이루어진 어떠한 의미들이 하나의 선으로 그려지는, 말 그대로 공감각적인 심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내 인생을 하나의 선으로서 그려오고 있다.


팔이 저려올 만큼 집중력있게 하나로 그려오진 못하지만


짧지만 연속된 선들로 하나의 굵은 선을 그려내고 있다.




유년시절부터 학창시절을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선을 그려냈다.


물론 처음에는 어지러울 만큼 집중해서 반듯한 선을 그려내려고 했다.


하지만 느리고 많은 힘이 들었다. 남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나도 그들과 똑같아지려고 점점 손에 힘을 풀고 속도에 집중했다.


반듯한 선들에는 삐죽삐죽 잔가지들이 생겨났다.


선이 점점 못생겨지기 시작했지만, 난 상관하지 않았다.


남들보다 느렸기 때문에


그러다 팔이 너무 저려서 잠시 멈추는 순간이 찾아왔고,


한 발치 멀리서 내 선을 봤을 땐 너무나 지저분해 보이는 이 선에는 방향이 없었다.


분명 내 의지대로 내가 그린 선인데, 남들을 따라가기 바빴다.


이제 와서 다시 느리지만 반듯한 선을 그리기엔 오히려 이 선을 망가트릴거 같았다.


나는 결정을 해야했고, 고심 끝에 현황을 유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찝찝했지만, 기대를 하면서 묵묵히 그려나갔다.




그리면서 느낀 한 가지의 깨달음이 있다.


나는 지금 이 선을 왜 그리고 있을까?


무엇을 위한 정동적인 행동일까?


어쩔 때는 짜증이나서 세게 긋는 바람에 굵은 선이 생기고


곧이어 찾아온 평화에 다시 얇아진 선을 보며 전체에 불만스러워하는 나는


뭐를 위해서 이러고 있을까?


나는 내가 안쓰러웠다. 이유도 모른채 그리고 나가고 있는 이 선들의 의미가 희미해서


너무나도 안쓰럽다고 처음 느꼈다.




누군가는 알아줬으면 했다.

나의 노력이 이렇다고, 내가 할 줄 모르는 그 말들이 내 속에는 가득하다고

습관을 잘못들여서 의미가 자꾸 변하게 되고 결국 참고 지나가다보면

삐뚤빼뚤 그어진 선들로 이루어진 이 굵은 선 하나가

너무나도 처참해 보인다고 누군가는 먼 발치에서 지켜봐 줬으면 했다.

처참했다. 지금의 내 모습이 너무 잘못 그려지고 있는거 같아서




내가 앞으로 그려나가야 할 방향을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이 못생긴 선을 계속해서 그려나가려고 한다.

그리다보면 다른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