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는 여러 풍경을 지니고 있다. 전통과 현대, 화려함과 소박함. 실상 어느 도시이든, 한 가지 풍경만을 가진 곳은 없다. 도시란 이름으로 뭉뚱그려져 있지만 그곳은 예전엔 촌락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모여 이루어져 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때로 더없이 소박한 풍경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여행이 길어질수록 그렇다. 처마가 드리워지고 전통 문양이 멋들어지게 새겨진 집이 아닌, 평범한 대문과 골목길과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과의 가벼운 인사를 필요로 하는 때가 온다.
그럴 때면 도덴(都電) 아라카와선(荒川線)을 타 보아도 좋을 것이다.
What? 도덴(都電) 아라카와선(荒川線) 이란
노면전차, 트램(Tram)이라 불리는 길바닥에 궤도를 설치해, 전력으로 달리는 차를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철도의 발달로 수요가 줄어들었으나, 근래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친환경 교통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도덴 아라카와선은 도쿄에서 유일하게 남은 노면전차이다. 애칭은 도쿄 사쿠라 트램. 한 칸짜리 이 작은 전차는 마을의 역과 역 사이를 오고 가며 사람들의 발이 되어주고 있다.
How? 어떻게 타나요
현금과 IC카드(스이카. 파스모) 모두 사용 가능하다. 성인은 170엔, 어린이는 90엔. 종일권을 구입하면 하루 동안 횟수 제한 없이 타고 승하차가 가능하다. 성인 400엔. 어린이 200엔. 3곳 이상을 승하차할 계획이라면 종일권을 구입하는 편이 좋다. 종일권은 전차에 승차한 후 기관사님에게 직접 살 수 있다.
아라카와선은 총 30개 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환승 가능한 곳에서 승차하는 것이 편리하다. 지하철역에서 도보 환승 가능한 역은 다음의 총 8개 역이다.
When? 운행 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미노와바시 역에서의 첫 차는 새벽 5시 58분, 막차는 저녁 23시 14분이다. 와세다 역에서의 첫 차는 새벽 6시, 막차는 23시 4분이다. 때에 따라 변동이 있기 때문에 대략적인 참고 사항으로만 알아놓는 것이 좋다. 각 역의 자세한 타임 테이블은 홈페이지 참조.
홈페이지 : https://www.kotsu.metro.tokyo.jp/toden/
My root
도덴의 종점부터 종점까지 가 보기로 마음먹은 날. 하루의 여행 계획은 오로지 도덴을 타는 것뿐이었다. 아침 열한 시, 느긋이 숙소를 나섰다. 시작은 미노와바시 역이었다. 히비야 라인의 미노와 역에서 내려 채 오 분도 걷지 않은 곳에 아라카와선을 타는 곳이 있었다.
이곳에는 미노와 재래시장이 있다. 음식이 든 봉지를 자전거에 매단 채, 할아버지 한 분이 느릿하게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도덴에 올라타 기관사에게서 종일권을 샀다. 열두 시가 채 안 된 도덴 안은 한산 했다. 한 정거장이 지났고, 전차가 멈췄다.
나는 내리지 않았다.
일단 끝까지 가 보고 싶었다. 덜컹이는 전철 안에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전차는 때로는 마을의 담벼락 옆을 달려고, 때로는 도로 한가운데에 멈췄다. 때로는 마주 오는 도덴과 스쳐 지나치기도 했다. 기관사는 마주 오는 동료에게 경례로 인사를 대신해 보였다.
반대편 종점, 와세다 대학에 도착했다. 와세다 대학은 동경대, 게이오대와 함께 일본의 명문 사립으로 꼽힌다. 교정도 아름답다지만, 개인적으로는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걸어보는 것을 더 추천한다. 골목 곳곳에 숨겨진 헌책방들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알고 봤더니 ‘와세다 헌책방 거리’는 책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명소로 통한다고 한다. 대학가에는 대학가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는 법. 그것을 느껴보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이구나 싶었다.
다시 도덴에 올라탔다. 이젠 미노와바시 역을 향해 되돌아갈 차례다. 욕심 같아서는 역마다 내려 보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여유 없이 쫓기는 일정이 될 게 분명했다. 그러니 딱 두 군데만 더 내려 보자 마음을 먹었다.
두 번째로 내린 정거장은 고신즈카 Koshinzuka. 땡땡땡, 열차가 지나감을 알리는 소리에 잠시 서 있다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에는 스가모 상점가가 있다. ‘할머니들의 하라주쿠’ 라는 애칭으로 방송을 차면서 유명해진 곳이다.
상점가를 걷다 보면 가운데에 신사가 나온다.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는 곳이었다. 지장보살은 본래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하는, 지옥세계의 부처님이다. 삼도천에서 어린아이들이 돌을 쌓고 있으면 지장보살이 나타나 환생하게 해 준다 하여, 일본에서는 어린아이의 무병과 행복을 지켜주는 신으로 더 많이 통한다.
손자, 손녀들의 손을 잡고 기도를 올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 신사 앞 벤치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노인 분들…. 굳이 ‘노인들의 하라주쿠’ 라고 부를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스가모는 그냥 스가모, 그 자체로 충분히 즐거운 곳이었다.
고구마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어치운 뒤 다시 도덴에 올랐다. 세 번째로 내린 곳은 아라카와 샤코마엔. 이곳에는 노면전차의 차고와 전시공간이 있다. 도덴의 전 차종을 다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구경해도 좋을 곳이다. 전차모양의 모나카를 파는 가게 ‘아케미’에 들렸다. 내가 방금 내렸던 것과 똑같은 색의 도덴 모나카를 샀다.
나의 도덴 여행은 여기까지. 그러나 이밖에도 도덴으로 찾아갈 수 있는 즐거움은 얼마든지 많다. 오모가케바시 Omokagebashi 역에서 내리면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배경이 된 마을에 찾아갈 수 있다. 아라카와 유엔치마에 Arakawa Yuenchimae 역에서 내리면 아라카와 유원지가 있다. 도덴 종일권으로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단 오후 5시쯤이며 문을 닫으니 시간에 주의해야 한다.
참고로 퇴근 시간인 5-6시에는 도덴이 붐빈다. 서서 가게 되는데, 그것도 썩 나쁘지는 않은 일이다. 일에 지쳐 집에 돌아가는 것이라면 무척 피곤했을 테지만, 여행 중이니깐. 조금의 번거로움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도 여행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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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억을 그려낸 드로잉 에세이 집을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음식과 맛을 매개체로 한 풍경들을 소곤소곤, 속삭이는 듯한 그림들로 만나실 수 있어요.
쉬어가고 싶을 때 함께 해 주시면 기쁠 거예요.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442773